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에는 자유롭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큰 아이,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하교하자마자 집에 잘 들어왔다는 전화와 함께 공식적인 시험의 끝을 알려오네요.
회사에서 정신없이 일하다가 아이의 전화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조심스레 물으니 1번부터 틀렸답니다.
채점을 했냐 물으니 자신이 없어서 못 하겠는데 1번 틀린 건 선생님께서 아이에게 답안지를 챙겨주셨는데 1번 답만 기억이났다는군요. 1번부터 틀리니 불안해서 못하겠다고 에미보고 퇴근하고 와서 해달랍니다. 헐....
(아이에겐 핸드폰이 없어 단톡방에 초대되지 못하다보니 단톡방에 올라오는 답안지를 받아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엄마인 제가 늘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서 개인 카톡으로 받곤 했지요. 이번엔 선생님이 사정을 아셔서인지 마지막날 시험엔 아이에게 여분의 답안지를 일부러 챙겨 주셨더라고요. 에미는 궁금한데 정작 아이는 시험이 끝났다는 사실만 중요한 듯 합니다. 허허)
집에 와서 채점을 해주었습니다. 한숨은... 나오지만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아이가 좋아하는 마트의 시식코너로 향합니다. 좋아하는 초밥도 한 세트 안겨드리고, 시식도....시켜드리려고 했는데 웬걸요. 수요일이라 그런지 시식코너도 운영을 안하나봅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나 보네요. 쯧.
그래도 도서관에 들러 보고 싶었던 영화 CD도 빌리고, 초밥도 얻어 먹고 기분은 좋았던 큰 아드님, 집에 와서 '박물관은 살아있다'는 아주 초딩스런 영화취향을 마음껏 발산해봅니다.
영화가 끝나니 그동안 눈치만 보던(그래도 끝까지 한장 한장 참 꼼꼼하게도 보시더이다....) 종이신문도 읽습니다.
올해 5월 즈음부터 종이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요. 대통령 탄핵에, 시리아 독재 대통령 알아사드 축출, 이스라엘의 시리아 공습 등등 세상의 다이나믹한 모습이 너무너무 궁금했던 아이는 오늘만큼은 에미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한 시간을 꼬빡 누워서(!) 마음껏 종이신문을 읽었답니다.
뭐; 지난번처럼 OMR카드 실수 연발만 안하면 그래도 성적이 오른 건 맞으니....(실수를 했을 것 같다는 본인 말은 안 들은 걸로 하고 싶네요.)
한숨은 나오지만 에미는 아이의 자유를 마음껏 허해주기로 합니다.
오늘은 아이가 학교에서 탐방을 가는 날입니다. 무슨 공연을 보러 간다는데 가는 지하철에서 친구는 게임을 하고, 아이는 동물 관련 책을 읽었다고 하더군요.(요즘은 몸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다른 일을 하는 게 자연스럽긴 합니다.)
퇴근을 하고 와서는 친구들과 시험얘기는 안했는지 궁금해져 아이에게 은근슬쩍 친구들 성적은 어떤지 물어보았습니다. 학원을 안 다니니 학원 선생님의 시험 분석을 들을 방법도 없고, 아이 친구 엄마들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 시험 수준은 오롯이 아이 입을 통해서만 알 수 있거든요.
아이의 답변에 그만 빵 터지고 말았습니다.
"아들아, ㅇㅇ이는 잘 봤대?? ㅇㅇ이는 학원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잖아."
"물어봤더니 수학 하나 틀렸다고 망했다던데?"
"헐....하나 틀린 게 망했다고? 우리집 아들은 50점 넘으면 상위권이라 하지 않았어??"
(제...어렸을 때 단골 멘트를 아이가 아닌 아이 친구에게 들을 거라곤 생각을 못...해서 속으론 충격이 훅 들어오더라구요.)
"허참. 시험은 시험일 뿐인데 인생 뭐 그렇게 힘들게 살아. "
"아.....음.........."
