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아들만 둘

설, '악(큰산 악)', 산으로.....

괜히 '악'이 붙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

by Hello Earth
설악산의 울산바위. 울산에서 바위가 열심히 금강산까지 가다가 설악산에 주저앉아버렸다는 전설이 숨어있는 곳입니다.^^

오늘의 목적지입니다.


사실은 목적지를 정해두었던 건 아니...구요.

그냥 설악산에 가야지 하는 생각만 있었지 울산바위 흔들바위는 생각도 못 했답니다.

그냥 아기산들(아차산,용마산 등)을 올라가보니 갑자기 용기 백배해서 기왕 속초 숙소 예약한 거 가보자 한 거였죠.

(나중에 다녀오고 나서야 왕년 대학생 때 흔들바위까지는 갔는데 선배들은 울산바위까지 가는 동안 저를 포함한 동기들은 포기하고 흔들바위에서 놀았던 기억이 어슴푸레 나네요... 이힛)

아침을 먹고 있자니 부슬부슬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못 가는 걸까?반 쯤 포기하다가 식당 아주머니께 여쭤보니 비가 와도 우비만 있으면 가는데 무리가 없다고 하셨지요.


고뤠요?고럼 왔으니 가야지.

의욕 충만한 어린이들을 데리고 야심차게 출발합니다.

겨우겨우 편의점을 찾아 우비를 사가지고 나오는데 갑자기 구름 사이로 햇.빛.이.....?


역시 준비가 부실하면 몸도 고생하고 돈도 고생인 거지요. 하지만, 어찌됐든 비 예보는 있으니까요. 허허.


설악산 소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려니 아직 10시도 안 된 시각인데 차들로 북적입니다. 그래도 단풍 시즌이 아닌지라 이 시간에 차 댈 곳이 있어 다행이었죠.


흐린 날씨에 바람 마저 거세서 패딩 입은 사람들도 간간히 보이는데요. 대부분은 요즘 날씨가 포근했어서인지 패딩 없이 다소 추워보이는 차림새들. 하필이면 추워지기 시작한 날이었는데요. 다행히 저희 가족은 여러 번의 등산 경험으로 얇은 옷을 몇 겹씩 겹쳐 입었답니다.(그래도 내려올 땐 워낙 바람도 거세고 날씨도 쌀쌀해져서 추웠답니다. )


초반엔 평탄한 길이 주욱 이어집니다. 아이들도 휠체어 탄 어른들도 갈 수 있는 아주 완만한 경사의 포장길.

그래도 지루하지 않게 신라 때부터 이어져 온 사찰도 보이구요. 국립공원을 상징하는 곰이 있는 포토존도 있어 사진도 찍을 수 있지요. 돌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소원 빌고 싶은 등산객들이 올려놓은 한 무더기의 돌탑들도 눈에 띕니다. 두 아이들도 화장실 간 아빠를 기다리며 신나게 돌을 옮기며 소원을 빌었다지요.

(형님이 동생한테 돌을 올리면서 소원을 빌어야 한다며 이미 동생이 올려놓은 돌을 다시 쥐어주네요. 동생은 형님 말대로 다시 돌을 올리며 소원을 빌었다는데...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요?)

설악산 이름에 걸맞게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설산입니다. 큰 산이라는 뜻을 가진 '악'산이지만 아직까지 큰 산 느낌은 안나죠?

한참을 이어지는 평탄한 길.

흔들바위 조금 못 미쳐서야 나타나는 돌계단.

덕분에 흔들바위까지는 아주 가뿐하게 도착합니다.

바위가 많은 바위산. 곳곳에 엄청나게 크면서도 모양은 다 다른 개성있는 바위들이 많아 올라가는 길이 지루하지 않았답니다.

입는 것에만 신경쓰느라 싸온 것이라곤 토마토 뿐. 밥을 든든히 먹지 못한 탓에 배고팠던 아이들이 토마토를 먹으면서 옆에서 김밥을 먹고 있던 가족들을 흘깃 바라봅니다. 용마산에서야 김밥을 싸갔으니 그렇다치고, 설악산 인근에 김밥 파는 집을 보질 못해서.... 에미의 불찰이긴 하지만 어린이들이 주는 밥을 안 먹은 거니 뭐 어쩔 수 있나요.


에미는 흔들바위에서 다시 돌아가려는데 아이들이 울산바위까지 가야겠다며 확신에 찬 얼굴로 바라봅니다. (미리 알아보지 않고 갔으니 망정이지 알았으면 가겠다고도 안했을텐데 말이죠.)

