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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Apr 23. 2024

키다리 아저씨

보육원 아이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

남편에게 스벅 쿠폰을 선물 받았습니다.

이벤트 당첨(?)으로 받은 쿠폰이라지만,

40대 아줌마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저만의 키다리아저씨,

남편님의 선물이죠.

아이들을 학교로 보내고 집안일을 휘리릭 끝내고는 남편에 대한 고마움과 설레는 마음으로 스벅으로 향합니다.


스벅으로 향하는 길.

잠시 도서관에 들러 읽을 책을 고릅니다.

한두권만 고르려고 했는데, 마트 쇼핑이나 책 쇼핑이나 과소비는 어쩔 수 없는 걸까요?

고르다보니 대출권수를 꽉꽉 채워 무거워진 가방을 들고 스벅으로 향했답니다.


커피를 받아들고 책을 고릅니다.

따스한 봄바람이 몰려오니 소녀의 마음처럼 설렘이 시작되는 책,

10대 때 읽고 30년 만에 다시 꺼내든 '키다리 아저씨'입니다.


제루샤 애벗.

전화번호부 첫자를 성으로 따오고, 묘비명에서 찾은 이름으로 지어진 제루샤는 고아원이 집입니다.

빨강머리앤을 떠올리게 하는 제루샤는  앤 셜리처럼 문학소녀였어요. 열 여섯이면 독립해야 하는 고아원 규칙이 있지만, 성적도 좋고 학교 과정을 조기에 마쳐서 남들보다 2년을 고아원에서 더 지낼 수 있었죠.

(고아원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회사에서 제 담당이었던 한 보육원 사연이 떠올라 마음이 편치는 않습니다. 아무리 온 마음으로 업무를 한다고 해도, 이런저런 사연으로 쉴 새없이 이 곳으로 오는 아이들 모두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건 거의 불가능이었어요. 코로나 시기와 맞물려 정말 많은 아이들이 이 곳으로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떠밀려왔었고, 아이들도, 아이들을 관리해야 할 모든 사람들도 힘들었던 시기였죠.

정말 최선을 다했던 시간이었지만, 휴직 이후 그 곳 이야기를 우연히 전해들으면서 죄책감에 한참을 괴로워하기도 했답니다.)


이 책을 읽은 많은 소녀 독자들이 알고 있다시피, 제루샤 애벗은 한 마음씨 좋은 자선가의 도움으로 고아원에서 나와 대학에 진학하게 됩니다.

(한때 보육원 담당자로서 이런 일은 아주아주 아주아주 희귀합니다. 18살?(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만)이 되면 자립해야 하는 아이들에게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학업을 계속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하루 하루 '현재'의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기도 빠듯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제루샤는 후원자의 후원을 받아들이며 대학교로 향합니다. 후원 조건은 작가로서의 꿈을 이루기위해 최적인 한 달에 한 번 후원자에게 편지쓰기.

제루샤는 후원자의 가명인 '존 스미스'에 대한 편지쓰기가 마치 '친애하는 말뚝씨', '그리운 옷걸이씨'에게 편지 쓰는 것만 같다고 비유하죠.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후원자라는 것만 알고 있는 상황에서 매달 편지 쓰는게 쉽진 않으니까요.

 고아원에서 불행한 삶을 살았을 것만 같은 제루샤의 뜻밖의 유머감각에 그저 따라 웃을 수밖어 없었습니다.


제루샤의 유머감각과 타고난 듯한 긍정적 성향은 그 뒤로도 계속됩니다. 전형적인 상류계층인 줄리아나 샐리와 친분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품위를 잊지 않는 데, 이 긍정 성향이 중요하게 작용하지요.


제루샤는 무덤에서 가져왔다는 아무 의미 없는 이름을 버리고 주디 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개명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키다리 아저씨의 그 주디 말이죠.


