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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lum Jul 24. 2021

삭제되어 가는 사람들



 인터넷에선 살지 않는 그들은


 


 몇 해전 추석이 가까워졌을 무렵, 우연히 눈에 밟히는 뉴스 하나를 보았다. 명절이 다가오니 기차표 예매가 대란이라는 당연한 이야기였는데 기차표 예매를 하려고 하는 대상과 방법이 뉴스거리였다. 인터넷에 익숙하지 않은 60대 이상의 노인들이 기차표를 구매하기 위해 이틀 전부터 역사에 앉아 줄을 지어 노숙을 한다는 것이었다. 티브이를 그저 일정한 소음을 만드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던 나는 하던 행동을 멈추고 티브이를 바라보았다. 정말로 개찰구 앞쪽에 바리케이드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앉아 있었다. 마치 90년대를 보는 것 같았다. 21세기에 들어 사람들이 줄을 그렇게나 길게 서서 기다리는 일은 한정판 운동화를 사기 위함이나 유명한 식당이 아니고서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심지어 요즘엔 맛집 웨이팅도 웨이팅 어플을 사용해 실질적으로 밖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인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 시기가 유독 엄마와 나의 관계성이 변할 때였기 때문에 더 신경이 쓰였을 수도 있다. 내가 엄마에게 묻는 것보다 엄마가 나에게 묻는 일들이 더 많아지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이 걸음이 느린 엄마에겐 가끔 벅찰 때가 많았다. 핸드폰으로 하는 회원가입부터 은행업무 인터넷 쇼핑 등 나에겐 숨 쉬는듯한 인터넷 세상이 엄마에겐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미지의 세계였다. 그때부터 의도 없는 열외에 의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가 작은 아이들은 이용하기 어려운 공중화장실이나 건물의 비상벨,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이용하기 힘든 건물의 출입구나 보도블록같은 것들이였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던것들 말이다.




 아버지의 병세가 급격히 안 좋아져 잠시 휠체어를 이용했던 적이 있었다. 걸을 수 없게 된 아버지를 모시고 대학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할 때는 갈 때마다 정말로 지옥이었다. 우선 차가 없는 내가 문제였고 장애인 택시의 이용도 쉽지가 않았다. 장애등급판정이 필요하고 일단 개체수도 많지가 않았다. 일반 콜을 불러 엄마와 함께 아빠를 들다 피시해서 진땀을 빼며 택시에 태우고 병원을 가서 치료나 검진을 받고 나면 돌아올 생각에 아찔했다. 요양병원에 계실 때는 옆 건물 정형외과에 X-lay를 찍으러 아빠를 휠체어에 태우고 이동하다가 보도블록 턱에 걸려 아빠가 휠체어에 탄 채로 넘어질뻔한 적도 있었다. 이미 말을 할 수 없을 만큼 아팠던 아빠는 놀라서 손만 떨었고 나는 부러 큰소리로 미안하다고 놀랐냐며 아빠의 손을 잡고 웃었지만 사실 나도 놀라고 서러운 마음에 바닥에 주저앉아 울고 싶었다. 평소엔 핸드폰으로 1분 만에 잡는 택시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넘는 보도블록들이 그렇게 밉고 불편한 존재들인지 몰랐다.



  엄마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필요한 것들을 준비해놓고 기다렸다가 부탁을 한다. 머리 염색이라던지 무언가를 고치는 일들처럼 몸으로 때우는 일만 있으면 참 좋겠는데 공인인증서가 필요한 일이라던가 보험업무 같은 것들이면 나도 모르게 작게 한숨을 쉬게 된다. 더 편리하기 위해 세상은 계속 발전하고 그 속도가 너무 빠른 사람들은 세상이 자꾸 어려워진다. 방송채널들이 온라인 매체들로 옮겨 가고 티브이만으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이 자꾸 좁아진다. 빠르고 넓은 변화는 조금 어렵다.




 나는 사회복지라던가 인권문제 같은 것들은 잘 모른다. 말에 힘이 있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도 아니고 영향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지만 가끔 눈에 밟히는 뉴스들이나 누군가는 사용할 수 없는 물건들을 보면 그제야 한번 더 경각심을 가지고 여러 사례들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작은 개인일뿐이다. 그저 작은 개인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가 조금 더 서로에게 친절한 구조와 시선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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