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랑 무슨 일 있었어?
아빠가 떠나고 한 달 후, 엄마와 생에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여수. 겨울이었지만 춥지 않았다. 2박을 예약했고 일부러 수영장이 있는 호텔을 빌렸다. 엄마가 호텔 수영장은 안가 봤을 것 같았다. 아침 일찍 서울역에서 만나 KTX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평소처럼 엄마는 내 입에 이것저것 넣어주려고 했고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젓고 엄마의 어깨에 기대서 잠을 청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맡기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2박 3일 동안의 식사와 일정이 내 수첩에 꼼꼼히 메모되어있었다.
여수에서의 첫 식사는 간장게장이 유명하다고 하는 백반집이었다. 가격도 메뉴도 점심으로 적당할 것 같아서 고른 곳이었다. 단일 메뉴인 곳은 아니지만 회전율이 높은 맛집답게 앉자마자 내가 주문을 해놓았나 하고 착각할 만큼 메뉴가 빨리 나왔다. 나의 채식 지향 식단은 엄마와의 여행 중에는 최대한 내려놓기로 했다. 서울에서는 먹어보지 못할 만큼의 맛집은 아니었지만 로컬푸드에서 주는 심리적 시너지가 컸다. 음, 역시 게장은 여수야 실없는 농담을 하며 첫끼를 먹는 중이었다.
" 고모가 전화 왔었거든. 근데 너 아빠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더라 "
이제 세상 떠난 지 한 달 된 아빠랑 나랑 무슨 일이 있냐며 건성으로 답했다. 그랬더니 엄마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야기했다.
" 그게, 너랑 나랑 장례식장에서 많이 안 울었잖아. 아버지 산에 모실 때도 그렇고, 그 친척 언니가 너한테 괜찮냐고 물어봤을 때도 네가 별로 안 슬프다는 듯이 얘기했다고 무슨 일 있었냐고 하더라고 "
들고 있던 꽃게를 집어던지고 싶은 이야기였다. 하지만 게장은 죄가 없으니 다시 밥그릇 위에 얌전히 올려놓고 물을 마셨다. 물을 마셔도 체한 듯이 끓어오르는 속은 여전했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 왜 이리 다들 내 눈물에 집착을 하는 건지 어이가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그래서 뭐라고 답했냐고 했다. 엄마가 처음으로 고모에게 할 말을 다 했다고 했다. 애 아빠가 자기 집에나 그렇게 다정한 사람이었지, 우리에게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고 온갖 대소사 경조사 자기 집에나 그렇게 챙겼지, 우리에게는 아니었다고. 우리가 마음껏 울지 못한 이유가 그것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결혼생활 34년 만에 처음으로 시댁에 큰소리를 쳤단다.
나는 잘했다고 할 말 더 하지 그랬냐고 풍선에 바람이 빠지듯 웃어버렸다. 그리고는 진짜 배움이 티가 나는 건 가방끈의 길이가 아니라고 그렇게 사람 마음 넘겨짚는 거 아니라며 농담인 듯 웃어넘겼지만 여행 내내 그 말들이 가슴에 콕 박혀 떠나지가 않았다. 실은 속에서 불이 났고 피가 한두 방울 났던 것도 같다.
그때 이미 나는 친한 친구에게 장례식에서 물었냐는 물음을 당한 후 정신이 없을 때였다. 1차 공격으로 이미 머리가 어질어질했었고 헛구역질이 났다. 그때를 틈타 어퍼컷을 당했다. 결과는 KO 였다. 그들이 이겼고 나는 처음으로 모든 걸 포기하고 백기를 흔들고 싶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백기를 흔들고 내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보여줘야 했었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너무 단단해 보여서, 찔러도 피 한 방울 날 것 같지 않아서 이렇게 내가 부서질 때까지 망치질을 하고 피가 날 때까지 찌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쯤 되면 내가 눈치 없이 살아있는 건가 라는 파괴적인 생각이 뒤따라왔다. 온 세상이 내가 울기를 부서지기를 피가 나기를 바라는데 너무 꿋꿋이 살아 내쉬는 숨이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부모님의 동네에는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아빠가 아직은 걸을 수 있었을 때, 가끔 엄마가 없어도 아빠 혼자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산책을 했다. 아빠는 산책을 하다가 힘이 들면 그곳에 앉아 잠시 쉬었다가 다시 발검음을 옮겼었는데 그 정자에는 주인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집도 모르고 계절마저 잊은 노숙인이 그 주인이었다. 나도 그 주인을 안다. 꽤 오랫동안 보았었고 혼잣말을 자주 했지만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저 그를 볼 때마다 어쩌다가 저기에 있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비가 오거나 날이 추우면 신경이 쓰이기도 했다. 어느 날 그 노숙인이 아빠의 친구가 되었다고 엄마가 웃으며 말하기에 내가 물었다. 대화를 해보았냐고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냐고
누가 먼저 말을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적적한 아빠가 말을 걸었을 테다. 그는 생각보다 젊었었고, 사업을 아주 크게 했었다가 망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어디 있는지 모르겠고 사람들에게 크게 상처를 받아서 이번엔 스스로 세상을 배척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듯했다. 대략의 이야기를 들은 나는 한숨을 쉬며 엄마에게 대꾸했다
" 아휴, 하여간 엄마 미친놈 중에 나쁜 놈 없다고, 꼭 착한 놈이 미치고 나쁜 놈은 잘살아 "
엄마와의 여행에서 돌아온 후 며칠 밤을 괴로워했다. 여전히 숨 쉬는 것이 눈치가 보였고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가 피가 났다가를 반복했다. 세상이 나에게 너무 나빠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만 같았다. 아파오는 머리를 붙들고 침대에 누웠다.
“ 미친놈 중에 나쁜 놈 없다. 그거 나였네 “
여전히 울음 대신 웃음이 새어 나왔다. 침대가 들썩였다. 침대가 나 대신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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