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간 걸어서 볼링장으로....
추적추적 비 내리는 연휴입니다.
쉬는 날에는 공부와 담 쌓는 아이들인지라 아침 내내 심심함에 괴로워하더라구요.
책을 폈다가 심심해지면 슬금슬금 공을 꺼내서 실내야구도 하구요.
(클레이로 만든 공, 응원용 플라스틱 방망이에 뽁뽁이를 잔뜩 돌려감아 소리와 날아가는 높이를 최대한 줄인 개조된 방망이면 거실에서도 즐길 수 있는 훌륭한 야구 놀이가 되는데요. 다만, 아랫층이 없어야 가능한 놀이랍니다. 허허.....)
물론 눈치 살살 보며 놀던 아이들이 흥분해서 휘두르는 방망이에서 퍽 퍽 소리가 세게 날 즈음엔 다시 저에게 제지당하곤 조용해지죠.
가을비가 이렇게 연휴 내내 내려버리니 갈 곳도 마땅치 않아집니다. 하지만 남자 아이 둘 키우는 집이다보니 집에서 하루종일 사부작거리며 놀라고 둘 수가 없습니다. 싸우거나 아니면 하루종일 심심하다며 낑낑거리는 꼴이 넘넘 보기 싫어서 말이죠.
게다가 중력 가득 받는 사춘기 큰 아드님이 거실 한가운데 드러누워 계시면, 길 막힌 러시아워 보드게임을 두고 머리 쥐어뜯는 것 같은 스트레스마저 생깁니다.
작은 집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덩치 커져가는 남자아이 둘 키우려니 작지 않은 집마저 작게 느껴지는 거죠.
그러니 어쩌나요. 오늘은 죽어도 집에서 쉴거라며 드러누운 남편님을 일으켜세우는 게 그나마 쉬운 일이니, 비오는 날이지만 일단은 큰 아이의 의견을 수렴하여 볼링장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보기로 합니다.
왜냐구요?
너무 쉽잖아요....
뭐랄까요.
(저희집 평화는 아이들에게 미디어를 허용하면서 얻어지는 평화가 아닌지라, 아이들 에너지를 소진시키려면, 부모도 같이 녹초가 되어야 한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니 체력 약하신 부모들에게는 권하지 않아요.)
어찌됐든 이것이 아들 둘 저희 집의 절대 원칙!
볼링장이 있는 곳 까지는 약 8km.
부슬부슬 내리는 비.
귀찮은 세 명은 비를 맞는 걸 택하지만 꼼꼼하기 그지없는 작은 아드님은 아주 조금의 비라도 절대 맞지 않겠다는 일념하에 우산을 펼쳐듭니다.
도로를 지나지나다보면 결국 자전거로 늘 달리던 한강 자전거길을 마주하게 되는데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씨인데도 한강에는 생각보다 걷는 사람이 종종 눈에 띕니다.
쏟아지는 비가 아닌 부슬부슬 가을비라 제법 상쾌하기도 하구요.
자전거로 편하게 갔던 길을 걸어가는 것도 꽤 운치 있더라구요.
이렇게 걷다보니 어느덧 3시간.
예상보다 30분 정도 더 소요가 되기는 했지만 볼링장에 무사히 도착합니다.
명절 끝 연휴라 그런지 더 버글버글한 볼링장에서 30여 분을 대기한 끝에 아이들과 남편은 볼링을 즐기고 저는 혼자 대기실에서 밀린 낮잠으로 잠시 기운을 차려봅니다.(남편과 번갈아가며 틈틈히 쉬어 주어야 남아 둘을 케어할 수 있으니까요.)
볼링 세 게임을 남편 큰아이 작은 아이 한 게임씩 사이좋게 이기다보니 모두가 기분이 좋았는데요.
생애 최초 새벽 4시에 일어나 피곤했을 작은 아이가 조금 걸리긴 했지만 큰 아이의 수학 문제집을 고르러 가까운 서점으로 향합니다.
(이러니 터울진 형제가 있으면 삶이 조금 더 힘들어지긴 합니다. 아예 약한 아이 우선이거나 아니면 약한 아이가 강행군에 길들여지거나...저희는 당연..히 후자입니다. 헉헉....)
서점에서는 신이 난 작은 아이와 달리 거의 늘 큰아이가 거의 다 죽어가는 표정으로 괴로워하곤 하는데요.(책 좋아하는 것과 서점 좋아하는 건 별개. 입니다.)
오늘은 웬일로 문제집 다 고른 큰 아이가 조용합니다.
뭔 일인가 싶어 찾아헤매다 큰아이를 발견한 곳은 아니나다를까 야구 서적 코너였네요. 저희집 '큰 참새'의 방앗간 같은 곳이죠.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흘러 두 시간도 더 있다가 서점을 나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 힘겹게 버티던 작은 아이는 씻자마자 이불 위로 쓰러지듯 그냥 잠이 들어버립니다.
평소 많이 놀지 못한 날은 걱정에 걱정이 꼬리를 무느라 잠을 잘 못 자는 아이인지라
이불 위에 눕자마자 바로 잠드는 이런 날이야 말로 에미로서 아주 뿌듯해지는 날이긴 합니다.
바로 잠든 두 아이들을 뒤로 하고 남편과 식탁에 앉아 말없이 나눠 마시는 맥주 한 캔.
오늘의 목표는 대 성공 입니다. 야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