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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03. 2022

한국사 이야기

큰 아이의 한국사 입문 마중물-용선생

"아들, 밥은 먹고 있는 거지? 투명 숟가락에 투명 밥이라 에미 눈엔 안 보이네…"


오늘도 삼시 세끼 밥 먹이기 힘들다.

밥 시간만 되면 습관적으로 책을 들고 오는 큰 아이.

밥 앞에 제사 지낸다고 고개 폭 숙여서는 책만 보는 아이 때문에 속이야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건마는 하악하악~ 일단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마음을 가라앉힌 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장하여 밥 먹기를 종용하곤 한다.

하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기에 내 몫의 독서대를 펼쳐주니 아예 대놓고 책 보느라 밥은 한 숟가락도 먹지 않은 채 한 시간 반이 흐르는 건 이제 예삿일이 되어버렸다.

그러니 밥은 밥대로 식어 맛 없고, 점심밥이 미처  소화가 아직 되지도 않았는데 저녁밥 시간이 되니 또 한시간 두시간… 키도 반에서 1~2등(작은 순서로)을 다투고 몸도 여전히 주근깨 빼빼마른 빨강머리 앤도 저리 가라 할 정도의 깡마른 몸 그대로다. 희한하게도 수업이 끝나서 나한테.하는 얘기라곤  만날 밥 먹어야 된다며 수업 빨리 끝내 달라는 친구가 오늘은 뭘 먹었대 라는 이야기 뿐.(어느 날은 잔치국수가 나와 8그릇을 먹고 어느 날은 돈가스가 나와 6번을 리필하고 어떤 날은 본인 등교일이 아닌 날에만 맛난 반찬 나온다며 교문 앞에서 시위를 하고, 수학시험 잘 보면 치킨 두마리에 피자 사주겠다는 엄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시험을 잘 보았다는 둥 전설 같은 이야기들 뿐이다. 부러우면 지는 건데 난 이미 진 것 같다.)


언제는 책 읽으라더니 책 읽는데 뭐라 하기도 참 그렇다. 위인전에 보면 끼니도 잊고 밤새 책을 읽는 위인들도 있지 않은가. 라고 위로해 보지만 남는 건 한숨뿐이다. 위인은 쥐뿔~


그래도 내가 요즘 말 못 하고 있는 건 아이가 처음으로 한국사 책을 보고 있기 때문. 얼마전 용선생 세계사 15권을 내가 완독했을 때만 해도 역사에 전혀 관심 없던 아이였다. 만날 듣도보도 못한(내 새끼 친구 이름도 모르는데 왜 그 머나먼 곳에 사는 듣보잡 곤충 이름까지 알아야 하냐고)

곤충 이름만 줄창 읊어대는 통에 내 귀와 맞장구를 쳐줄 입만 떼어서 공중에 동동 띄워 아이 입 앞에  갖다 대 주고 나는 멀리 달아나버리고 싶었던 적도 많았더랬다.


아무리 아이 앞에서 역사책 지리책을 읽어대도 관심 없던 놈이 무심코 펼쳐둔 책 페이지를 슬쩍 보고 재미있었던 것인지 언젠가부터 하루에 한 권씩 보고 있었던 것.

숙제가 끝나자마자 펼치고 저녁 식사 시작과 동시에 독서대에 책을 착장, 그리고 그 상태로 2시간이 흐르면 나의 잔소리와 함께 아이의 숟가락이 바빠지고 힘든 저녁시간도 어찌저찌 흘러간다.


그렇게 읽기 시작한 한국사가 어느새 9권.

미처 10권을 빌리지 못해 못 읽고 있지만 5학년이 되기 전에 한국사를 접하게 되어 다행이지 싶다. 수많은 육아서에서 5학년 2학기 사회는 통째로 한국사라 미리 접해보지 않으면 수업이 재미 없어 포기할 수 있다며 겁을 주기에 속으로 무던히도 불안했었다가 이제 한숨을 돌릴 듯 하다. 한국사 자체가 무서웠던 것이 아니라 아이가 이해 되지도 않는 수업을 한 학기 내내 들으며 빠질 좌절감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직 그릿이 없는 아이라 포기도 빠르고 새로움 도전도 웬만해서는 하지 않는지라 빠른 포기와 함께 공부 자체를 놓으며 사춘기를 보낼 일이 걱정이었던.것.

다행히 아이는 내 우려와 달리 자신만의 독서 세계를 나름 찾아가고 있었다. 여전히 자발적으로 가는 도서관에서는 만화책만 읽고 있지만 내버려두고 있다. 집에서 줄글책을 죽죽 읽는 아이라면 굳이 만화책을 기피시킬 이유도 없기 때문. 먼나라이웃나라에 빠져 정식 역사책은 성인이 되어서야 접했던 나보다야 훨씬 낫지 싶다. 중고등학교 내내 역사와 지리는 늘 만점이었지만 얼마전까지도 역사책에선 절대 볼 수 없는 아제르바이잔이 어디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나보다야 낫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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