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내린 비에 갑작스레 추워진 날씨.
가을은 사라지고 성큼 찾아온 겨울 같은 날씨였는데요.
하늘은 파랗고, 햇볕이 드는 곳은 그나마 따수워서 나들이하기는 참 좋더라구요.
이런 날은 가만히 집에 있을 수는 없겠죠.
아침부터 서둘러 등산 가방을 쌉니다.
따뜻한 커피와 아이들의 물. 그리고 직접 만드는 샌드위치와 간식용 생율 약간.
등산을 하다 종종 마주치게 되는 자녀 동반 가족들 중에는 과자를 싸오는 가족들이 꽤 있는데요.
보통 산행 초보 가족들이 과자를 싸오는 것 같아요.
산에서 물 많이 먹게 되고 부피를 차지하거나 부서질 수 있는 과자류는 사실 추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들이 평소에 잘 먹지 않는 오이나 당근, 생율이나 약간분의 견과류 등 부서지거나 상할 염려도 없고 부피도 덜 차지하는 간식류를 추천하지요.
저희 가족은 오이나 당근, 생율, 고구마 같은 간식류에 샌드위치, 그리고 물이나 커피 등을 챙겨가곤 하는데요.
오이는 미니오이가 나오는 계절엔 미니오이를 가족 수만큼 혹은 조금 더 낙낙히 챙겨가면 훌륭한 수분 보충제가 된답니다. 나름 등산 꿀팁이랄까요. 하핫.
이번에는 각자의 가방에 물 한 병씩 넣고 어른들 가방에는 등산 스틱과 간단히 점심으로 먹을 수 있는 직접 만든 샌드위치 그리고 따뜻한 커피, 생율 약간 손 닦을 작은 손수건, 그리고 교통카드로 가방을 꾸립니다.
워낙 자주 가다보니 아이들도 등산 갈 때면 각자의 가방 정도는 알아서 챙기는 센스도 생겼답니다.
오늘의 목적지는 청계산.
늘 북쪽에 있는 산만 가다가 처음으로 한강 이남의 산을 골랐습니다. 준비를 하다보니 정오를 넘겨서야 출발하게 되었는데요.
제법 바람이 거세다보니 얇은 옷을 여러겹 껴입었는데도 꽤 쌀쌀했답니다.
청계산입구역을 나오면 어느 방향이랄 것 없이 그저 사람들이 가는 방향으로만 가면 청계산을 오를 수 있는 원터골 입구에 도착할 수 있는데요.
지나는 길에 커다란 무쇠가마솥에서 끓고 있는 설렁탕 냄새가 발목을 잡습니다.
곤드레나물밥이며 설렁탕 같은 한식, 국밥류는 저희 아이들의 최애 식단이다보니 아이들 눈이 식당 방향에서 떨어질 줄 모르더라구요.
점심을 먹고 가고 싶지만 그러면 해질 무렵이나 되어야 하산할 지도 모르다보니 아이들을 독촉해 원터골 굴다리를 지나 산행을 시작합니다.
초입부터 양갈래 길이 나오는데요. 왼쪽의 경사길을 택해서 오르기 시작합니다. 초반부터 가파른 경사길에 이게 뭐지? 당황하면서 발이 무겁게 느껴질 즈음, 계단이 나오는데요.
오늘의 원터골~매봉 코스는 청계산이 아니라 (계단)千개산이라는...우스개 소리까지 있을 정도로 계단길이 대부분인 산행 코스입니다.
아이들과 남편은 날 듯이 올라가는데, 계단 지옥에 중력 가득 받는 에미는 초반부터 헉헉댑니다.
(왜 아니겠어요. 계단 피하려 왼쪽 길을 택한 거였는데 계단 길인줄 누가 알았냔 말이죠. 흑)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은 그 갯수가 1400개를 넘어가고 나서야 끝이 나는데요.
나무데크 계단이 1400여개이니 돌로 이루어진 계단까지 포함하면 더할 것 같기도 합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길.
에미는 중간중간 헉헉대느라 뒤쳐지고, 아이들은 숨이 차지도 않는지 거의 날아갈 듯 가볍게 올라가네요. 심지어 남편 조차도 힘들어하지 않는데 저 혼자만 저질 체력인 것 마냥 헉헉대고 있더라구요. 허. 참.
그렇게 한 시간 반 여를 올라가고서야 매바위, 매봉이 나타납니다.
(초보자도 올라갈 수 있는 코스라고 모 블로그에서 소개했던데.... 절대 초보 코스가 아니라고 결사!! 주장합니다. )
꽤나 가파른 계단길이었는데요. 역시나 매바위 높이가 500M가 넘었던 거였더라구요. 자그마치 573M 높이를 자랑하는 매바위까지 오르고 나면 매봉까지는 거의 다 온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올라갈 때는 벗었던 패딩인데 정상 가까이 올라가니 거센 바람에 주섬주섬 챙겨입고도 한기가 뼛속으로 스며드는 것만 같습니다.
매바위 옆은 바로 낭떠러지(?)라 가벼운(?)즤이 집 아이들이 날아가면 어쩌냐는 에미의 걱정 가득한 말에
어린이들이 어이없는 눈초리로 비웃음을 날려줍니다. 흥칫뿡!
사춘기 큰 아드님의 거부로 남편과 작은 아이의 사진만으로 만족해야 했는데요.
아직까지 잘 따라다녀주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나 봅니다.(그래도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데...)
엄청난 찬바람에 정상에서 샌드위치를 겨우겨우 입에 털어넣습니다. 너무 추워서 손이 시리고 몸도 떨려서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털어넣고 하산을 시작합니다.
저희 가족은 계획형은 아니다보니, 내려오는 길도 내키는대로 입니다.
원래는 서울대공원쪽으로 하산하려고 했는데요.
정상에서 물건 파시는 분이 그쪽 길은 막혔다고 하시더라구요.
대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등산객이 많다보니 유료 입장객이 피해를 입어서인 듯 합니다.
하긴 아이들 어렸을 때 대공원에 가면,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전기 버스에 등산객들이 꽤나 많이 탔던 것 같긴 합니다.
예정된 루트가 막히면 빠르게 태세를 전환해서 다른 루트를 잡는 게 습관이 된 저희 가족이라 당황하지 않고 어느 방향으로 갈지 논의합니다.
빠르게 원점 복귀를 결정하고 내려가는 길.
하지만 그대로 원점 복귀.는 또 심심하잖아요.
남편님의 강한 주장에 결국 샛길로 들어가서 모험을 택하고 맙니다. 쯧....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도 저희집 전통...인가 봅니다. 에고고)
그렇게 들어선 샛길은 계단이 적기도 하고 바로 나즈막한 경사로로 이어지는데요.
애시당초 이쪽으로 올라갔으면 덜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내려올 땐 무릎이 좋지 않은 남편이 저 멀리 낙오되어 버립니다. 저와 아이들은 날듯이 내려가고 말이죠. 이런 부창부수도 다 있나요? 내 참.
중간중간 간식을 먹으며 추위에 떨면서 하산하고 보니 밥 생각보다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따끈한 가마솥 곰탕 국물보다 뜨끈한 이불 속이 더욱 더 필요했던 거지요.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추위에 대비도 충분히 못했는데 엄청 추웠거든요. (산에 오르면 더울 거라고 잘못 판단해버린...결과였습니다.)
추위와 무한계단 루프만 떠오르는 청계산 등산 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