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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Sep 14. 2023

저수지의 아이들

만들어진 진실, 양극으로 갈라진 사회는 과연 누구 탓인가.

아직도 5.18 민주화 운동에 대해 진실을 이야기할 용기가 필요한가!
곤혹스럽다. 언제까지 '아직도'여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은 학생들의 일상에서 쉽게, 그러나 논쟁점을 차분히 짚어보며 5.18 민주화운동을 다루고 있다. 조명되지는 못했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또 하나의 역사를 담은 것이다. 부디 책을 통해 5.18 민주화운동이 지금 우리 사회으 뿌리였음을 확인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제발.
- 최태성(역사강사, <역사의 쓸모> 저자)-


요즘 '이념이 중요하다!'며 여기저기 이념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이가 있다.

그 사람을 좋아하냐 안 좋아하냐는 논외로 하자. 난 결혼한 사람이고, 내 남편과 아이들과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 그 분을 좋아할 필요는 없어보인다...허헛헛.


다만, 우리나라가 언젠가부터 너무 양 극단으로 나뉘어 협상이나 토론이 통하지 않고, 그저 상대 진영을 비난만 하는 형태로 대립하고 있는 건 너무도 안타깝다.

굳이 탓을 하자면,내 취향을 골라내서 보여주는 빅데이터 시장이 포괄적으로 조성되어 있다보니, 내가 보고 싶은 뉴스나 기사, 의견만 보게 될 가능성이 예전보다 높아질 수 밖에 없게 만든 포털이나 유튜브, SNS 탓인 것 같고, 더 멀리 가자면 상대방을 밟고 올라가라고만 배우는 우리나라 경쟁 교육 시스템 탓인 듯도 하다.


남을 밟아야 내가 살 수 있는 그런 교육 구조의 결과물(남탓하기, 경쟁에서 진 자를 밟아서 싹을 잘라버리기, 나와 다른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막기)이 지금의 상위 계층, 기득권 계층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지...


홍범도 장군님이 지하에서 얼마나 분개하실지 후손으로서 참 부끄럽기도 한데, 오히려 이런 분쟁 때문에 이런 저런 역사책들을 찾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니 이념 논쟁을 일으킨 그 분(들)께 감사해야 하려나...


이 책도 이런 저런 역사물들을 찾아 보다가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정명섭 작가야 워낙 믿고 보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라 봐야지 봐야지 했었는데, 도서관에 갔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재빠르게 데리고 온 녀석.


이 책을 읽으려면 두 가지를 먼저 버려야 한다.

첫 번째, 아들 엄마로서 '내 아들은 이럴 거야."라는 편견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책의 주인공이 처음부터 벌이는 욕과 일진스러운 행동들의 향연에 정나미가 뚝 떨어져버리고, 아들 엄마로 감정이입되어 주인공의 행동에 몰입은 커녕 손이 부들부들 떨리면서 책을 던져버리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두 번째, 전라도와 경상도의 지역감정이다.

누군가가 말을 한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현대사를 접할 때 흔히 역사적 사실보다 감정을 앞세워 역사를 해석하는 실수를 한다고.

식민사관으로 역사를 왜곡하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고 했던가.

이 책을 읽을 땐, 광주가 대표하는 민주주의 역사의 의미를 가슴에 새기되, 개인적인 감정은 다소 절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선욱이처럼 반항기 가득한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춘기 아이들이 5.18이라는 역사적 사실에 반감을 갖고 왜곡하게 되는 과정이 보이고, 그 아이들의 심리상태가 보이고, 해결책이 보일 테니까.


주인공 선욱은 중3의 평범한(?) 대한민국 아이다.

서울에 사는 초6 아이를 둔 나로서는 중3의 평범한(?) 대한민국 남자아이들의 대화가 이런가 놀랍기만 하다.


전형적인 식민교육세대의 모범생으로 살아온 나로서는 첫 장부터 나오는 중3 교실 아이들의 대화에 문화적 충격을 세게 받기는 했다.


'담탱이'까지는 그래.. 우리 때도 그런 아이들이 있었지.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그 나잇대 아이들의 영웅 심리, 동조 심리 같은 거랄까. 그런 용어를 쓰면 나도 너희들처럼 인싸야. 나도 이런 문화에 동조한다구. 나도 너희와 같은 무리야. 이런 말 정돈 안다고. 뭐 이런 심리?


