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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Apr 12. 2024

'섬세한' 8세 아이와 소통하는 법

내 마음이 어떤지 나도 모르겠어요.

학교 적응이 끝나고 본격적인 학습에 들어가는 4월입니다.

사춘기 중딩 큰 아이도 순하디 순한 작은 아이도 매일매일의 학교 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있지요.


저희집 교육 모토는 학습 자체가 아니라 소통과 정서 안정이다보니, 학습량은 또래보다 결코 많지는 않은 듯 합니다.


삼춘기를 격하게 보낸 큰 아이를 안정시키고 난 후라,

작은 아이도 부디 공부공부에 너무 일찍 몰입되지 않게 하면서도 정서적으로 안정된 1학년을 보내는 게 저의 목표입니다.


8살 갓 초딩이 된 작은 아이는 차분하고 꼼꼼한 성격인데요. 놀이때도 상남자처럼 격하게 놀기보다는 배드민턴이나 줄넘기처럼 다소 절제된 운동으로 노는 걸 선호합니다.


어린이집 다닐 땐 남소여대 반에서 각자의 장점들이 잘 어우러져 정말 잘 보냈던 것 같습니다. 장난스럽게 여자아이들을 괴롭히는 게 놀이라고 생각하는 남자아이들도 없고, 차분한 성향의 남자아이들과 중성화된 여자아이들이 어우러지다보니 서로 배려하면서 '우리는 하나' 느낌처럼 누구 하나 낙오시키지 않고 두루두루 잘 지냈던 거죠.(본의 아니게 온실 속의 화초처럼 지낸 듯 하네요...허허.)


그런데요.

초등학교 들어가니 친했던 친구들이 다른 반으로 몰려가버렸습니다.

작은 아이는 모르는 아이들이 절대다수인 반으로 배정이 되었죠.

3월 한 달에는 그래도 반에 어린이집에서 친하게 지냈던 친구와 비슷한 성향의 친구가 있을거라는 기대감으로 보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늘 학교 가는 걸 즐거워했고,  오늘은 누구랑 놀았어, 누구랑 놀았어라고 이야기도 해주었구요.


그런데 4월이 되면서 아이가 조용해졌습니다.

심지어 처음으로 용기 내어 친구에게 다가가서 대화하려던 찰나, 다른 친구가 반갑다며 달려오다가 작은 아이를 넘어뜨렸는데요. 제 때 사과받지도 못하고, 꽤나 아프기도 했던 아이는 친구의 비매너에 다소 상처받은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그 날 이후 학교에 혼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워킹스쿨이라 선생님 인솔 하에 아이들 2~30명이 우르르 가는 속에도 아이는 혼자더라구요.


이 주 남짓 지켜보다 잠들 무렵 슬쩍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ㅇㅇ야, 요즘 학교에선 어떤 친구들이랑 잘 놀까?"

"음..... 거의 안 노는데요."

(엥?)


"중간 놀이시간도 있고, 쉬는 시간도 있지 않아?"

"...(살짝 눈물이 맺힘) 그냥 혼자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기도 하고, 자리에 앉아서 팽이나 비행기 접어요."

(헉....)


"같이 접을 수 있는 친구들도 있지 않을까?"

"놀이 방식이 맞는 친구가 없어서 혼자 자리에 앉아서 종이 접어요."

(쿵.....)


엄마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배려심 높고, 친구들에게 나쁜 평가 한 번 안 받는 아이라, 친구들에게 종이 팽이를 접어주고 같이 놀이하면 친구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아이는 놀이 취향이 비슷한 아이를 아직 못 찾은 듯 합니다. 돌봄교실에서 형님들과 엄청 잘 노는 아인데도. 게다가, 보드게임이 꽤 많았던 큰 아이 학교와 달리 작은 아이의 교실에는 친구들과 같이 할 만한 보드게임도 없고 말이죠.

