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수술 전날 가족 모두 병원에 모였다. 각자 처리해야 하는 일들을 하며 그때부터 ‘암환자의 보호자’라는 살면서 처음 맡는 역할을 모두 어설프게 수행하고 있었고 나에겐 특별하고 작은 임무가 주어졌다.
너 빨리 와서 아빠 머리 감겨줘
너네 아빠가 나한테는 안 한대
병원을 가기 전 엄마와의 통화였다. 뇌수술을 해야 하기에 머리를 소독제로 감고 부분 이발을 해야 했다. 누가 감기는 게 무슨 상관이냐며 괜한 사족을 달았지만 발걸음이 빨라졌다. 그가 나에게 부리는 최초의 어리광임을 알았다. 병실에 들어서니 소독제와 설명서가 침대의 간이 테이블 위에 있었다. 천천히 여러 번 읽어본 후 수건을 챙겨 아빠와 함께 샤워실로 갔다.
나는 미용학을 전공했다. 대학 때 메이크업, 네일아트, 피부관리, 헤어 등 기본적인 뷰티 관련 전공들을 모두 배웠고 집에 와서는 주로 엄마에게 가끔 아빠에게 학교에서 배운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래서 아빠와 나는 대화 없는 어색한 사이지만 스킨십은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상한 사이었다. 그래도 아빠의 머리를 감겨주는 건 처음인지라 모든 게 생경했다. 수백 번은 만졌던 아빠의 뒤통수와 머리카락이 그렇게도 낯설어 신생아의 머리를 감기듯 조심스러워졌다. 샴푸와 소독제로 아빠의 머리를 감겼다. 소독제에서는 슬픈 냄새가 났다.
“ 뇌수술은 정말 신밖에 모르는 거예요. 경과가 좋아도 한 달도 안돼서 가실 수도 있고 경과가 안 좋아도 10년 넘게 사시는 분도 있어요. 저희가 전국에서 뇌수술을 가장 많이 하는 병원이고 최선을 다할 거지만.. “
레지던트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 시간 동안 우리에게 아빠의 구체적인 현재 상태와 수술 계획, 치료방법 향후 합병증까지 설명했다. 그가 신은 남색 크록스에 두어 개의 지비츠가 끼워져 있었고 가운 주머니에는 펜이 한가득이었다. 생사(生死)를 업으로 삼는 사람은 공허한 눈으로 준비된 대사를 하듯 줄줄이 설명했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어조로 다음날 수술할 집도의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나는 아빠의 머릿속 사진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그의 머릿속이 가끔 궁금했는데 정말로 그의 머릿속을 보고 있는 상황이 어이가 없어 속으로 실소했다. 새까만 MRI사진 속에는 아빠의 생각은 없었고 악성종양들만 하얗게 자리 잡고 있었다.
“ 환자분 동의서 작성하실게요 “
친절한 간호사가 와서 수술동의서 한 장과 펜을 아빠에게 내밀었다. 이름, 주민등록번호, 주소 아빠가 60년 살면서 수천번은 썼을 항목들이었다. 그는 천천히 펜을 들어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는 못했다. 아빠가 한글을 기억하기 어려워한다고 오빠가 말했었다. 눈앞에서 보니 딱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빠가 이름 세자를 쓰는 긴 시간 동안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다. 나는 숨이 막혀왔다. 아직은 아빠가 아픈 게 익숙하지 않은 때였다.
자존심이 센 아빠의 마음이 어떨지 저절로 가늠이 되었다. 그는 지금 화가 날까, 창피할까, 무력할까, 혼란스러울까, 그저 글자를 기억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까,, 간호사는 익숙한 듯 말없이 기다리고 나는 천장만 바라보며 고인 눈물이 쏟아지지 않도록 눈을 더 크게 뜨고 주먹을 꽉쥐어 손바닥에 손톱자국을 선명하게 냈다.
미처 마무리하지 못하고 아빠가 멋쩍게 웃으며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고 하자 간호사는 괜찮다고 하며 나에게 펜을 넘겼다.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았다.
수술은 경과가 아주 좋았다. 종양의 크기가 크고 이미 많이 퍼져있는 상태라 전부 다 제거할 수는 없었고 80% 정도 제거 후 방사선 치료를 병행할 것이라고 했다. 당연하게도 사람의 뇌는 많은 일을 한다. 먹고 말하고 쓰고 걷고 생각하고 기억하고 숨을 쉰다. 아빠의 머릿속에 있는 종양 덩어리는 그중에 아빠의 언어 신경을 특히 많이 잡아먹었다. 합병증으로 말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말은 하지만 생각을 못할 수도 있다고 했다. 아주 감사하게도 아빠는 말도 생각도 종양에게 빼앗기지 않았다. 조금 불편해진 오른손과 오른발 따위는 문제가 아니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아빠가 대견해서 울었다.
첫화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