그런데 "일곱 시! 일곱 시래."

응??


금세 추측은 했다. 지리적으로 전라도는 한반도를 커다란 시계라고 보았을 때 7시 정도에 위치하니까.

하지만, 그게 전라도를 비하하는 은어라고는 생각 못 했다. 그 다음 나오는 홍어는 알았지만. 휴우...


전라도 출신으로서 이 단어들이 꽤나 불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서문에 말했지 않은가. 지역감정 최대한 배제하고 읽어야 한다고. 이 책에는 전라도 출신에게는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꽤 많이. 등장한다.)


한혁과 패거리는 교과서보다 유튜브를 더 믿었다. 특히 유튜브에서 이것저것 보다가 알게 된 자극적인 얘기들에 재미를 느꼈고, 패거리들 사이에서 공유했다. 일곱 시, 전라디언 같은 지역 혐오 단어를 입에 달고 살았고, 삼일한이나 꼴페미 같은 여성을 비하하는 말도 거침없이 했다. 그들만 그런 건 아니었다. 자극적인 유튜브를 본 아이들 대다수는 거기에 동의를 하든 하지 않든 그 내용과 표현에 재미를 느껴 따라하곤 했다. 선욱도 그런 애들 중 하나였고, 한혁 패거리와 어울리기 위해 더욱 맞장구를 쳤다. -10p-

주인공 선욱의 성향이 명확히 드러나는 구절이다. 속칭 잘 나가는 아이, 인싸인 아이와 어울리기 위해 더욱 과장스럽게 맞장구를 치고, 사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자극적인 소재에 더욱 열을 올려 경쟁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 하는 청소년들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캐릭터가 선욱이다.


선욱은 그 반의 실세인 한혁 패거리와 어울리기 위해 민병이라는 아이를 학교 구석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혁이에게 데려가고, 예상했겠지만 우리가 예상하는 그런 집단 학폭이 이루어진다. 사고인지 고의인지 달려든 한혁이에게 밀려 떠밀리면서 선욱이 뒤에 서 있던 민병이와 함께 뒤로 쓰러진다. 민병이는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를 찧고 피를 흘리게 되고... 이어지는 상황은 우리가 예상하는 학교 폭력의 처리 과정과 유사하게 흘러간다.


주범인 한혁은 든든한 '빽'인 학폭위 학부모 대표를 둔 덕에 빠져나가고, 선욱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되어 수업 정지 30일 처분을 받는다.  

한부모로 힘겹게 살아가던 선욱의 엄마는 충격을 받고, 선욱에게는 한 달 간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오랫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던 외삼촌에게 연락해 선욱이를 당분간 돌봐줄 것을 부탁한다.


그렇게 KTX를 타고 선욱이 온 외삼촌 댁은 전라디언, 일곱 시 라며 욕하던 그 곳. 전라도 광주였다.


그토록 선욱이 혐오하던 폭도들이 사는 곳 광주 외삼촌 댁에 온 선욱.

당연하겠지만, 외삼촌과 5.18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생각이 진실이라고 믿는 선욱은 5.18 희생자들을 폭도로 몰아부치며 삼촌에게 피 튀도록 설득한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 사실임을 굳게 믿고 다른 사람에게 설득하려고 하는 선욱을 보면서 작가가 선욱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우리나라 사회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내가 아는 사실만 진실이고 남이 아는 건 거짓이라는 굳센 믿음. 타협은 없고, 오로지 설득을 통해 남을 내 이념 속으로, 내 생각 속으로 몰아넣어 정복하려는 요즘 사람들 모두 이 시대의 선욱은 아닐까.


유튜브나 SNS를 통해 정보는 넘쳐나게 되었지만, 지나치게 정보들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다보니, 정작 무엇이 진실인지는 가려낼 수 있는 능력을 채 키우지 못한 지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된 현실.


위령비를 훼손하는 것이 자신이 폭도들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 몰래 그 일을 해치우고 나오던 선욱이 우연히 후남저수지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과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같이 놀게 된다.