기숙사에서 샐리, 줄리아와 가까워지면서 저비스라는 사람을 알게 됩니다. 줄리아의 삼촌인데요. 여름 방학 때는 고아원으로 돌아오라는 고아원 원장의 편지를 받고 좌절했을 땐, 키다리아저씨의 주선으로 록 윌로우 농장에서 여름방학을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이 곳이 줄리아 삼촌인 저비스의 유모 집이라는 기막힌 우연에 놀라워하지요.


주인공 주디는 이런 저런 우여곡절을 보내며 대학교 생활을 해나갑니다. 하지만, 신데렐라 스토리같은 이 이야기는 우연히 떨어진 신발로 왕자와 결혼하는 신데렐라의 수동성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주디는 후원자의 과도한 후원금은 과분하다며 돌려보낼 줄도 알고, 후원금이 공짜가 아니라 자신이 평생에 걸쳐 갚아야 할 빚이라는 걸 명확히 인지하고 생계 도구이자 자아실현의 대상인 작가로서의 꿈을 지속해나갑니다.


말미에 있는 작품 해설을 보니 이 책은 꼭 두 번 이상 읽으라고 합니다.

처음엔 후원자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주체적인 인간으로서의 삶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 주디 관점에서 읽고, 두 번째는 주디의 후원자에서 어느새 주디에게 푹 빠진 저비스 입장에서죠.

처음 읽을 땐 왜 그러나 영문을 몰랐는데 두 번째 저비스 입장에서 다시 읽으니, 샐리네 별장에 가지 못하게 막은 저비스의 심정이 이해가 갑니다. 언제부터인가 주디의 주변을 맴돌고 있는 지미의 존재 때문에 유치하지만 후원자의 권력으로 주디의 행복을 막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대학을 졸업하던 주디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거절당하고 죽을 듯 앓는 저비의 모습을 보면, 사랑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다행히 주디 또한 후원자의 존재 때문에 거절했다가 후원자가 저비라는 걸 알고난 후에는 저비의 마음을 받아들이는 걸로 해피엔딩이 되었네요. 40대 아줌마인데도 소녀팬의 마음을 들었다놨다하는 작가의 필력에 모처럼 소녀로 돌아간 것 처럼 설렜던 시간이었습니다.


책 중간중간을 보면서 이 때가 태평양 전쟁 발발 즈음이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는데요. 한국인들에겐 지옥과 같았을 이 시기가 영국, 미국인들에게는 평화로웠구나 싶어 다소 씁쓸해지기도 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시기와 100년이 지난 지금, 고아원 아이들에 대한 처우가 어찌 바뀌었을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보육원 아이들은 자신이 이 곳에 있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절망하고, 여전히 일부 보육원에서는 아이들간의 세력 다툼이나, 위계에 따른 폭력이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고, 그런 걸 알면서도 묵과하는 어른들도 있겠죠.

(모든 보육원이 다 그렇진 않습니다. 편견 노노!!)


키다리아저씨를 만나 행복한 삶을 살아갈 주디에게는 아낌없는 응원을 보냅니다. 시작은 후원이었지만, 그 후원을 당연시하지 않고 자립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이니까요.


하지만, 주디가 떠나간 그 고아원에서 여전히 살아가고 있을 나머지 아이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새삼 궁금해집니다. 어둠을 걷는 아이들의 퐁이나 솜킷이 떠오르기도 하구요.

이런 아이들이 세상에 좌절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무사히 성장할 수 있도록 어른으로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전 인권 조사 차 보육원에 방문했을 때, 조사원에게 일말의 기대감 없다는 표정으로 나지막혼잣말처럼 했던  한 아이의 말이 뇌리에 스쳐갑니다.


"나는 ㅇㅇㅇ (보육원 이름) 출신, 에헤, 에헤...."

(저에겐 인권조사관이 백 번 와도 우리 보육원은 안 바뀔걸? 이라는 자포자기의 말로 들렸습니다. 그 땐 저 친구는 왜 그러지? 라는 물음표(?) 였는데 내막을 이해하게 되고 그 아이의 말이 느낌표(!)로 바뀌었을 때의 충격 때문인지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 그 아이의 말이 떠나질 않으면서 죄책감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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