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무릎베개는 비밀이야

by Plum




아빠가 꿈에 나왔어



아빠의 장례식이 끝나고 일주일이 안되었을 때 오빠가 말했다. 아빠가 꿈에 나왔단다. 엄마와 나는 웃으며 아빠가 뭐라고 하더냐고 물었다. 오빠는 어딘가 격양되면서도 스스로도 우스운 얼굴로 말했다.



“ 내가 꿈에서 웬 궁궐 같은 곳에 막 들어가려고 엄청 애썼거든, 진짜로 엄청 크고 무슨 궁같이 생긴 곳이었는데 경비가 꽤나 삼엄하더라고 근데 뭐 어찌어찌 잘 숨어서 들어갔지. 근데 문이 여러 개가 있는 거야. 왜 사극에서 보면 문 여러 개 열고 들어가야 하는 방 있잖아. 그래서 또 열고 들어갔지. 거기에 아빠가 앉아있는 거야 방 한가운데에 양반다리를 하고 있더라고”



여기까지 들은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아빠가 뭐라고 하더냐고 얼굴은 좋아 보이더냐고 물었더니 오빠는 얼굴은 좋아 보였고 뭐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그게 기억이 잘나지 않는다며 거실을 서성거렸다. 어쨌든 일주일 만에 만난 아빠가 반가워서 대화를 좀 나누려고 했는데 큰 아버지가 나오셔서는 오빠를 혼냈다고 한다. 오빠에게 여기 있으면 안된다고 어서 가라고 하셨고 그때 잠에서 깼다고 했다.



“ 아니, 오빠는 거기서도 큰아빠한테 혼나?”



큰아버지의 등장이 너무 재밌었던 나는 그런 꿈에서도 혼나고 마는 무력한 장남을 놀렸다. 심지어 불같은 성격의 큰아버지는 정정하게 잘살아계신다. 엄마는 말없이 웃기만 했고 나는 아빠가 한 말을 기억해내라며 나무랐다. 아빠의 말은 끝내 기억해내지 못했고 대신 눈을 뜨자마자 인터넷에 이런저런 검색을 해봤더니 망자가 좋은 곳에 갔다 라는 답변을 찾아냈다며 아빠가 착한 사람이었어서 좋은 곳에 잘 간 것 같다고 정리했다. 사후세계나 천국 같은 게 진짜 존재하는지는 몰라도 꿈이야 꾼 사람이 해석하기 나름이니까 나도 그 말에 고개를 끄덕여 수긍해주었다.




아빠가 떠난 지 반년이 안되었을 때, 이번에는 아빠가 내 꿈에 나타났다. 나는 오빠만큼 디테일한 이야기나 묘사는 없었고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그저 어렴풋이 꿈의 형상만 남았다. 아빠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는 장면만 선명히 기억났다. 심지어 아빠의 얼굴조차도 잘 보지 못했고 아빠의 무릎베개만을 기억했다. 아빠는 말이 없었고 나는 아빠의 양반다리 한쪽에 누워 반대쪽 다리만 메만졌다. 당신이 떠나는 날 보았던 그 다리였다. 꿈속의 나는 꽤 말이 많았던 것 같다. 무언가 보채기도 하고 웃음을 숨기지도 않았다. 아빠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아빠의 바짓단을 꼭 쥐고 놓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실은 나도 서러웠다고 했는지 나에게 나쁜 사람들을 일렀는지 우리가 어리고 젊었던 때에 이야기를 했는지 그건 그날 밤 그곳에서 우리만의 비밀이었나 보다. 아침에 눈을 뜬 이곳의 나는 이야기를 망각에게 빼앗겼고 감정들만 손에 쥐었다.



우리는 온통 하얀 하늘과 하얀 땅에서 하얀 이야기들을 했다. 아빠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고 주변엔 하얀 구름만 가득했다. 처음으로 누워본 아빠의 무릎에서 나는 평생 부리지 못한 어리광을 그날 밤 꿈속에서 다 부렸던 것 같다. 눈을 떴을 땐 서운하고 반갑고 서럽고 기뻤다. 나중에 혹시 다시 만나면 우리 어떤 이야기 들을 나눴었냐고 묻기 위해 기억이 없는 감정들을 잘 접어 마음 한구석에 넣어놓았다. 아빠에게 하나씩 펼쳐 보이며 이번에는 지워지지 않는 기억을 적어달라고 떼를 써보려고 잘 보관해두었다.



나는 왠지 쑥스러워 엄마에겐 그냥 아빠가 꿈에 나왔던 것만 이야기했다. 엄마의 꿈에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고 엄마는 서운해했다. 가만히 듣던 나는 엄마는 원래 꿈 잘 안 꾸지 않냐고 되묻자 엄마는 그건 그렇다며 웃었다.



“엄마 잘 자라고 아빠가 안 나오는 거야. 깊이 자면 꿈을 안 꿔요. 엄마가 숙면이랑 아빠 꿈이랑 바꿨네”



내가 실없는 농담을 하며 웃었고 엄마도 웃었다. 우리는 곧 다른 이야기를 하며 저녁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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