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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Jul 21. 2023

아지트에서 만나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 대하여...

직업이 직업이라 가정폭력이나 아동학대 등에 관심이 많다. 게다가 한때 동생에 대한 스트레스로 폭력성을 보였던 큰 아이를 키우느라 본의 아니게 나 자신도 무서운 엄마가 될 뻔 했다는 고백을 하며, 나 또한 이런 가정폭력에서 자유롭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또 반성한다.


상처받은 부모의 어린 시절은 자녀에게 그대로 이어질 수 있기에, 한 사람의 삶에서 유년시절의 기억이 행복인지 불행인지의 여부는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불행했던 유년시절의 기억을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 노력한다해도, 어린시절 보고 겪으며 배운 게 나도 모르는 새 아이에게 투영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내 몸의 생물학적 DNA보다 더 강력한 환경적 DNA가 되어 아이들에게 전달되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 때문에 아이를 키우는 게 더 두렵고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우리 가정도 엄격한 기준으로 따지면 가정폭력, 아동 학대 인근을 맴돌다 다행히 그 늪에서 빠져나왔지만,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은 아이도 나도 트라우마처럼 나와 우리의 삶을 지배하고 있다. 선우와 지유처럼....


선우는 아빠가 엄마에게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집안의 유일한 아들이다. 애써 밝은 표정으로 아빠에게 모든 걸 맞추어주며 멍으로 가득한 엄마를 안쓰럽게 여기곤 하지만, 엄마를 지켜주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으로 삐걱거리는 선우의 마음 또한 상처투성이다.


지유는 아빠가 집을 나가며 동생인 선유와 쉼터로 가게 된다.

대개 9개월 이하의 단기 쉼터가 대부분인 곳에서 어떻게 쉼터에 4년이나 있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쉼터 관련 업무를 잠시  적 있다보니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등 평범하지 않은 사연으로 쉼터로 오는 많은 청소년들에 저절로 마음이 쓰인다.


지유 보니 쉼터 관련 업무를 담당했을 때 보았던 적지 않은 아이들의 안타까운 사연 떠올랐다. 아마 그 곳에 있던 많은 아이들도 안전한 보호막이라는 가정을 잃고 그 곳으로 흘러들어갔으리라...

※ 물론 부모를 모두 잃어 어쩔 수 없이 그 곳으로 갈 수밖에 없는 아이도 있다. 소년소녀가장 제도가 없어지고, 18세 미만 청소년은 부모든 조부모든 보호자가 없으면 혼자 살 수 없다보니, 보호자가 없는 아이는 쉼터든 보육원이든 어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보육원은 보통 어린 아이들 위주로 들어가기 때문에 청소년은 쉼터로 보내진다.
그 시설이 실제로 아이가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는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지유와 선유가 들어간 쉼터에는 다행히도 아이들을 따스하게 돌보아주는 분이 계셨다.

선우의 반에 지유가 전학 오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선우도 지유도, 가장 아늑해야 할 집을 가장 불편하고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여기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학교 내 아무도 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창고 같은 아지트에서 공감대를 찾으며 가까워진다.


보호해야 할 아이들에게 외려 폭력을 휘두르며 자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활용하는 어른들로 인해 매일매일이 금이 간 얼음 호수 위를 걷는 것 같은 아이들이지만, 선우네 아파트 경비아저씨와 선우 엄마는 그런 위태로운 아이들에게 한 줄기 희망이 되어준다.


경비아저씨는 지유와 선우가 지유 엄마를 피해 데리고 온 고양이에게 임시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선우엄마는 저 자신도 남편에게 가스라이팅과 가정 폭력을 당하면서도 아이들이 데려온 고양이에게 사료를 가져다주며 정성을 쏟는다.


지유 엄마는 지유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거침없이 때리고 손찌검을 했다. 술 주정일 때도 아닐 때도 엄마는 자신 주변에 사람들이 하나 둘씩 자기자신을 떠나는 게 괴로워 마지막 남은 지유에게 잘못된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인데, 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지유는 엄마에게 맞으면서도 때리는 엄마에게 연민의 감정을 품는다. 선우 엄마가 선우 아빠에게 맞으면서도 아빠에게 연민을 품으며 대꾸 한 번 못하는 것처럼....


엄마의 멍자국을 보면서도 자신의 나약함을 탓하며 애써 밝은 얼굴로 살아가던 선우가 제 또래의 지유를 보면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엄마에게 학대당하던 지유에게 문자메시지를 퍼부어, 지유가 술취해 자신을 때리다 잠들어버린 엄마에게서 과감히 도망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준다. 그렇게 도망나온 지유와 믿을 만한 어른인 경비아저씨에게 도움을 청하고, 경비아저씨는 어른들 일이니 어른이 해결해야 한다며 지유가 원하는 대로 쉼터에 보내준다.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의 끝은 형사처벌이나 별거 처럼 어둡다.

어두운 가정사를 뚫고 선우와 지유는 다시 밝은 아이로 자랄 수 있을까?


읽으면서도 저 아이들이 버텨내야 할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요즘은 이혼 가정이 워낙 많다보니, 이혼이 살아가는데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혼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한 쪽 부모의 부재로 인해 기본적으로 상처를 받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예민한 청소년시기에 대한 소설은 학교 성적이나 진로, 학대, 이혼 부모, 가난, 게임 중독 등이 소재가 되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다. 오백년 째 열 다섯.. 같은?)


요즘 불안한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는 사건 사고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한 사람이나 학교 내 작은 문제라기보다 체계적 시스템이나 인성교육의 부재가 가져온 사회적 문제가 아닐지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비뚤어진 사랑, 불안한 심리, 경쟁을 부추기는 입시구조, 타인과 '같이'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인성교육의 부재....


소통과 공감은 사라지고, 내 말, 내 아이, 내 편만 남은 시대.

내 말, 내 아이, 내 편에 대해서 마저도 비뚫어진 사랑으로 서로간의 믿음이 깨지고 있는 지금의 현실...

근본적으로 사회 보편적 가치를 가르치는 인성교육보다 학업 성적이 우선시되는 교육 구조, 아동학대와 가정폭력을 사후약방문 식으로 고치려는 잘못된 시스템 때문은 아닐까.


어릴 때부터 경쟁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 이해, 소통 중심의 교육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배려 계층을 소외시키지 않고, 따스하게 사회 안으로 품어줄 수 있는 마을, 공동체 교육 방식은 어떨까.


급속도로 붕괴되어가는 사회 시스템과 사람들 간 믿음의 상실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고민해보아야 할 묵직한 주제의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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