광주에 내려와 처음으로 웃으며 후련함을 느낀 선욱.


늘 한혁 일당이라는 무리에 끼어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살아가던 선욱이 처음으로 한혁 무리가 아닌 진정한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면서 느꼈던 카타르시스가 아니었을까.

선욱이 한혁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게 된 순간이다.


마을 회관 2층에서 봉사활동을 하던 지희로부터 이런 저런 5.18 관련 이야기를 들으며 선욱은 조금씩 5.18 희생자가 폭도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알고 싶지 않았던 진실들을 마주하며 선욱의 정체성은 흔들렸지만, 지희를 통해 조금씩 진실을 마주한 선욱.

선욱은 위령비 앞에서 울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게 된다.

선욱은 옅게 미소 지으며 역사관을 빠져나왔다. 문을 열고 내려다보는 지희에게 선욱은 망설이다 손을 흔들어줬다. (중략) 선욱은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중략) 얄팍한 지식으로 진실을 매도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또다시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참으려고 애썼지만 눈물이 핑 돌았다. 선욱은 손으로 눈물을 훔쳤다.
"나 왜 이렇게 바보 같냐....."
(중략)
"잘못했습니다. 상처를 위로하는 곳인 줄도 모르고 바보같이 또 상처를 입히고 말앗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선욱은 위령비 앞에 서서 울먹였다. 한참 후에야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된 선욱은 힘없이 돌아섰다.(후략) -143p-

저수지로 향한 선욱에게 손을 내민 건, 저수지의 아이들.

5.18 당시 저수지에서 놀다가 시민군으로 오인한 군인의 총에 죽어간 소년들의 영혼들이었다.


자신이 만난 저수지의 아이들이 5.18 당시 군인에게 희생된 아이들의 혼령이었음을 깨달은 선욱은 혼령들의 인도로 위령비 뒤쪽에 그 소년들의 유해가 묻혀있음을 알게 된다. 진압하러 광주에 파견된 군인이 오인 총격에 사망한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암매장해놓고 도망간 것이었다.


저수지의 아이들 중 한 명이었지만, 자신을 살리고 죽어간 형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현재를 살아가던 외삼촌은 오열했고, 그 사건을 뉴스로 대서특필되며 선욱은 5.18의 진실을 알린 영웅으로 30일의 정학이 풀리고 서울 학교로 돌아온다.


선욱은 그동안 적당히 현실과 타협하며 살아왔던 삶을 반성하고, 한혁의 죄를 대신 뒤집어쓴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고자 용기를 낸다. 담임선생님이 소개해준 탐정에게 연락을 취하고, 탐정이 알려주는 방법대로 적극적으로 한혁 무리로부터 증거를 채집해나가는 선욱의 모습으로 이 책은 끝난다.


엄마는?

알고보니 해외여행이 아니라 암투병 중이었던 엄마와 마주하며 선욱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 책을 읽으며 '죽이고 싶은 아이'가 생각났다.

서은이라는 아이가 죽었을 때, 서은의 절친인 주연이 주요 용의자로 떠오르고, 주연이 혼란스러운 사이 사회가 주연을 절친 서은을 잔인하게 죽인 사이코같은 살인마로 만들어내가는 과정.


진짜 진실은 사라져버리고, 믿고 싶은 사실이 진실을 만들어내는 걸 보며

우리 사회의 많은 부분이 믿고 싶은 사실을 진실로 포장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서이초 사건, 홍범도 흉상 이전 사건을 비롯해 요즘 떠오르고 있는 각종 이슈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다보니 나와 의견이 다른 상대방의 생각은 진실이 아니라며 가짜뉴스, 가짜로 호도해버리는 현실이 서글퍼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진실, 그렇게 만들어진 이념 속에서 살면 우리는 과연 행복할까.


상대방과의 의견 조율, 타협이 아니라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은 아예 묵살하다 못해 그런 의견을 내지 못하도록 입을 막고, 싹을 잘라버리는 게 과연 잘하고 있는 일일까.


우리가 진실을 접할 때 필요한 건 용기인 것 같다.

선욱이 마침내 용기를 낸 것처럼, 우리도 진실을 접하기 위해 행동해야 할 용기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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