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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l 29. 2021

참아, 네가 예뻐서 그래



예쁘다는 칭찬의 이면



 

 외모지상주의라고 말하기도 입이 아픈 시대다. 한때 유행했던 그 단어를 이제 외모도 스펙이라고도 표현을 한다. 모두가 외모를 우선순위에 두지는 않지만 모두가 외모에 영향은 받는다. 현시대에서 성별과 나이를 막론하고 외모는 커다란 특권이자 특기임을 부정할 수가 없다. 사람은 시각적인 것에 약하고 본능적으로 아름다운 것에 끌린다. 일곱 살의 아이들도 칠순의 노인들도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


 

 농담 섞인 이야기지만 냉철한 손석희 아나운서도 강동원 씨의 실물을 보고는 "내면의 아름다움이 다 무슨 소용인가"라고 했다니 아름다움이란 확실히 이성보단 본성이 더 앞서는 영역인 것 같다. 나 또한 예쁘고 아름다운 것들을 매우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유독 나를 꾸미는 것을 좋아했고 물건도 실용성보다는 사실 심미성을 따지는 편이다. 예쁘다는 말도 좋아한다. 하지만 그 말로 당하는 폭력을 혐오한다. 나는 남이 어떻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지나가는 사람이 뚱뚱하던 키가 크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남들 신경을 더욱이 쓰지 않게 된 건 사실 내가 그런 시선들에 굉장히 민감하고 또 싫어하기 때문이다. 다른 글에서 짧게 이야기를 했었는데 나는 어릴 때부터 유독 키가 크고 꾸미는 것을 좋아해서 원치 않는 시선들을 많이 받았었다. 나를 주목하는 시선들은 보통 내가 느끼기엔 폭력적이었고 수치스러웠다. 남녀도 노소도 가리지 않았다. 키가 큰만큼 2차 성징도 빨리 나타났던 나는 10살 때 혼자 동네 목욕탕을 갔다가 탕 안에 있는 아주머니들의 주목을 한 번에 받았다. 몇 살이냐고 벌써 브래지어를 하냐고 다 같이 내 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를 향해 손을 뻗기도 했다. 또 그때쯤 처음으로 노출증 환자를 만나게 되었고 그는 나에게 "한 번만 만져주면 안 돼?"라는 내 인생의 최악의 워딩을 선사했다. 그 정신병자를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잊을만하면 한 번씩은 꼭 상상치도 못한 방법으로 만났던 것 같다.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사실 내가 살면서 받아온 성희롱이나 기분 나쁜 시선들은 여자라면 누구나 겪어 봤을 일이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느껴본 낯선 사람의 더러운 손놀림까지도 말이다. 여자들에게 이런 일들이 익숙해지는 것도 복장 터지는 일이지만 대게 이런 일화들을 들은 주변인들의 말 때문에 2차적인 가해를 또 당한다.


네가 옷을 그렇게 입으니까 그렇지


걔가 너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 와 전혀 다를 것 없는 근본 없는 말이다. 더 심한 말로는 보라고 저렇게 입고 다니는 거 아니야? 도 있다. 그냥 네가 눈에 띄니까 라고도 하지만 그런 말을 듣기에 나의 교복은 너무 단정했고 화려하게 입어도 20대에는 아예 대중교통용으로 카디건이나 재킷을 항상 들고 다녔다. 일명 어른들의 항변이 이렇다면 젊은 사람들은 네가 예뻐서 그래 라는 말로 위로했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 말로 나를 위로하며 정신승리를 하기도 했었다. '어휴, 그래 봐라, 봐 살면서 예쁜 여자 처음 보나보다. 찌질하긴 ’ 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곧 아주 틀려먹은 헛소리라는 걸 깨달았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전형적인 루트이자 말도 안 되는 감언이설이고 가스라이팅이었다. 예뻐서? 내가 예뻐서 그런 일을 당한다고?라는 의문이 한번 일기 시작하자 언젠가는 그 말이 싫어지기도 했다.