시험에 꽤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친구와 시험 결과에 그닥 관심 없으신 아드님. 같은 학년 같은 반인데 참 다른 두 아이들.(에미인 저와도 참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은 큰 아이에요. 살짝 사차원...이 아닐까...싶기도 하네요.흠흠)
시험 기간에는 집-학교-학원만 왔다갔다 한다는 그 친구와 달리 큰아이는 3일간의 시험 기간, 남들이 시험이 끝나고 바로 다음날 시험공부하러 학원에 갔을 시간에 좋아하는 교수님의 강연을 들으러 가기까지 했답니다. (강의는 2시간이었고, 왕복 시간에 밥 먹고, 신문 보시고!...이젠 공부하라 하니 배가 아프다며 결국 공부는 놓고 주무시러 가셨답니다. 다음날 여섯 시에 아이를 깨워 조금이나마 시키긴 했지만.... 새벽 4시든 5시든 시험 기간엔 악착같이 책상에 붙어있었던 왕년의 에미 모습을 떠올리자니, 자유로운 큰 아드님의 모습이 너무너무 생소하긴 하네요. 흑흑)
심지어 강연장까지 가는 길을 모른다는 이유로 남편이 하루 휴가까지 내면서 같이 강연 들으러 갔을 정도이니...이쯤 되면 부창부수가 아니라, 부창자수(父唱子隨)인 것도 같네요.
그 애비에 그 아들입니다.
또 다시 한숨 나오는 에미.
(사실은 아이는 학교 보내놓고, 휴가 내서 저만 살짝 다녀오려던 강의였는데, 휴가를 못 내게 된 에미는 결국 못 듣고 강연을 알게 된 남편과 아들만 강의를 듣게된 거였답니다. 결국 약오른 건 어미 뿐이지요. 뭐)
주요 과목은 그닥 높은 성적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해야 할까요?
친구들이 "시험 끝나고 뭐 할 거야?"
라고 물으니
"시험 끝났으니 책 봐야지."
라고 대답해서 친구들을 기함하게 만들었다는 큰 아이인데요.
학원을 안 가니 남들 다 학원가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영혼인지라 책도 보고 신문도 보는데요.
시간은 많은데 시험에 대한 욕구(?), 경쟁(?) 집념(?) 요런 건 전무하다시피 하기도 하고, 시험에는 시험 기술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데, 문제집도 수학 영어 빼곤 풀지도 않다보니 기술이라곤 눈꼽만치도 없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네요.
공부 시켜주는 학원 선생님도 없구요, 학원에서 계속 얹어주는 보충 자료도 없어요. 시험기간 2주전까지는 교과서를 보지도 않구요. 평가문제집도 사드렸으나, 시험 전날 혹....시 몰라 확인해 보니, 역시나 백지..더라구요.
(마지막날에 결국 제 앞에서 붙잡고 풀게.했습니다.)
그나마 시험범위라며 용선생 과학책도 찾아 읽고 해서 문제집을 풀지도 않고 본 사회와 과학 시험은 출중하더라구요. (나중에 알고보니 출중한 아이들이 꽤 많았...긴 하더라구요. 허허허...)그러니 에미가 말을 못 합니다. 차라리 못 봤으면.... 공부 방법을 바꾸라고 강력하고 말했을텐데 말이죠.
방학이 얼마 안 남았네요.
이번 방학에는 약한 과목을 보충하는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시험 결과를 놓고 보자면 영어도 국어도 주요과목 모두 학원을 보내고 싶은 마음 굴뚝 같지만요.
아이의 혼공 시간을 충분히 주자는 초심을 지키려고 합니다.
신문이 좋아 아침에 미처 못 읽은 신문은 학교까지 가져가서 읽는 아이라 종이신문도 한 종류 더 구독 신청하려고 하구요.
방과후 수업도 이번엔 폐강되지 않아 다행히 집에만 있진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다시 방학 시작이네요.
긴긴 겨울방학, 사춘기 아들과 씨름할 전국의 모든 아미...아니 에미...님들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