(아이는 보드게임을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집에서의 놀이시간 대부분은 문명의 시대, 카탄, 미니빌, 장기, 체스, 원카드, 러시아워, 스도쿠, 부루마불 같은 보드게임과 한 몸이 되곤 합니다. 엄마가 놀아줄 수 없으면 혼자서 1인 다역을 하면서까지요.)


그야말로 놀잇감이 없는 학급 교실에선 맨몸으로 부딪치며 노는 것 외에는 또래와 공유할 수 있는 놀이가 없는데, 몸을 격하게 쓰며 거칠게 노는 건 아이가 좋아하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또래 놀이 문화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어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이가 친구들과 어울릴 때 쓸 수 있는 사회적 화법에 약한 건 아닐까 하구요.

같은 반 아이들이 작은 아이를 가리켜서 "우리 반에서 제일 똑똑한 친구에요!"라고 하더라는 말을 한 엄마에게 전해들은 적이 있는데요.


엄마인 제가 보는 작은 아이는 오히려 언어가 또래에 비해 다소 어눌한 듯합니다.

말을 못 한다는 게 아니라, 감정이나 상황을 표현할 때 섬세하게 표현하는 언어적 능력이 조금 떨어진다는 거죠.

 수학적 능력은 다소 높은데(이 마저도 요즘엔 고개가 갸우뚱거리긴 합니다만....) 표현력이 부족하다보니 친구들 사이에서 말로 놀이를 이어나가는 걸 어려워하는 듯합니다.

에미인 제 눈에는 표현력 부족으로 아이가 난처해하는 모습들이 자주 관찰되네요.(물론 아이는 자기가 표현을 잘 못해서 문제가 된다는 건 모를테지만요.)


그래서 어제는 잠자리 독서 시간에 사두고 오래오래 묵혀왔던 '아홉살 마음 사전'을 꺼냈습니다. 조곤 조곤 읽어주면서 '어떤 상황일 때 어떤 말을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지요.

큰 아이땐 마음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닥 관심이 없었는데요. 큰 아이를 키워보니 자신의 마음을 자신조차 모르면 사회관계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제 예상대로, 역시나 아이는 감정 표현 방법을 거의 모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감정을 자신조차 잘 모르니 또래들 사이에서 당당히 대처해야 할 말도 못하고 꾹꾹 누를 수밖에 없는거죠. 친구와의 놀이를 거의 목숨처럼 소중히하는 작은 아이에게큰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걸 엄마는 새삼 깨닫습니다.


작은 아이 또한 이렇게 많은 감정들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는지 눈이 똥그래집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더라고요.

"엄마. 이 감정 단어들을 카드로 만들어서 벽에 붙여둘래요.  책은 그때그때마다 일일히 뒤적거려야 알 수 있는데, 벽에 걸어두면 내가 어떤 감정일지 바로 찾아낼 수 있으니까요."


아이 말을 듣자마자 오은영 선생님의 감정카드가 바로 떠올랐습니다.

이는 카드로 만들어두면 그때그때의 감정을 카드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던 겁니다.  


엄마는 감정카드는 구입해야 된다고만 생각했지 미처 만드는 것까지 생각을 못했었거든요.

배송비 운운하며 현실적인 조건만 따지느라 필요성을 알면서도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던 건데, 아이는 책을 보면서 '필요하면 만들면 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겁니다.

아이들 세계는 어른들의 닫힌 세계보다 훨씬 더 많은 가능성으로 열려있다는 것도 새삼 깨닫습니다.


앞으로 아이와 책으로 대화하며, 카드로 감정을 표현하며 상황상황에 쓸 수 있는 말을 계속 익히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나마, 복직 전에 발견해서 다행입니다. 방치했으면, 아이는 표현력이 부족해서 자신감도 줄었을테고, 또래 관계에서도 분명 문제가 생길 수 있을 테니까요.


가슴 쓸어내린 엄마, 오늘도 아이에게 하나 더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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