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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이 Jan 17. 2023

후각을 잃은 삶

코로나에 걸렸다.


1년간의 해외생활을 하며, 유명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살았음에도 걸리지 않았던 터라, 내심 속으론 ‘나는 슈퍼 유전자인가’라며 생각하며 살았다. 회사에서도 팀 14명 중, 걸리지 않은 사람은 단 2명.


최후의 코로나 생존자가 누구일까를 떠들어대며 지냈는데, 일단 나는 아닌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승진에 떨어져 온갖 분을 못 이겨, 그 화를 내 몸 가득 받았던 터일까. 몸살을 앓다가 결국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닐까 싶다. 하늘이 내게 준 휴식의 기회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틀뒤 갑자기 음식 맛이 나지 않았다. 식감만 있을 뿐, 맛이 나지 않았다. 모두가 한 번씩들 겪는 코로나 증상이라는데, 격리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각이 회복되지 않은 지금. 나는 인생의 즐거움을 잃은 게 아닐까 두렵다.


두려움과 동시에 전혀 생각지 못했던 후각의 즐거움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개운히 씻을 때 나는 향긋한 샴푸냄새, 샤워 후 바르는 보드라운 로션 냄새, 간단히 계란 프라이를 하나 해도 나던 고소한 음식 냄새, 물론 냉장고 속 음식냄새, 큰 볼일 보고 나서의 구수한 똥 냄새, 짝꿍이 옆에서 뿡하고 낀 방귀 냄새 역시 나지 않는다.


풍부했던 인생에서 냄새가 사라짐으로, 인생이 단조로워졌다. 단순히 맛이 줄어드는 것 그 이상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냄새, 향, 구린내까지 인생을 한층 더 섬세하고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들이었다.


뭐든 잃고 나서야 느끼게 되는 소중함. 화에 못 이겨 몸살이 나고, 코로나에 걸리게 된 나에게 주는 교훈이랄까. 잃기 전에 지금 가진 것들에 감사하며, 내 삶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도록 해봐야겠다. 세상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세상을 지배한다. 냄새가 그러하듯,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것의 기운이 부족했으리라, 비록 승진하진 못했어도 내게 펼쳐질 다른 기운이 다가오고 있을 것이라.


내가 새롭게 맡을 향은 한국이 아니라,

벨기에에 있게 될까? 한 치 앞을 알 수 없음에 긴장된다.

삶의 향기가 꽃향이든 똥내이든 아무 냄새가 없는 것보다는 행복하다는 것. 오늘은 여기까지 알게 된 것 같다. 빨리 삶의 향기를 되찾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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