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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3. 2022

TV가 뭐에요?

TV를 통해 나를 타인과 비교당하는 것을 거부한다.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우리집엔 TV가 없었다.

남편도 TV가 없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물론, TV를 대체해서 컴퓨터가 남편의 시간을 빼앗게 되면서 집에 오자마자 컴퓨터 앞부터 앉는 바람에 독박육아는 여전했지만...

(같이 살면서 독박 아닌 독박육아로 난 성격이 거칠어져갔다.)


우리 아이들은 TV로 인한 전쟁은 겪지 않고 자라났다. 태어날 때부터 TV가 없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밥 안 먹고 머리 자를 때 악쓰고 울어대던 첫째는 자제한다고 했어도 핸드폰으로 뽀로로도 보고, 헬로 카봇도 보고 자랐다. (이때 영어노출을 좀 시킬걸 하는 아쉬움이 많이 있다.)

둘째도 동영상을 보기는 한다. 하지만, 5살인 지금까지도 머리 자를 때는 옥토넛 동영상을 보거나 요즘에는 그 마저도 안 보고 페파피그 같은 영어 영상, 혹은 형아와 함께 보는 동물 다큐멘터리, 세계테마기행이 전부다. 그래서 그런지, 뽀로로도 헬로카봇도 터닝메카드(요즘엔 이런거 안보려나?)에 관심이 없고, 변신 로봇이 가지고 싶으면 직접 만든다.


요즘은 형아가 영어수업을 끝내고 나면, 잽싸게 모니터 앞에 앉아서 영어 수업을 듣는다. 그냥 전래동화 스토리텔링이라 수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단어도 큰 소리도 따라 읽고, 선생님 말투도 따라한다. 그래서 그런지 영어 발음도 꽤나 좋고, 내가 'r' 발음 없이 한국 스타일로 영어를 말하면 못 알아듣는다. (쩝)



사춘기에 곧 진입 예정인 큰 아이가 컴퓨터 게임에 노출될 날도 머잖은 것 같기는 하다. 물론, 작년 코로나 사태를 겪으며 놀 거리가 없어진 큰 아이가 사촌 형아와 함께 지내며 피카츄와 포켓몬고 게임에 노출되어 곤욕을 치루기는 했다. 해서, 올 해 초 휴직과 함께 독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책 1권 당 게임 시간 10분이었으니 나름 게임 중독(?)으로 고생하기는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독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아이는 게임중독에서 빠져나왔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여전히 장애물은 있다.

4월 즈음, 글램핑을 갔을 때 아이는 심심하다며 티비를 틀어 도라에몽을 보더니 결국 1박 2일 내내 도라에몽만 보다 온 적도 있었고, 할아버지 댁에 갈 때면 심심하니까 자연스럽게 티비를 틀어 도라에몽을 보기도 한다. 여행을 갈 때마다 늘 티비를 틀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을 애써 외면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은 외면하지 못하고 틀어주곤 했다. 여행 때야 잠시 일상에서의 탈출이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생각보다 아이가 한 번 빠지면 아주아주 깊이 빠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장기간동안 쌓아왔던 노력이 일순간에 수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주아주 많이)


작은 아이는 동영상을 무지 좋아한다.

사실 좋아하기는 엄청 좋아하는데, 막상 티비를 틀어놓고 형아가 푹 빠져 있거나 동영상으로 다큐멘터리 등에 푹 빠져있으면 작은 아이는 얼마 보지 못하고 그냥 나와버린다. 장시간 집중하기엔 긴 호흡의 스토리가 아직 이해가 가지도 않을 뿐더러, 다큐멘터리는 재미가 없는 모양이다. 이래 저래, 동영상은 페파피그가 최고고 형아 수업으로 듣는 영어수업이 제일 재미있는 작은 아이에게는 컴퓨터 모니터가 TV인 듯하다.(실제로 아이는 컴퓨터 모니터를 TV냐고 묻곤 한다.) TV와 컴퓨터의 차이는 누구의 도움 없이도 편하게 리모컨으로 켜고 끌 수 있느냐, 아니면 누군가가 켜주지 않으면 볼 수 없느냐의 차이다.