 유독 패션과 그루밍에 관심이 많았지만 그런 시선들도 지겹고 마침 심경의 변화가 있어 구두를 버리고 언젠가는 숏컷에 박스티를 입고 다니기도 했었다.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면 그런대로 사람들은 쳐다보고 떠들어댔다. 억울했다. 나는 내가 여자인 것을 앞서 당한 일들 때문에 좋아하지 않았는데 유일하게 내가 여자여서 좋았던 점은 바로 옷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운동화보단 높은 구두를 좋아했고 매일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을 바꾸는 것을 즐겼다. 빨간 립스틱을 바를 수 있어서 예쁜 드레스를 입을 수 있어서 나는 내가 여자인 게 좋았다. 한 고집하는 나는 20대 중반이 되자 " 인생 마음대로 되는 거 하나도 없는데 옷이라도 내 맘대로 입어야지" 하며 그런 시선들을 되려 제압하거나 무시를 하게 되었다. 아니 실은 무뎌진 것도 같다.



 또 내가 더 이상 주변인들에게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 중 하나는 길거리 헌팅이다. 어릴 때는 당연히 나도 은근한 자랑거리라고도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저 불편하고 난감한 상황이기만 할 뿐이다. 그들은 한 번의 거절에는 잘 포기하지 않는다. 얼마 전에도 서점을 갔다가 3명의 남자가 번호를 물었고 나는 한 시간 반 만에 서점을 뛰쳐나왔다. 그중 한 명은 소심한 스타일이었어서 거절하니 바로 도망을 갔지만 나머지 두 명은 번호를 줄 때까지 계속 말을 걸었다. 심지어 한 명은 계속 주변을 맴돌며 내가 서점을 나설 때까지 기다리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눈치가 빠르기 때문에 이미 한두 명은 따돌린 후였다. 한 시간이 지나자 진심으로 짜증이 났다. 내가 보고 싶은 책이 구석에 있으면 나는 돌아 돌아 책을 픽업한 후 후다닥 사람이 많은 쪽으로 가서 읽어 보았다. 집중도 할 수 없었다. 어두운 골목길에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니고 대낮에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주변에 하면 공감보다는 묘한 대답들을 듣게 된다.


유독 너한테는 그런 일이 많이 일어나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언젠가 들었던 위화감이 들었다. 이 기분이 뭘까 하고 고민하다 떠올랐다. 여자 연예인들의 자살이나 불행한 일화를 보았을 때 사람들의 반응과 비슷했다. “역시 미인박명이구나” 하는 말이나 “하여간 예쁜 것들은 팔자가 쎄”라고 하는 이야기들과 비슷한 맥락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그렇게 예쁜 것도 아니고 자의식 과잉이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너랑 같이 있으면 직원들이 친절하다는 투덜거림이나 하루만 몸을 바꾸자는 이야기들을 자주 듣게 되자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기분 나빠할수도 없었다. 예쁘다고 한 칭찬을 꼬아서 듣는 예민한 사람이 되었으니 조금 더 외로우면 그만이었다.




 사실 이런 말들을 하면 나를 아는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예쁘다고?   정도 아니야라고  수도 있겠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는 것은 ‘예쁘다 폭력을 당하고 있을 당신을 위해서다. ‘예뻐서불행해도 되는 사람은 없다. 타인의 잘못을 ‘예뻐서참아야  이유도 없다. ‘예뻐서당신이 당신을 싫어하지 않길 바란다. ‘예뻐서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하지 않길 바란다. ‘예뻐서길거리를 걷는 것이 불편하지 않길 바란다. 예쁘다는 말은 죄가 없다.  모든 못된 잘못들을 ‘예쁘다 예쁜 말로 무마하고 덮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이 아름답다고 함부로 꺾으면  된다. 모든 꽃은 아름답지만 다른 꽃이 시든다고 손뼉 치며 기뻐한다면 나의 향기만 역해질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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