하는 수 없이 울산바위로 출발합니다.

울산바위로 가는 초입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습니다. 그저 돌과 나무로 연결된 계단이 끝없이 이어지는 일반 산길이니까요.

가파른 계단길. 뒤를 돌아보면 아찔한데 이건 시작에 불과합니다. 올라가면 밑이 뻥 뚫린 계단길이 바위를 빙 둘러 있다고 하더라구요. 에미는 안가봤으니 그야말로 카더라통신입니다^^

돌계단이 끝나고 철계단이 등장합니다.

처음에는 일반 산길에 둘러져 있더니 어느새 밑이 뻥...시원하게 뚫린 철계단길.


에미는 중간까지 오르다가 결국 포기하구요.

한참 앞서가던 세 사람에게 에미가 포기를 외치니 아빠는 황당해서 뒤돌아보고, 어린이들은 귓등으로도 안 쳐다보고 호다닥 올라가버립니다. 결국 고소공포증 아빠는 어쩔 수 없이 한숨 쉬며 올라가네요.

어린(?) 둘째에게 뭔일이라도 생길까 걱정은 되고

올라가지는 못 하겠어서 그 자리에 서서 내려가지도 못하고 올라가지도 못한 엉거주춤한 상태로 마냥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고소공포증 남편만 혼자 아이들 딸려 보낸 게 미안하기도 하고,걱정도 되고 말이죠.


올라가는 사람들 내려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비켜주며 엉거주춤 기다리자니 누군가가 와서 물어봅니다.


"울산바위까지 얼마나 걸릴까요?"

"음...죄송한데 저도 못 올라가고 멈춰있는 상태라...서요...하하"

그분들이 대충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허허 웃으며 다시 계단을 올라가고 얼마 뒤 남편에게 전화가 옵니다.


작은 아이는 더이상 못올라가겠다고 하고, 큰 아이는 정상까지 올라가겠다해서. 큰 아이 혼자 올려보내고 거의 막바지 계단 입구에 둘이 서 있었는데 작은 아이가 무서우니 내려가겠다 하여 큰 아이를 보내놓고 내려오고 있노라고 말이죠....


헐.....

아무리 산 좀 탈 줄 아는 중딩이라지만 그 험한 바위산 정상까지 애 혼자 보내고 내려오는 중이라니오....


놀란 에미는 후덜덜덜한 다리로 작은 아이를 픽업하러 철계단을 올라갑니다. 결국 철계단 끝까지 오르고 가파른 정상으로 이어지는 중간 즈음에서 겨우 작은 아이를 인계받았습니다. (모성애의 승리네요. 휴우)

작은 아이는 저와 내려가고 큰 아이를 픽업하러 남편이 다시 올라가야 하는 상황.


모험도 이런 후덜덜한 모험이 있나 속으로 기가 막히면서도 작은 아이와 조심스레 철계단을 내려갑니다.


놓고 온 남편과 큰 아이가 못내 걸려 계속 뒤를 돌아보면서 멈춰서 기다리다가 다시 내려가기를 반복할 즈음...남편이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끝내 울산바위 위를 올라간 거지요.

정말이지 '스고이~'라며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까지 튀어나올만큼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참고로 날씨가 춥고 우중충했던 날임에도 설악산 등반 중 본 외국인이 정말 많았습니다. 중국어 일본어 영어에 알 수 없는 동남아어까지 정말 다양하고도 많은 외국인들을 본 것 같아요.)


흔들바위에서 다시 만난 남편과 큰아이는 결국 정상까지 다녀왔다고 합니다. 큰 아이가 먼저 정상에 올라가고,작은 아이를 저에게 인계한 남편도 큰 아이 걱정에 고소공포증을 뚫고 울산바위 정상에 오른 것이죠. 정말이지 부성애의 승리라고밖에 표현을 못 하겠네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신파....느낌?
sticker sticker
보기만 해도 아찔한 버섯바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 바라만 봐도 아찔한 곳. 다시 가라하면...음.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아찔한 구간에서는 휴대폰으로 찍을 여유 따윈 없었을텐데 그래도 그냥 갈 순 없다며 악착같이 찍었다는 후문입니다. 버섯바위, 아찔한 계단. 그저 사진으로 보기만 해도 후덜덜한 에미인데 말이죠.


큰 아이가 먼저 오른 정상 한 쪽 버섯바위 쪽으로 향하는 다리는 널판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요.


