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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Oct 19. 2023

선행학습에 대한 생각

아이의 인생 미로에는 종착지에 대한 정답이 없다.

내가 하면서도 질문이 참 우습다.

"당신의 아이는 몇 학년을 앞서가나요?"

내 아이는 중 1 수학 2단원에 들어갔으니 0.2학년 정도 앞서가는 걸까?아니, 앞서가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니 오히려 뒤쳐졌다고 해야할 지도 모르겠다. 허허허...


며칠 전, 아이가 참석중인 독서회에에서의 일이다.

(큰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임을 감안하시길..)


5-6학년 대상 독서회인데 구성원은 큰 아이만 제외하고 모두가 5학년이다.

그 날의 책 내용이 아이들의 사춘기, 학원 관련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참석한 아이들의 푸념이 이어졌던 모양이다.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을 풀고 있는데 너무 스트레스 받는다는 이야기, 중학교 3학년, 중학교 2학년까지 최소 3학년 이상 위의 수학 선행을 하고 있는 아이들 풀어내는 공부 스트레스 이야기...


학년은 큰아이가 제일 윗 학년인데 정작 큰 아이는 중 1 선행 들어간 지 한 달도 채 안되었고, 유일한 6학년인 우리집 아이를 제외한 모든 5학년 아이들이 우리집 아이보다 훨씬 높은 학년의 수학을 풀고 있는 상황.


큰 아이는 책으로만 보던 선행학습 문제를 눈앞에서 직접 확인하고 충격에 빠진 모양이었다. 자신은 아빠가 얼마전 무슨 이야기를 하다 나온 근의 공식 이야기도 어려웠는데 아이들은 근의 공식을 넘어 그보다 어려운 수학문제들을 풀고 있다며, 진짜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단다.


스트레스 받는다는 아이들 투정에 선생님이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책 읽는 게 최고야."라는 말을 했다고 전하며, 큰 아이는 자신이 책 읽을 때 뭐라 하지 말라며 투덜거린다.(? 결론이 왜 이래? 그리고 화살이 애꿎은 나에게 오는 거지??)


그래서 아이에게 최근에 본 EBS 교육 다큐(?)에서 실험에 참여한 한 엄마이야기를 들려주며 변명했다.

"아들아, 엄마가 언제 본 다큐에서 보니까 어떤 엄마는 사회도 문제집을 막 풀리고, 구석기 신석기 어찌고 하면서 빨간색 줄 긋고, 하이라이트 칠해가면서 외운 걸 확인하던데 그런 것보단 엄마가 나은 거 아냐? 숙제라 해봐야 수학 영어밖에 없고, 그렇다고 숙제 검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해야할 숙제 마치고 나면 책 읽을 시간이 가득한데도, 굳이 숙제 중간에 책 읽느라 그날 할 일을 10시 11시까지 끌고 가는 걸 놔둘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라리 사회 외우라하면 잘 할 수 있는데..."
"어...엄....쩝"
(아이는 사회, 과학, 국사, 세계사, 국제정치 등에 엄청난 관심을 가지고 있다. 굳이 문제집을 풀리지 않아도 될 만큼 풍성한 배경지식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알았으니 이제 글로 풀어만 내면 된다. 너의 생각을!!!)

그동안 브런치에 쓴 많은 글들도 있지만, 나는 아이에게 선행을 강요하거나, 문제집 풀이를 강요하는 엄마가 아니다.

해야 할 그날의 공부라 해봐야 수학과 영어가 끝이다.

사회, 과학은 문제집 한 번 풀어보라 한 적 없고, 국어는 아이 본인이 실력이 궁금하다기에 뿌리깊은 독해(?) 시리즈 2권 푼 게 전부. 그 마저도 지금은 하지 않고 있지만...


학교에서 오면 모든 게 제 시간인 내 아이조차 최소한의 숙제에도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안 준다며 난린데(근데 엄마가 시간을 너에게 왜 주니? 그냥 네가 챙기면 되지), 학원을 몇 개씩 다니면서 초5 뇌 용량을 초과하는 수준의 공부 분량을 매일같이 해내야 하는 친구들이 과연 충분히 책을 읽을 시간과 여유는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다.


우리집의 경우, 공부는 최근 계획, 진도, 채점, 피드백 등 공부에 대한 주도권 자체까지 큰 아이에게 넘어간 터라, 그 최소한의 숙제조차 안 했는지 했는지 알 수 없다.(안 하면 저 손해지 뭐.)


물론, 내 잘못이 있긴 하다.

큰 아이가 보자마자 관심 가질 법한 책들(로빈슨 크루소 같은 클래식 동화, 국제 정치, 조약, 국제 사회 문제나 세계사...)이 거실에 주루룩 펼쳐져 있으니 본인 딴에는 유혹이 되겠지...


그런 유혹을 못 참고 거실에서 책 보고 있는 아이를 보다가 한 마디씩 툭툭 '할 일은 다 했니?'라고 집중을 끊어버리는 엄마이니 그 점은 미안하게 생각한다.


