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름, 목련꽃이 03

by Plum



이틀 정도를 더 할아버지의 간병을 하고 할아버지는 금세 쾌차해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다. 할아버지는 목련나무집 청년이 준 약이 잘 들어서 그런 것 같다며 또 그를 칭찬했다. 나도 잘 자고 있으니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 할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점심을 드시고는 김 씨 할아버지 댁에 갔다가 장을 봐오신다고 했고 나는 도넛을 사다 달라고 했다. 도너츠집에 시집을 보내야겠다고 하시며 할아버지는 대문을 나섰고 나는 아직 보지 못한 만화책을 보다가 남아있는 날들을 위해 한 권 만을 읽은 후 슬그머니 일어나 할아버지가 수돗가에 담가놓은 자두 하나를 꺼내 베어 물며 집 밖으로 나섰다. 발길이 자연스럽게 다리 쪽으로 향하는데 하얀 얼굴의 남자가 한 말이 생각나 괜히 신경이 쓰여 길 한가운데에 멈춰서 고민을 했다. 다른 곳은 놀러 갈 곳이 없고, 다시 꿈을 꿀까 걱정이 되었다. 이내 잠시만 보고 가겠다고 다짐하며 다시 다리로 향했다.



" 너 학교에서 공부 못하지 "



이번엔 다리 위가 아니라 어릴 때처럼 물가로 내려가 바위 위에 앉아 작은 청개구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구경하던 나에게 하얀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었다.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자 겨우 잡은 개구리가 팔짝하고는 뛰어올라 물속으로 도망갔다.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그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긴팔 차림에 하얀 얼굴로 어느샌가 내 뒤에 와있었다. 나는 퉁명스럽게 항상 반에서 5등 안에 든다고 대꾸하고는 수영하는 개구리를 쳐다보았다. 그는 내 옆으로 와서 말했다. 근데 왜 이리 말을 안 들어?


" 오늘은 물 오래 안 쳐다보고 개구리만 봤어요. 그래도 안돼요? "


".. 그냥 가능하면 여기서 놀지마."


" 저 열 살 때부터 여기서 여름마다 놀았어요. 왜 갑자기 놀지 말라는 거예요. 심심한데 시골에서 뭐하고 놀라고. "


" 작년까진 괜찮았어. 올해는 안돼. "


" 아니, 그러니까 왜요? "



그는 입을 다물고는 수영하는 개구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저 멀리까지 갔던 개구리가 마치 그를 알아본 듯 헤엄을 쳐서는 그의 손으로 올라왔다. 나는 그 풍경이 우연인지에 대해 고민했고 그는 손바닥의 개구리를 바라보더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얘가 오지 말래. 황당한 그의 말보다 그의 미소가 더 놀라웠다. 나는 바보같이 말을 약간 더듬으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했고 그는 개구리를 보내주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가서 잠자리나 잡고 놀라고 했다. 빈손으로 잠자리를 어떻게 잡냐며 쏘아붙이자 그는 나를 물끄러미 보더니 잠자리채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나는 잠자리채를 어떻게 만드냐고 물으면서도 그를 따라나섰다.



그를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목련나무가 보였다. 할아버지 집을 지나 십 분 정도 더 걸어간 위치였다. 내 머리맡에 두었던 목련나무를 기억해내 그 커다란 나무가 목련인지 알았지 아니면 몰랐을 것이다. 초록색의 여름의 목련은 도시 출신인 내게 너무나 생소했다. 하얀색의 커다란 꽃잎을 가진 그 꽃나무가 이렇게 푸르르고 커다란 몸짓을 가지고 있는지 몰랐다.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산책을 할 때면 가끔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나무라고만 듣고 기억했다. 그는 목련나무의 옆 집으로 들어갔다.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크기의 나무가 그의 집 마당까지 가지를 뻗고 있었다. 따라 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고민을 하는데 그가 두꺼운 철사 하나를 가지고 다시 대문을 나왔다. 나는 의문스럽게 쳐다보았고 그는 목련나무에 기대어서는 철사의 끝부분을 동그랗게 구부려 고정했다. 마치 망이 없는 잠자리채 같았다.



"이게 뭐예요. 이걸로 잠자리를 어떻게 잡아요."



그는 대꾸 없이 목련 나무를 지나 조금 더 산의 위쪽을 향해 걸어가며 두리번 걸렸다. 낮은 나무들 사이로 그가 철사를 집어넣고는 휘적휘적 저어댔다. 나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철사의 동그란 부분에는 거미줄이 감겨있었다. 그 모습이 꼭 엉성하게 짜인 테니스채 같았다. 나는 눈썹만 찌푸리며 그를 계속 쳐다보았고 그는 다시 목련나무 옆으로 걸어내려 갔다. 그의 뒤통수만 바라보며 내려가는데 그가 멈춰 섰다. 마침 작은 나무에 앉아 쉬고 있는 잠자리 한 마리가 있었다. 그는 조심히 다가가 그 이상한 모양의 철사의 거미줄로 잠자리를 아주 살짝 톡 하고 쳤다. 잠자리가 거미줄에 붙었다. 그는 잠자리를 아주 조심히 거미줄에서 떼어내서는 날개를 잡아 나에게 내밀었다.



나는 바보같이 손을 내밀었고 그는 나의 손가락 위에 잠자리를 올려주었다. 그가 잠자리의 날개에서 손을 떼자 잠자리가 잠시 나의 손가락 위에 머물러 있다가 날갯짓을 몇 번 연습하더니 다시 하늘을 향해 날았다. 잠자리가 없어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를 쳐다보았다. 그도 잠자리를 바라보다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어설픈 잠자리채를 나에게 내밀었다.


"저는 손길이 섬세하지 않아서 그렇게 살살 못 잡을 것 같아요. 거미줄에 붙어버렸는데 못 떼어주면 어떡해요. "


"그러니까 살살해야지"


그는 당연 한말을 당연한 얼굴로 말했고 나의 손에 잠자리채를 쥐어주고는 집으로 들어가려는 듯 뒤돌아 섰다. 나는 잠자리채만 바라보다가 그를 불러 세웠다. 며칠 전 상처가 난 팔꿈치를 기억해내어 말했다. 상처에 바르는 약도 있냐고. 그는 대문 앞에서 잠시 나를 바라보고는 따라 들어오라는 듯 대문을 닫지 않고 집안으로 사라졌다. 괜스레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간 그의 집은 할아버지의 집과 비슷하지만 달랐다. 기와의 색이 달랐고 집이 조금 더 컸다. 평상도 없었다. 마당에는 온갖 꽃과 키가 작은 나무 들만이 자리했고 툇마루까지 가는 길은 돌로 길이 나 있었다.



그를 따라 들어가 툇마루에 조용히 앉아있으니 그가 방에서 작은 향료병 같은 것을 들고 나왔다. 내 옆에 앉더니 그것을 작은 마른 헝겊에 살짝 부어서는 내 팔꿈치의 상처에 대고 톡톡하고 두드렸다. 마치 소독약으로 소독을 하는 모양새였다. 이게 뭐냐고 묻자 그는 내 팔꿈치만 쳐다보며 도깨비바늘 하고는 대답했다. 그게 뭐냐고 풀이냐고 묻는 내 물음에 그저 응 이라고 답하고는 손을 내려놓았다. 더 이상은 그에게 물을 것이 없어져 손에는 어설픈 잠자리채만 들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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