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7일 새벽 1시 11분
날짜를 잘 못 외우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숫자가 생겼어. 이게 다 무슨 의미 인가 싶기도 한데 아마 못 잊을 것 같아. 이번에도 아니라고 믿고 싶은 전화에 이번엔 진짜라고 본능적으로 알았어. 심장이 뛰고 손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럽더라고. 이번엔 진짜였어. 솔직히 백번은 상상했던 꿈같은 풍경이었는데도 할 말을 잃었어. 어떻게 해도 역시 상상은 현실을 이길 수가 없나 봐. 당신을 품에 안고 이미 식은 차가운 귓가에 당신 너무 고생 많았다고 당신 너무 안쓰럽다고 수고했다고 고맙다고 참 많은 이별의 말을 하는, 이제 곧 남편을 잃을 엄마의 옆에서 나는 그저 당신이 처음 병원에 누웠던 날처럼 당신의 발을 바라보고 평생 고되었을 당신의 다리를 쓰다듬었어.
나는 발가락도 당신을 닮았더라
오빠가 오기 전까지 조금만 더 버텨주기를 바래서 당신의 멈춰가는 심장이 또 무서워서, 심장을 두드리고 그러면서도 당신이 아프진 않을까 걱정하고,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고 당신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을 하면서 그때 처음으로 당신이 아픈 게 미웠어. 인사라도 하고 헤어지고 싶은데 시답잖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나도 당신의 입으로 사랑한다는 말을 듣고 잘 살아왔고 잘 살라고 널 믿는다고 당신의 입으로 나의 안녕을 듣고 싶었어
그 말을 못 해서 그런가 그 말들을 못 들어서 그런가 자꾸 다 그만하고 싶어져
너무 정신없고 바쁜 장례식이 끝나고 그 먼 곳에 당신의 뼛가루를 묻고 집으로 와서 또다시 바쁘고 정신없이 하루들이 다 지나가더라고. 이상해 고통스러운 시간들인데 잡을 새도 없이 빠르게 그냥 다 흘러가더라고. 하루는 사망신고를 하고, 하루는 당신의 옷들을 정리하고, 하루는 새로운 물건을 사고, 남겨진 우리끼리 서로를 위로하면서, 그렇게 그냥 하루하루들이 손 틈새로 흘러가서 이별한 지 한 달이 됐어. 하여간 시간은 나를 도와준 적이 없어. 당신이 없던 날로부터 멀어지기 싫은데 말이야.
휘몰아쳤던 일들을 처리하고 숨을 돌리고 나니까 이제야 너무 힘들어. 2년 동안 숨도 안 쉬고 참았던 거 이제 다 힘들어. 자꾸 슬퍼지고 자꾸 다 그만하고 싶은데, 내가 연기를 너무 잘했나 봐. 이제는 울지 않았다고 혼이 나네. 내가 너무 단단해 보여서 다들 두드려 보는 걸까, 찔러도 피가 안 날 것 같아서 찔러보는 걸까, 나는 그저 참을성이 좋은 건데 당신을 보내는 자리에서 실수 없이 잘하는 게 당신의 마지막 체면이라고 생각해서 화나는 일도 참고 내가 할 일들 잘한 건데. 당신은 알 텐데 아는데. 그래서 그런가, 당신이 없어서 아무도 모르는 건가
누가 누구에게 냉정을 논하는 건지 다들 스스로의 경솔에는 왜 관심이 없는지, 처음엔 화가 나다가 슬프다가 이젠 아무래도 다 상관없어졌어
자꾸 꿈을 꿔. 꿈에서 깨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
무서워 너무 무서워
괜찮을까, 이렇게 계속 살 수 있을까
세상이 너무 잔인해 사람들이 너무 냉정해
나 이제 자신이 없어 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