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빠를 신혼부부가 탄생하는 결혼식에 뺏긴 주말입니다.
하지만 엄마의 고민은 길지 않지요.
가즈아~
큰아이에겐 고영희님들이 있어 좋은 곳이고 작은 아이에겐 서울둘레길 스탬프를 찍을 수 있어 좋은 곳.
엄마에겐 범상치 않은 바위 산행이 있어 좋은 곳입니다.
백제와 고구려의 역사가 모두 있는 곳.
바둑을 좋아했던 개로왕이 묻혀있는 곳.
지나치게 정확해서 죽음을 당했던 점쟁이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곳. 이곳을 터전으로 삶을 이어가던 민초들의 고난했던 삶의 흔적들을 보물찾기처럼 떠올려볼 수 있는 곳.
이 곳은 아차산과 용마산입니다.
한 번 오자마자 반해버린 산이기도 하지요.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산인지라 계단도 많이 있지만, 그렇게나 많은 사람이 오가는 산임에도 생각보다 친절하지 않은 바위 산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산의 입구에 터줏대감처럼 머무르며 오가는 등산객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는 두 고영희님들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지요.
큰 아이 말을 들어보니 중성화 수술이 된 냥이님들이라네요. 귀 한쪽이 아주 조금 잘려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면서요. 어찌되었든 사람 손을 탄 고영희님들이라는 건 확실하네요. 따뜻한 햇빛에 식빵굽고 있다가 큰 아이가 연못으로 가서 나뭇가지로 슬그머니 옆으로 가서 붙어 같이 연못 속을 바라봅니다.
"집사야. 도롱뇽 찾아서 나 점심 주는 고양?"
지나가는 사람들도 신기한지 바라봅니다. 마치 사람마냥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큰 아이를 따라 물 속을 바라보았거든요. 다른 쪽으로 가서 휘젓자니 또 따라와서 슬그머니 앉아 물 속을 바라보고 말이죠.
한참동안을 휘젓으며 잠시 얼굴을 비추고 사라진 도롱뇽을 찾아보았지만, 도롱뇽들도 고영희님에게 점심거리가 되기는 싫었던 모양이지요. 끝내 두 번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아 한참을 막대기만 휘젓다가 고양이들과도 작별하고 다시 산행을 시작합니다.
고양이들을 지나면 바로 바위산이 시작됩니다. 나무 한 그루 없이 바위만 끝없이 펼쳐지는 길. 꿀렁꿀렁한 바위 모습이 흘러가던 물이 고양이들에 놀라 호다닥 돌처럼 굳어버린 것 같은 착각마저 일으키는 신기한 바위산행길.
길인지도 모르는 바위를 한참을 오르다가 힘들면 바위 아무데나 철퍼덕 앉아도 그림이 되구요. 시원하게 흘러가는 한강 풍경이 휘영청 눈 앞으로 펼쳐집니다. 강바람 산바람에 정신없이 머리칼을 쓸어올리자면 바위산을 오르며 흐르던 땀도 쏙 들어가버리고 맙니다. 다시 벗었던 겉옷을 주섬주섬 꺼내입고 가방 속에서 아침내내 싸느라 고생했던 김밥과 과일을 꺼내 입안으로 털어넣습니다.
아직 산행 초입인데 벌써 간식이야??
큰아이가 투덜거리든말든 일단 앉았으니 간식부터 펼쳐내는 에미. 겸사겸사 짐 좀 줄여보자는 말은 김밥과 함께 꿀~떡 삼켜버리고 맙니다.
산행 중간중간 지루해질 틈도 없이 고양이들도 만나고 새도 만났는데요. 아차산을 한참 오르다보니 소방대원들이 우르르 내려오더라구요.
음? 비번이라 봄산행 나오셨나?
그렇게 다시 오르다보니 저 눈앞이 깔딱고개 쉼터인데 소방대원들이 헬기 곧 내려온다며 쉼터를 통제하니 서둘러 지나가라네요.
눈앞에 스탬프가 있는데 들어가질 못하다니...
작은 아이가 안절부절 못하며 들어가야 하는데...스탬프 찍어야 하는데...를 반복해보지만 혹여라도 헬기가 올까봐 에미는 어쩔수없이 아이들을 독촉해 쉼터를 지나쳐버리고 말았답니다.

어리둥절, 황당, 안절부절을 거쳐 겨우 작은 아이가 정신을 차릴 때쯤에는 이미 용마산 정상으로 가는 중간쯤이었지요. 헬기가 다가오니 아이 둘다 약속한 듯 쌍안경을 꺼내듭니다.
누군가 부상당했는지 헬기가 올때는 조심스럽게 다가오더니 환자를 싣자마자 부리나케 사라져버립니다. 부디 환자가 무사히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기를 바라며 다시 용마산 정상으로 향합니다.
초반에 고영희님을 영접하느라 지체되었고, 헬기 구경하느라 또 지체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듯 말듯한 시간.
서둘러 용마봉 정상을 찍고 바로 하산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사이 사이에는 정리되지 않은 바위들로 꽤나 가파른데요.
에미는 폴대를 두개나 꿰차고, 작은 아이는 폴대 하나에 의지하며 조심조심 내려가는 반면, 큰 아이는 폴대도 없이 성큼성큼 내려갑니다.
거의 엉금엉금 내려가다시피 하는 에미는 저 멀리서 "기다려!"만 외쳐보지만, 이미 저 멀리 내려가버린 큰 아이 귀에는 들리지도 않나 봅니다. 나름 험한 바위산인데 평지처럼 가볍게 바람처럼~ 내려가는 걸 보면서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요. 신기하기도 하고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살아있었으면 아마 큰아이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에미와 동생이 거의 보이지 않을 즈음 멈춰서 기다려주니 고맙기는 합니다.
(나중에 아이 학교 체력장 결과를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집니다. 체력이 거의 탑 급이라네요.....)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보냄에 감사하지만, 예상 못한 헬기의 등장 때문에 다음 산행도 스탬프 찍으러 아차산 예약이네요. (으흐흐흐~ 아차산을 사랑하는 에미는 속으로만 소심하게 '예쓰!'를 외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