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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만 둘

초2가 수학퍼즐을 만나면...

by Hello Earth

수학퍼즐을 좋아하는 저희집 둘째 아이.

서점에 갈 때마다 책보다는 늘 수학퍼즐 책 한 권은 꼭 받아들어야 뿌듯해하는 아이인데요.

특히나 성냥개비, 패턴, 규칙 등을 다루는 퍼즐에 진심인 아이입니다.


아이가 6~7세 즈음 처음으로 이런 퍼즐류를 사달라고 했을 땐

이런 걸 돈 주고 사서 푸는 사람도 있나?


싶은 생각에 엄청난 문화적 충격도 왔었는데요.

지금은 서점에 가야 할 때면 아이에게 제일 먼저 퍼즐 코너를 소개해주고 작은 아이가 읽을 수 있는 자리를 잡아준 후 제 책들을 보러 가는 게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루했던 서점은 그렇게 아이의 즐거운 경험이 되기 시작한 것이죠.


이쯤되니 제가 휴가를 내서 혼자 서점에 갈 때도 자꾸만 수학 코너를 기웃거리게 되었습니다. 수포자였던 제가, 수능 수학 반토막 성적 때문에 대학도 낮춰 가야했던 제가 말이죠.


치매 예방은 되겠지.

라며 가볍게 시작한 수학 퍼즐인데,

아 요놈 자꾸만 짝사랑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네요.

곁을 쉽게 내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게 만들면서 저 혼자만 안 풀려서 속만 끓이며 애태우게 하는 묘한 매력 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들이 숙제를 하는 동안, 심심했던 제가 서점에서 데리고온 수학 퍼즐 책을 펼쳐들고 끙끙대고 있었습니다.

잔소리도 안하고 꼼짝 않고 뭔가를 하는 에미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저 멀리서 냄새 맡고 작은 아이가 슬그머니 다가와 앉습니다.


둘이 끙끙대고 있자니 저 멀리서 숙제를 다 마친 큰 아이도 냄새 맡고 다가오네요.


옛다! 공부도 안하는데 요거나 풀어봐라!


하며 먹이를 노리는 하이에나차럼 눈 반짝거리는 두 아이들에게 이 문제 풀면 아이큐 130 인정해주마 하면서 냅다 미끼를 던졌습니다.


이 문제를 놓고


큰 아이는 순서와 맨 아랫부분의 성냥개비수를 변수로 하는 함수로 풀겠다며 함수 공식을 이래저래 돌려보고,


저는 (어설프게 배운) 등비수열 같으니 수열로 풀겠다며 모양과 갯수의 상관관계를 요래조래 돌려보고,


작은 아이는 그런건 다 모르겠고, 규칙이 있을 거야. 라며 숨은 규칙 찾기에 돌입합니다.


그렇게 30분도 더 넘게 끙끙대던 아이들.


116 땡!

000 땡!


답이 아니라고 하면 포기할 법도 한데 누구 조금만 다가가면 금방 풀릴 것 같은 오묘한 수학 퍼즐에 모두가 집중하는 시간.


그 때


"답 89!"


요란스레 입만 움직이며 호들갑 떨다 너무 놀란 에미, 함수로 될 거라며 머리를 끙끙 싸매던 큰 아이의 눈이 순간 정적과 함께 작은 아이에게 향합니다.


".......정답!"


"와!!!"


그렇게 중딩의 함수도 에미의 수열도 통하지 않은 그냥 순수 레알 날것의 규칙만으로 정답을 맞춘 작은 아이 승!

즐거워하는 동생을 두고 끝까지 함수로 풀겠다는 큰 아이도 결국 함수식을 이끌어 정답을 맞추었답니다.


결국 에미만 오늘도 의문의 1패.


하지만 동생한테 밀린 게 억울했던 큰 아이가 다시 도전장을 내밉니다. 이미 11시를 넘긴 시각.

다시 시작된 치열한 머리 싸움. 흡사 문제적남자라는 프로그램의 패널마냥 진지하기 그지 없는데요.


역시나 또 한참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자려고 지나가던 남편을 붙잡아 끌어 앉혔습니다.


그런데요....

너무 쉽게 규칙을 파악해버린 남편님이 그만 정답을 설명해버리고 맙니다....


아하! 라며 아빠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큰 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는데요.


이유를 물으니 작은 아이가 속상해하면서 대성통곡을 합니다.


"저도 규칙 찾고 싶었는데 아빠가 먼저 규칙을 말해버렸어요...흑흑."


무안해진 아빠. 괜히 남편을 끌여들였다 싶어 민망해진 에미.

작은 아이에게 더 재미있는 다른 퍼즐을 풀어볼 거냐고 물으며 아이를 달래주었는데요.

짠!

결국 작은 아이가 잠 자기 직전까지 풀려고 끙끙대다 못 푼 퍼즐입니다.

많은 어른들에게는 쉬울 수도 있을 듯하지만...

오늘 아이가 돌아오면 다시 한번 도전해보려고 하는데요.


작은 아이의 퍼즐 사랑을 못 말리는 에미의 팔불출 퍼즐 도전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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