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암 이래, 빨리 와
몇 해 전 이제 막 겨울이 끝나고 길가에 개나리가 곧 싹을 띄우기 위해 옅은 초록색의 새순을 준비할 때였다. 자취방 소파에 앉아 웬일로 걸려온 오빠의 전화를 받고 내가 들은 말이다. 평소 여느 남매와 다름없이 필요한 일 외에는 굳이 전화를 할 일이 없는데 이상했다. 너무 환한 대낮인 것도 이상했다. 그렇게 받은 전화로 들은 오빠의 짧은 호흡과 축축한 목소리도 이상했고 가장 이상했던 건 아빠, 뇌, 암이라는 단어였다. 나열된 단어들을 듣고 머리로 이해를 하기도 전에 무릎 위로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나는 내가 그렇게 울 수 있는 사람인지 몰랐다. 우스갯소리로 하는 “눈물이 4갈래로 흘렀어”하는 말이 사실에 기반한 표현인 것도 그때 알았다.
정신없이 옷을 입고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오빠가 한 말들을 곱씹었다. 며칠 전부터 아빠가 조금 이상해서, 단어를 기억하지 못하고 잘 걷지 못하고 종국에는 한글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에 동네의 작은 신경과에 아버지를 모시고 갔고 뇌종양이 의심되니 바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단다. 그 길로 바로 대학병원의 응급실로 왔으니 여기로 오면 된다고. 꽤나 유명한 큰 병원이고 집에서 아주 멀지 않아 자주 보는 병원이었다. 그 병원은 항상 지명으로만 내 머릿속에서 존재하는 병원이었다. “ 나 지금 oo병원 지나고 있어, 금방 갈게 ” 할 때나 거기에 있었는지 인지하게 되는 그런 병원. 그날부터는 나에게 너무 크고 무섭고 기분 나쁜 병원이 되었다. 멀리서부터 보이는 그 커다란 병원이 마치 괴물처럼 보였다. 그 무섭고 커다란 괴물에게 잡아먹혀버린 아빠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 딸 왔어? 왜 이렇게 춥게 입고 왔어. 감기 걸려 “
괴물의 뱃속에서 아빠가 나에게 처음 한말이었다. 세상에, 당신이 암이라는데 지금 남의 감기를 걱정할 때인가 기가 찼다. 나는 평소 살가운 딸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응급실 침대에 기운 없이 누워있는 아빠가 너무 낯설어서 또 입을 열면 울기 시작할까 봐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아빠의 손을 잡았다. 어떻게 된 거냐고 언제부터 이상했냐고 지금도 고통이 느껴지냐고 너무 많은 물음을 삼켜내고 세 번 정도의 망설임 후에야 겨우 한마디를 했다. 괜찮아? 하는 물음에 괜찮다.라는 대답을 듣고 결국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어릴 적부터 누구의 앞이든 편하게 울지 못했다.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우는 모습을 감췄다. 아빠의 발끝만 보며 울고 있는 내 뒤통수에 대고 아빠는 바람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울지 마, 그러지 마 아빠 괜찮아
평소 감정을 잘 내비치지 않는 딸의 눈물에 약간은 당황한 기색이 담긴 목소리였다. 바람이 묻은 당황의 목소리. 무뚝뚝한 성격을 똑 닮은 아빠와 나는 겉도는 이야기들로 어설프게 서로를 위로했다. 병실의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다 엄마와 교대를 하고 병원 로비에 앉아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 아빠가, 암 이래, 근데, 내 감기를, 걱정해 “
한낮에 들었던 오빠의 짧은 호흡처럼 나도 짧은 호흡으로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아침에 나의 아버지가 큰 병에 걸렸고 근데 내 감기를 걱정했다고 나는 이 모든 상황이 정말로 기가 차고 화가 나고 어이가 없다고
“ 부모는 다 이런 거야? 지금 내 감기가 문제야? 부성애 모성애 이런 거 다 정신병 아니야? 아니, 진짜, 정말,, 왜 ,,”
태양의 시간은 지난 지 오래였다. 창밖에는 시커먼 암흑만 보였다. 정말 괴물의 뱃속 같았다. 손에 쥐어진 식어버린 테이크아웃 커피잔의 입구는 너덜너덜했다. 나는 커다란 괴물의 뱃속에 웅크리고 앉아 아빠의 병이, 나를 향한 아빠의 걱정이 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중얼거렸다. 잠시 푸념을 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괜찮냐는 물음에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더 자세한 검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그래도 요즘 암은 못 고치는 것도 아니고 괜찮을 거라고 아빠를 닮은 나는 역시나 울지 않고 말했다.
“ 아니야. 너 안 괜찮아. 너 지금 너무 충격받아서 그래. 원래 사람이 너무 크게 충격을 받으면..”
혼자 있는 시간을 이기지 못하고 친구에게 전화를 한 내가 한심하고 원망스러워졌다. 끔찍한 괴물의 뱃속은 너무 어둡고 또 어두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