큰 아이 말에 따르면 버섯바위로 향하는 다리를 이루는 널판지가 심하게 삐그덕거리기도 했고, 심지어 널판지 하나(?)는 빠져 있었다네요. 담력 큰 큰 아이조차도 차마 못 가고 뒤돌아서던 찰나에 아빠와 마주쳤다고 하는데요.


남편이 아무 생각없이 "가보자!"

하기에 큰 아이가 상황을 설명하니

두 말 않고 바로 뒤돌아섰다는 후문입니다.


생존! 안전! 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움직였을 두 사람의 표정을 생각하니 어찌나 우습던지요.(정작 에미는 가지도 못한 주제에, 담담했을 큰 아이와 안절부절 못 했을 남편님의 얼굴이 오버랩되어 속으로 어찌나 웃었던지요. 하하하)


흔들바위에서 다시 남편과 큰 아이를 만나니 이산가족 다시 만난 느낌이 이런 걸까요?

살아 돌아와서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요.....


ㅇㅇ이(둘째 아이)가 올라가니까 어찌나 어른들이 칭찬하던지. 어떤 사람이 "엄마는 어딨니?" 물으니까 옆에 있던 사람이 "아이고 엄마가 어딨긴. 저 아래에서 덜덜 떨고 있는 거 아까 봤잖어."라고 하더구만.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니 못내 부끄러워진 에미.

길이 하나뿐이라 아마도 제가 덜덜 떨며 서 있는 걸 보고 지나간 분들이었겠죠.

sticker sticker


비록 작은 아이도 끝까지 오르진 못했지만 정상 바로 아래, 에미보다 더 높이 올라갔으니 정말 대단하다고 엄지 척 하고 싶습니다. 무리하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서 잘 돌아와주어서 감사하기도 하구요.

(칭찬받으러 간 병관이처럼 엘리펀트 이어스가 되어 어른들의 칭찬을 한 몸에 받은 작은 아이 어깨가 쪽쭉 올라간 시간이었답니다.)


등산을 갈 때마다 정말이지 놀라움과 무한 가능성을 확인해주는 우리집 홍길동 큰 아이.

(청출어람 청어람은 이럴 때 쓰는 말일까요? 하지만 쪽풀보다 더 푸르다 하기엔 에미가 쪽풀조차 못되는지라... 돌연변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허)

고소공포증을 이겨내고 큰 아이를 그림자처럼 잘 따라서 올라가준 남편님께도 무한 믿음과 박수를 보냅니다.


돌아오는 길.

어느새 부슬부슬 내리는 빗방울과 세찬 바람에 몸이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 올라가는 가족들도 많더라구요. 어린 아이까지 있는 가족들도 있었는데... 잘 내려왔겠죠?)

손이 얼어서 챙겨온 우비를 찾질 못하다보니 가지고 온 여벌옷을 뒤집어쓰고 지친 발을 옮겼습니다. 올라갈 땐 수월했던 그 길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요.

갈 땐 평평해서 좋았는데 내려갈 땐 평평해서 다 왔나보다 싶은데 끝도 없이 이어져서 더욱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산입구에서 호로록 밥을 먹고 차에 앉는 순간 큰 아이부터 잠이 듭니다. 숙소에서도 피곤했던지 좋아하는 사우나도 포기하고 잠을 택합니다.


추워서 피곤하고 긴장해서 더 피곤했던 것 같기도 한데요. 결국 그렇게 체력이 좋은 큰 아이조차도 다리가 후덜덜거린다며 등산 후유증으로 하루 더 고생했지요..(그럼에도 집에 도착하자마자 혼자서 또 뒷산에 올라갔다오는 큰 아이. 그야말로 엄지 척을 올립니다!)


아기산(아차산,용마산)을 먼저 올라가길 잘 했다며 설악산은 어른산도 아니고 증조할머니 산이라며 살아돌아왔다는 것에 몇 번이나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작은 아이도.


멋 모르고 울산바위까지 올라갔다가 집에 오자마자 뒷산에 다녀와서 신문의 지리산 기사를 찾아 읽는 큰 아이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다며 하루를 끙끙 앓다가 숙소에 마련된 안마의자로 기분이 좋아지신 남편님도.


넷 중에 제일 저질체력이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따라다니면서 남편님과 나란히 아이들 잠든 시간에 안마의자를 하며 느긋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에미도.


힘은 들었지만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올린 귀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물론,

다음에 또 가자 하면 그건 작은 아이가 조금 더 큰 후에 갈 것 같아요.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데 작은 아이까지 챙길 여력은 없을 것 같아서 말이죠. 하하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