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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Mar 10. 2022

지하철을 타면서

사람들의 똑같은 모습, 조금은 아쉽다.

작은 아이는 차를 타고 등원을 한다. 걸어가기에는 많이 먼 20~40분 거리의 어린이집.

출근할 땐 나와 같이 가지만 지금처럼 휴직 기간엔 어린이집 등원시키는 것이 하루 중 제일 큰 일이다.

매일 아침, 작은 아이는 늦잠을 자고, 나는 매일같이 갈등한다.

차를 탈 것인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것인가.

차 사고가 나고 한동안 운전대를 잡기 어려워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대중교통을 타는 게 더 빠르다는 생각도 했다.

그 즈음 건너던 한강다리가 한참 포장공사 중이었고, 우리는 다리를 건너야만 갈 수 있는 어린이집인지라 길은 늘 막히기 일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나니 길이 막혀도 정확히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어 편했다.

왜 이 편한 걸 생각 못했나 자책하기도 했지만, 사실 출근할 땐 아이와 함께 출근 시간에 대중교통을 타는 건 모험이었기에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아니 몇 번 시도했지만 버스를 갈아타자니 번번히 느린 아이 걸음 때문에 버스를 놓치기 일쑤였어서 그냥 포기했다는 게 맞을 듯하다.)


휴직중이니 늦을 일도 없이 여유롭게 출발하고, 예전 큰 아이 같으면 빨리 가자고 독촉했을 법하건만, 작은 아이 때는 늦어도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는다는 걸 알기에 여유가 생겨서 독촉할 일도 없다.

오히려 출근시간대를 피해 등원시키느라 9시 넘어 출발하곤 하는데, 아이와 함께 지하철을 타다 보니 혼자 탈 땐 보지 못하는 풍경들을 보곤 한다.

지하철 투어를 할 때도 느낀 거지만, 사람들은 서서 가는 사람이나 앉아서 가는 사람이나 모두들 한결같이 이어폰을 양쪽에 끼고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이다. 생긴 모습도 다르고 차림새도 다르지만 정말 한결같은 풍경이었다. 신기하기도 했지만 약간 무섭기도 했다. 정말이지 대화는 사라지고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세상.


예전에 남편과 연애 시절에 본 월-E가 생각났다.

쓰레기로 가득찬 지구에서 벗어나 우주선(?) 속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은 개별의자에 앉아 각각의 화면으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 월-E의 소동에 사람들이 부딪히면서 의자를 덮고 있던 투명 덮개가 벗겨지면서 그제서야 옆자리의 사람을 인지하고 바깥의 아름다운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그 전까지 사람들에게 온 세상이란 의자와 의자 앞에 달린 화면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지금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는 듯하다.



반대로 작은 아이는 아직 핸드폰 세상보다 바깥 세상에 더 관심이 많다보니 자리가 있는데도 일부러 서서 바깥 세상을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곤 한다. 지나가는 버스 번호도 읽고,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건너다가 한강 물 속에서 튀어오르던 물고기를 마주하기도 했다. 한강을 건너가는 기러기, 오리들도 보고, 겨울이 되느라 떨어지는 은행잎 꽃비를 보며 웃음꽃을 피우기도 했다. 옆에 지나가는 버스에 탄 아이와 서로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아이 눈에 보이는 세상은 버스도 지하철도 많고 가게들도 많고 계절도 변하는 신기한 세상인데, 어른이 되면서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놓아버리고 작은 핸드폰 속 세상에만 집착하는 게 아쉽기도 하다.



아이와 등원길에는 나 또한 핸드폰을 버리고 아이와 같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보다가도,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나 또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네모난 핸드폰 속 세상에 얼굴을 묻곤 한다. 요즘엔 의식적으로 책을 한 권씩 넣어다니기도 하고, 책이 없는 날엔 전자책을 펼치기도 한다. 의식적으로 핸드폰을 멀리하고자 노력도 해본다. 쉽지는 않지만 핸드폰을 버리고 책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도 휘리릭 가고, 스토리의 여운이 오롯이 내 마음속에서 출렁이곤 한다.


여전히 핸드폰을 내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오늘도 나는 핸드폰을 보지 않기 위해 책을 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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