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신문 보는 중딩의 수행평가 이야기

by Hello Earth

바야흐로 수행평가 기간입니다. 기말고사와 수행평가가 줄줄이 대기중인 요즈음. 그렇다고 뭐. 수행이든 기말고사든 특별히 계획적으로 준비하는 중딩이는 아니니까요. (왜 에미는 한숨이 나오는 걸까요?)


큰 아이는 집에 오면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저에게 줄줄줄 들려주곤 하는데요.

이번 도덕 수행평가로 ,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 북한에 쌀 등을 지원해주어야 하는지, 아니면 통일비용이 크니 지원할 필요 없는지. 각자의 의견과 이유를 포트폴리오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했다네요.

큰 아이가 말을 잘하는 스타일은 아니다보니 늘 중간중간 "뭐냐.. 뭐냐." 라는 말들이 붙곤 하는데요. 그러다보니 들을 때마다 끊기는 말들이 듣기가 꽤 어렵더라구요. 그러다보니 늘 응. 응. 하고 성의라곤 1도 없는 답변으로 길어지는 큰 아이의 에피소드를 듣는 척만 하는데요.


오늘도 성의없는 응 으로 영혼없이 듣고 있던 에미의 귀가 갑자기 번뜩 합니다.


큰 아이는 무조건 지원해야 한다를 의견으로 냈다는데요.

주제를 딱 듣자마자. 뭐냐. 정주영 회장이 소 몰고 북한 가는 장면이 떠오르더라고. 뭐냐. 정주영 회장이 소 몰고 가서. 뭐냐. 북한이랑 우리나라랑 대화의 물꼬를. 뭐냐. 터서...주절주절. 인도적으로 쌀이나 뭐든 지원하는 거지.
통일이 되면 북한의 이천만 인구랑 북한의 자원을 다 가질 수도 있고. 뭐냐. 북한 때문에 있었던 국방비로 통일 비용이 상쇄될 것 같고. 뭐냐. 절약되는 국방비로 북한의 자원과 인구로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점도 고려하면 손해는 아닐 것 같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중인 지금 이 시기니까 우리나라가 미 중 무역...블라블라. 국방 방면에서도 북한이나 우리나라에 미사일 배치... 중국 수도 원점 타격이 가능하니...블라블라....


사실은요.

부끄럽게도 큰아이가 뭐라뭐라고 하는 말을 저는 절반도 못 알아들었습니다. 워낙 전문 용어도 꽤 들어가고. 경제 지식에 약한 제가 들으면서 입이 딱 벌어져서 순간 당황..했거든요.


그런데요. 줄줄줄 경제지원의 이유를 읊는 큰 아이 말을 들은 옆 친구가 큰 아이에게 딱 한 마디 했다고 하더라구요.

○○야. 그래도 감정 하나 정도는 실어 줘야 되는 거 아냐?

라고 말이죠. 헐.


뭐랄까. 북한 인권 등 도덕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순수하게 남한의 경제적, 군사적 이득만을 고려한 정치적 분석 결과였으니 말이죠.(그래도 도덕 시간인데..)


다른 친구들은 어찌 대답했냐 하니

큰 아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해주더라구요.

뭐. 불쌍해라는 애들도 있고.북한 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어찌고 저찌고 하는 애들도 있던데?

라고 말이죠.


후에 아이 이야기를 들으니 선생님이 아이들 답안지를 훑어보다 큰 아이 답지를 보고는 엄청 웃으셨다고 합니다.

"ㅇㅇ야. 내용은 정말 좋은데, 그래도 도덕 시간인데...그리고 우리 얼마전에 평화에 대해 배우지 않았니?"

"도덕적 측면에서 분석하라는 전제조건이 없었습니다."


아이에게 신문 읽어라. 한 적은 없는데요.

제가 보겠다는 핑계로 슬그머니 구독했던 종이 신문과 EBS 라디오를 들으려고 슬그머니 구입했던 작디 작은 라디오가 휴대폰 없는 큰 아이에게 세상과의 소통창구가 된 지 어언 2년차.


영상 미디어와 핸드폰으로 실시간 소통이 가능한 또래 친구들과 달리 쌍방 소통이 아닌 일방의 아날로그 소식통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수염 없는 할아버지 같은 큰 아이인데요.


시험기간이든 아니든 전혀 신경쓰지 않고 매일 같은 시각이 되면 어김없이 이어폰을 끼고 라디오와 한 몸이 되곤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채 떠지지도 않은 눈인데 반사적으로 현관문을 열고 신문을 가져와서 읽기도 하구요.


그러니 문제의 답을 시간 내 찾아야 하는 시험에는 한없이 약하지만, 수업 시간에 상식 퀴즈나 사건 사고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대답해서 간식을 받아오곤 하는데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

한문선생님 질문에 유일하게

'상강'이요.

라고 대답해서 간식을 받아오기도 하구요.

(전날 라디오 뉴스에서 들었다네요.)


미국 수도인 워싱턴 관련 영상을 보여주고 선생님께서 내신 퀴즈 10문제도 유일하게 다 맞춰서 간식을 받았다고 하네요.

미국 국회의사당을 영어로 United States Capitol

이라고 하는데요.

큰 아이가 영상 속 국회의사당 영문명이 Capital이 아니라 Capitol이라고 씌여져 있는 걸 보면서 요상하다 느꼈는데 그게 마침 퀴즈로 나와서 바로 맞추었다고 하더라구요. 신문기사에서 익숙하게 보던 용어들이라 더 수월하게 풀어내는 듯 합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말고사가 끝났습니다.

학원을 안가고 공부하다보니 친구들과의 공부량을 비교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아이가 시험을 앞둔 주말이면 오히려 더더더 공부를 안하기 때문에 결과에 대해 평가하기는 어려운데요.


한 가지 다행인 건, 친구들에겐 어렵다는 국어와 역사과목이 큰 아이에게는 주 전략 과목이라는 겁니다.

특히 시험 횟수가 많지 않아 범위가 넓은 세계사 과목.

뭔가 표를 만들거나 요약 정리를 해서 달달달 외운 후에야 시험보는 또래 아이들과 달리,

큰아이는 이미 머릿속에 여기저기 포진된 역사 지식을 수업시간동안 머릿속으로 잘 정리해두었다가 꺼내기만 하면 됩니다. (시험 공부를 따로 안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도 문법이 포함된 국어는 학교 수업 외에도 내신용 문제집을 풀어야 하지만요.


역사 과목은 따로 공부하지 않고도 두 번의 시험 모두 만점을 받았습니다. 역사관련 책들이며,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잡학 지식, 그리고 신문기사들을 통해 사회 용어에도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요즘 불수능 때문에 수능시험의 존폐여부에 대해 논란이 되고 있죠. 수능 문제가 고갈된 지 오래라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는데요.

AI도 최상위를 찍는 수능문제의 변별력에 대해 신뢰를 잃은지 오래라 저도 수능 폐지에 동의하는 학부모 1인입니다.


토론식 수업을 늘리고, 글쓰기 평가를 늘려서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교육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인데요.

신문 기사를 읽고 글을 쓴다거나, 책 한 권을 한 학기, 아니 한 학년동안 읽고 여러 가지 방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을 것 갿습니다.


시험 기술을 익혀서 대학 가는 시대는 이미 지났는데.

여전히 우리 교육은 제한된 시간 안에 몇 문제를 풀 수 있는지 시험 기술만을 가르치는데 급급한 듯합니다.


깊이 이해하고, 폭넓게 사고하는 교육.

신문읽기와 책 읽기가 최고의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학부모 1인이었습니다.


관련 뉴스 기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