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여름방학은 끝났고, 나는 서울로 올라왔다. 그날도 나는 하루 종일 울기만 했고 부모님은 난감해하셨다. 할아버지는 그저 말없이 안아주시며 나에게 그가 주고 간 목련 나뭇가지를 안겨주셨다. 할아버지가 어디까지 어떻게 알고 계신지는 그때도 지금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는 순간까지도 그 일에 대해 아무 말씀 없으셨고, 나는 할아버지도 그의 존재가 무엇인지 아셨다는 것만을 짐작했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겨울이 왔다. 나는 눈이 내리는 한 겨울이 되어서야 시간의 흐름을 깨달았고 흰 눈을 보며 그의 하얀 와이셔츠를 떠올렸다. 그래서 또 조금 울었다.
그다음 해의 설에 할아버지 댁에 갔다. 나는 연휴 내내 방에만 있었다. 그의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어린 나는 슬픔을 다스릴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새로운 생명이 싹을 틔우는 봄이 되어버렸다 학교에 있는데 담임선생님이 나를 찾으셨다. 부모님께서 연락이 왔다고 할아버지가 몸이 좀 안 좋으신 것 같다고. 나는 가방을 대충 챙기고 급하게 집으로 갔다. 부모님은 이미 내려갈 준비를 다하신 채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 할아버지 왜! 어디가 아픈데! "
소리를 치는 나를 보며 엄마가 더 놀라 안아주며 말했다. 괜찮아 할아버지 큰일 아니야. 할아버지가 농사일을 하시다가 현기증이 왔고 밭에 잠시 쓰러지셨으나 김 씨 할아버지가 바로 발견해 큰일은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 댁에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김 씨 할아버지가 계셨고 이 씨 할머니도 계셨다. 이미 눈물을 한 바가지 쏟은 후였지만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김 씨 할아버지의 빠른 대처와 넘어질 때 머리에 큰 충격이 없었어서 다행히도 병원에 갔다가 집으로 바로 올 수 있었다고 했다. 부모님은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하셨다. 이제 서울로 올라오셔서 같이 지내자고. 할아버지가 원치 않으셔서 잠자코 있었지만 이젠 안 되겠다고 아빠는 꽤나 단호하게 말씀하셨고 어머니도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 그러면 올해만 지나고 올라오시겠다고 했다. 이것저것 정리하면 바로 갈 수 없다고 이야기하셨고 아빠는 한숨을 쉬었지만 이내 할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아빠는 며칠 더 머물고 올라오신다고 하셨고 엄마와 나는 그날 저녁에 바로 다시 서울로 향했다. 할아버지 집 대문을 나와 그의 집 쪽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숨을 멈췄다. 봄의 나무인 만큼 삼월의 그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멀리서도 마치 눈송이가 만발한 듯 커다란 가지들 곳곳에 하얀 꽃이 피어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도 아름다운 봄의 그를 그제야 본 것이 아쉽고 미안했다. 엄마의 재촉에 발걸음을 돌렸지만 눈을 떼지는 못했다. 오래도록 눈에 담고 싶었다. 오래도록, 절대 잊지 못하게
할아버지의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여름이 되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동안 다행히 할아버지는 건강하셨고 서울로 올라오실 준비를 천천히 하셨다.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부모님에게 빨리 할아버지 댁에 데려다 달라고 졸랐다. 부모님은 그 집과 많이 정들었을 나에게 괜히 미안해하셨다. 그해의 여름에는 만화책도 빌리지 않았다. 그저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랬다. 마을 입구가 보이자 마음이 더 급해졌다.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자마 툇마루로 뛰어들며 할아버지를 불렀고 할아버지는 별채에서 나오시며 환하게 웃어주셨다. 다시 매미 소리가 귀를 어지럽히는 여름이 왔다. 열여덟의 여름이었다.
부모님은 이른 저녁까지 같이 먹고 서울로 가셨고 할아버지와 나는 평상에 앉아 밤참으로 수박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와 친구들 이야기들을 하며 한참을 떠들다 평상에 누워 하늘을 보았다. 별들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까진 정말 쏟아질 듯이 많았는데 그때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할아버지 댁에서 보는 밤하늘은 항상 설레었다. 가만히 바라보면 내가 우주에 있는 것 같았다. 별을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할아버지는 할 일이 있다며 일어나라고 하셨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커다란 그릇을 가지고 오셔서 수돗가에서 물을 받으시더니 발걸음을 옮기셨다. 할아버지의 의중을 금방 깨닫고 따라갔다. 담장 밑에 장독대 위에 그릇을 올리시고는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일 년 동안 할아버지는 칠성신들에게 기도를 드렸던 모양이다. 할아버지와 나는 조용히 오랫동안 기도를 드렸다.
매일 그의 집에 찾아갔다. 갈 때마다 마음이 아팠지만 고작 열여덟이라도 한 살의 나이를 더 먹었다고 용기를 내기로 했던 것이다. 그의 집은 대문이 잠겨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목련나무 아래에서 가만히 몇 시간을 앉아있다가 집에 돌아오는 일이 일상이었다. 하루는 자두를 가지고 가기도 하고 하루는 참외를 가지고 가기도 했다. 나무기둥에 기대어 가만히 바람을 느끼다가 낮잠이 들기도 했다. 매일 무언가를 들고 외출을 하는 나를 보아도 할아버지는 아무 말씀 안 하셨다. 그저 저녁시간이 되어 내가 돌아오면 맛있는 저녁을 차려주실 뿐이었다.
그렇게 매일을 찾아가 하고 싶은 말들을 속으로 한참 했다. 바람소리와 매미 울음 만으로도 대답은 충분했다. 그해에는 햇볕이 좋았고 비가 적당히 내렸다. 농작물들은 신의 가호를 받아 무럭무럭 자라났고 마을 사람들은 이제 물이 많이 말라버린 다리 밑 그늘에 모여 새참과 담소를 나눴다. 그가 지키는 마을은 평화롭고도 평안했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서울로 올라가기 전 푸른 목련나무를 가득 안고 말했다.
" 자주는 못 올 거예요. 그래도 올게요. 나 성인 되고 운전면허 따면 나 혼자서도 올 수 있어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보고 싶을 거예요. "
시원한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