TV가 있는 집은 어떤지 잘 모르겠다.

다행히 여행 때와 달리 집에는 TV라는 매체 자체가 없다보니, 집에 오면 숙제를 하고 책을 펴는 게 자연스럽다. 코로나로 갈 곳이 없고 놀 친구도 없어 매일매일이 꽤나 단조로운 일상이기는 하지만, TV와의 전쟁이 없다보니 갈등 요소가 줄어들어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대개의 시간을 아이는 숙제를 마치고 책을 보거나 키우는 곤충의 사육매트를 갈아주거나 먹이를 넣어주고, 곤충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다. 그래도 심심하면 도서관으로 혼자 버스 타고 가서 좋아하는 만화책도, 좋아하는 곤충 책도 실컷 본 후 알아서 버스타고 돌아오기도 한다. 남들보다 밥 먹는 시간이 길다 보니(1~2시간) TV가 없이도 하루가 금방 간다.



이런 연유로 우리 아이들은 MBC, KBS, SBS 이런 공중파 방송사를 모른다.(따라서 언론에 당연히 관심이 없는 부작용도 발생하기는 한다.) 당연히 유행하는 드라마와 예능도 알 수가 없거니와, 유일하게 방송으로 알고 있는 프로그램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정도?


아침마다 틀어놓다보니, 작은 아이는 방송 첫 부분 국악버전 "김어준의 뉴~~스 공장"을 외우다시피 했다. (지금은 버전이 바뀌긴 했다.) 큰 아이는 가끔 코로나 상황을 뉴스공장에서 듣고 아침부터 이것저것을 물어대는 통에 가뜩이나 긴 아침식사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했다.



예전엔 TV가 없는 우리집을 별종이라고 했었는데, 요즘은 거실의 서재화가 꽤 널리 퍼진 것 같다.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강세가 이어지면서 TV라는 매체가 없이도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는 매체가 다양화되었기 때문이다. 카공족이 늘어나고, 카공족이 결혼과 함께 집을 카페화하는 게 일상이 되면서 이 추세가 북카페형 거실이라는 형태로 육아 현장으로도 반영이 된 것일 수도 있다. 바로 나처럼...



TV없는 생활이 12년을 넘어가다 보니 TV 드라마에 울고 웃는 사람들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TV 드라마나 예능을 보며 울고 웃는 시간이 무척이나 아깝다. 세상과의 소통을 위해 시사프로그램은 꼭 찾아 보고 있고, 핵심 뉴스는 놓치지 않으려고 핸드폰을 쥐기는 하지만, 드라마나 예능은 그 늪에 빠지면 중독처럼 시간을 뺏겨버릴까 싶어 일부러 찾아보지도 않는다. 요즘은 연예인 개인사 이야기, 가족 이야기로 예능이 채워지는 것 같다. 예전엔 느낌표 처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좋은 프로그램도 많았는데 언젠가부터는 주요 예능이 연예인, 연예인 가족의 개인사를 관찰 예능으로 하는 프로그램들로 넘쳐난다. 일반 서민의 눈높이에서는 다른 세계에 사는 연예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도 하거니와, 각종 PPL로 넘쳐나는 방송을 보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본연의 삶에 충실하기는 어렵다.

"난 왜 이정도도 구입 못하지?", "연예인이 산 **제품을 우리 아이도 쓰게 하면 좋을텐데... ", "저 아이는 참 예쁘게 잘 크는데 우리 아이는 같은 나이인데 왜 저렇게 못하지?" 등등

관찰 예능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건 너무도 피곤한 일 같은데 여전히 현장에는 이런 관찰 예능이 잘 되는 걸 보면 다른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려는 심리 때문은 아닐까?


고로 나는 거부한다.

일반 서민을 넘어서는 연예인이라는 다른세계의 사람들을 위해 내 소중한 시간을 소비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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