처음엔 책이니까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냥 보고 놔두니 결국 밤 10시 넘어 수학문제를 풀게 되는데 졸린 상태에서 수학을 풀려니 가뜩이나 풀기 싫은 수학 문제가 더 안 풀려 짜증을 내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시간 관리가 아직 안되는 초딩 아이에게 숙제 먼저라고 훈육 아닌 훈육을 했을 뿐.


다시 아까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학원을 다녀본 적 없는 아이 학원을 다니며 선행을 하는 아이들보다 자신의 처지가 훨씬 낫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시간 관리가 안되다보니 그저 책 읽는 시간이 부족하다고만 느끼는 것 같다.(차라리 학원을 다니다 끊은 아이라면 나았을까??)


참 신기하다.

하교해서 집에 오는 순간부터 화장실에서도, 밥 먹을 때도 책을 읽는 큰 아이는 (물론 멍때리는 시간도 많다.) 영어 문제집 한 장, 수학 문제집 두 장에 영어 강의 30분 들으면서도 오히려 책 읽을 시간이 없다며 투덜거리는데, 또래의 아이들은 학원을 다녀오고, 학원 숙제를 하면서도 어떻게 책을 읽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


고1, 중3 선행을 한다는 아이들을 보며 자신이 제일 늦었다고 생각하는 큰 아이. 본인은 당황한 것 같은데 난 오히려 큰 아이에겐 자극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들었다.

어? 나만 늦나? 서둘러야겠네...

본인에겐 자극이 되었을지 모르나 초등 고학년 부모로서 속으로는 2-3 년치 선행이 아니라 우리집 큰 아이처럼 현행과 반 학기 정도의 선행 아닌 예습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사회를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하는 순진한 생각을 해본다.


우리 세대. 수학의 정석만을 가지고 중학교부터 고3까지 수십 번을 반복하지 않았던가. 그러고도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았고, 이해하지 못한 단원도 있었는데 그깟 수학. 1년 앞서간들, 3년 앞서간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고 조기졸업해서 사회에서 좋은 자리 먼저 차지할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 자식이 의대 치대에 갈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아이에게 공부 강요를 하지 않아 마음이 편하다. 부모만큼 내 자식을 잘 이해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나는 이시대의 진정한 공부란 급변하는시대 흐름을 읽고 적응하거나, 능력이  된다면 시대를 선도할 수 있도록 국제 이슈나 국내 주요 이슈,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초석로서의 공부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문제집에 없는 건 문제가 아니다. 가 아니라


어?이건 좀 아닌데? 이거 좀 생각해봐야 하지 않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난 무슨 역할을 해야 하지?

라고 문제를 '문제로서 인식'하고, 충분히 고민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힘이 생기도록 해야 하는 게 공부의 역할이라 믿는다.


수능이 어찌 변할지 관심이야 왜 없겠냐마는

"엄마, 사회 문제집 풀라 하면 얼마든지 풀 수 있는데..."

라며 투덜거리는 큰 아이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는 건, 굳이 문제집 풀고 백점 시험지에 기뻐하고, 교과서 지문을 달달 외우며 '난 공부 다 했어!'라고 자기만족해봐야 이미 30년 전 년 전의 죽은 지식일 뿐, 문제집을 백 번 풀어봐야 우리가 사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샘솟는 건 아니라는 부모세대의 경험에 따른 교훈 때문이다.


남보다 진도를 앞서가는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속도를 앞세우다가 후회하고 돌아오느니, 차라리 아이 스스로 충분히 문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속도앞세우면 조급해진다. 남보다 빨리 가려고 해봐야 특출난 몇몇 천재아이가 아니로서는 대충대충 지나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아이들 잎장에선 앞날이 충분히 보이지 않다보니, 너무 먼 장래라 보이지도 않는 길을 더듬더듬 그저 장님마냥 학원 선생님이, 혹은 부모가 알려주는 방향만 믿고 갈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그 길이 잘못 되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가 질 수 있는가. 부모가 그 책임을 져줄 수 없으니 오롯이 그 버려진 시간과 후회는 아이의 몫으로 남게 된다. 지나친 선행으로 제 실력에 대한 확신을 잃은 아이의 좌절 잃어버린 유년시절에 대한 상실감은 덤으로...


"엄마는 이미 그 길을 걸어봤으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너는 따라오기만 해!"


학원이 아이에게 생각거리를 충분히 던져줄 수 있다면 물손 유익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원치 않는 "묻지마식 과도한"선행학습을 시키는 엄마, 진행하는 학원 선생님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가야 할 아이의 미래를 몽땅 책임져줄 수 있는지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우리가 학창시절을 겪었던 20~30년 전과 지금은 다르다. 아이들의 지금과 10년 후의 미래 또한 전화기에서 스마트폰,   타자기에서 인터넷, AI로봇, 챗GPT의 시대로의 변화 속도보다 훨씬 빨라질 것이다.

과거의 지식을 주입시키며 아이들의 미래를 부모가 확신하기 전에,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인생을 계획하고 꿈꿔보고 마음껏 실패하며 사회를 조금이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주도권을 살짜쿵 넘겨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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