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균형
전혀 예기치 못한 존재가
삶의 틈새로 들어올 때가 있다.
그리고 정신 차려보면, 어느새 그것이
내 삶의 한 구석을 채우고 있기도 하다.
내게도 그런 오래된 친구가 있다.
처음 고등학교를 입학한 해,
방과후 과목 첫 수업을 앞두고 있었을 때였다.
수업이 끝나고 배정된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낯선 듯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엇, 그 애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눈이 마주치던,
아니 정확히는 나를 힐긋힐긋 쳐다보던 아이.
그 애와는 같은 반도 아니었고 서로의 이름조차 몰랐다.
처음 시선이 느껴진 한 두 번은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언젠가부턴 눈이 마주치기 시작한 횟수는 점차 늘어갔다.
‘기분 탓이 아냐.’
불편하다면 불편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상하게 그 애가 싫진 않았다.
단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을 뿐.
그렇게 아는 사이도, 모르는 사이도 아닌
애매한 관계가 된 우리는 서로의 존재만 희미하게
의식한 채로 아무 수확 없이 1년이 흘렀다.
시간은 흘러 흘러 다시 3월. 새 학기 첫날이 다가왔다.
2학년 반 배정을 받고 교실에 발을 디딘 순간,
가장 먼저 눈에 띈 얼굴.
그 애였다.
"너 나 알지."
나는 씩 웃으며 당차게 말을 걸었다.
"어?"
그 애는 내 얼굴을 보더니 화들짝 놀라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리고 덧붙였다.
"어떻게 알았어...?"
"너 맨날 나 쳐다보지 않았어? 그러는데 누가 몰라!"
민망한 듯 그 애는 멋쩍게 웃었다.
"근데 진짜 왜 쳐다본 거야?"
"아......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불편했으면 미안."
쭈뼛쭈뼛 대며 말하는 그 모습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난 빠르게 마음을 열었고 우리는 처음으로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후 우린 함께 밥을 먹고, 함께 공부를 하고,
함께 집을 가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붙어있는 사이가됐다. 신기할 정도로 생각하는 게 비슷했고 그만큼 통하는 것도 많았다.
우린 그다음 해에도 같은 반이 되며
어느새 절친한 사이가 되었고
그렇게 흐르는 시간의 두께만큼 우정도 두터워져 갔다.
시간이 흘러 우린 성인이 됐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옆동네에 살았던 덕에
서로를 자주 볼 수 있었다.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았는지 그 애와 대화하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그러던 중, 일이 일어났다.
20xx년. 12월 30일.
연말의 늦은 새벽, 그 애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침묵 사이로
작게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 느낌이 좋지 않았다.
“여보세요? 지윤아 왜? 무슨 일 있어? “
“..... 나...... 나... 어떡해?... 엄마가 돌아가셨어. “
쿵-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 달 전 편찮으셔서 입원한 소식은 알고 있었지만
걱정할 필요 없단 친구의 말에 완전히 마음을 놓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심각한 상황이었을 줄이야.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뭐? 그렇게 많이 안 좋으셨던 거야?
아... 어떡해... 어떡해 진짜로...”
울컥 눈물이 났다.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당시 우리 나이는 스물 둘.
아직 부모의 상을 겪기엔 너무 이르지 않은가.
우린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통화를 붙잡고 그저 흐느낄 뿐이었다.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친구에게 전해받은 장례식장 주소로 향했다.
달리는 택시 안,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떻게 위로를...
... 위로가 되긴 하나...'
장례식장에 도착하자 수척해진 얼굴을 한 친구가 보였다. 어제 새벽과 달리 친구는 울지 않았다.
정확히는 더는 빠져나올 눈물이 남아있지 않아 보였다.
“나 이제 어떡하지... 어떻게 살지... 너무 무서워.”
솔직한 친구의 말에 되려 안심이 됐다.
“너도 부모님한테 잘해드려. 난 진짜 잘못하고 화냈던 것만 생각나. 너무 후회돼 그게.”
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섣부른 공감과 위로는 상처가 될 것 같았다. 복잡했다.
당시 상황도, 친구의 사무친 마음을 온전히 감싸주지 못하는 내 마음도. 그렇게 어떤 위로가 적절할지 여전히 답을 찾지 못한 채로 장례는 마무리가 됐다.
이후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 당시 난 그 친구를 챙겨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에 빠져있었다. 친구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게 내 역할이었다.
엄마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해서
너무 오래 슬퍼하지 않았으면 해서
너무 빨리 어른이 되지 않았으면 해서
난 친구를 집밖으로 불러내 종종 밥을 사주고 울적한 날엔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다. 명절이나 생일, 멀리 교환학생을 떠나는 날 등 특별한 날엔 부모님께서 틈틈이 그 친구의 용돈을 챙겨주셨다.
비록 큰돈은 아님에도 가족도 친척도 아닌 내가 이러는 게 혹시나 부담스럽진 않을까, 오히려 반감이 들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이 있었다.
자칫 선의가 곡해되는 것을
의식적으로 늘 경계해야만 했다.
친구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면서도
자꾸만 침습하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난 그 친구가 불쌍했다.
남은 가족인 아버지와는 따로 살아야했고 앞으로 어린동생을 챙기며 헤쳐나가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친구가... 너무 가엽고 불쌍했다.
친구에게 그런 감정을 느껴선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우정의 균형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내가 건네는 위로와 관심이 친구를 지탱하는 힘이 될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짐이 될지 무서웠다.
‘분명 친구를 위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무거울까.’
난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른 이에게 털어놨다.
"내가 그 애를 마냥 예전처럼 못 대하겠어. 그냥 너무 안쓰러워서, 불쌍해서... 자꾸 뭔가를 해줘야 할 것 같아. 이걸 걔가 알면 불편해할까? 동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넌 네가 그런 상황이면 그렇게 생각할 거야?"
"그건 아니지만..."
"걔도 마찬가지일걸. 진심으로 그 애를 생각해서 느끼는 감정이잖아. 안타깝고 짠하고, 또 그래서 챙겨주고 싶은 거지. 그 애를 아래로 보는 게 아닌 이상 그런 것도 우정이지 않나? 그렇게 이상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해 보면 친구 사이에 느껴야 되는 감정이란 게 단편적으로 정해져 있는 건 아니었다. 이 점을 스스로도 분명히 알고 있었으나 당시엔 혼란스러움과 그래선 안된다는 죄책감이 앞섰다.
사랑 안에 애착, 동질감, 존경, 질투, 불안 등
온갖 감정이 함께 들어있듯, 우정도 마찬가지였는데.
친구 사이에 느끼는 감정에도 얼마든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었다. 결국 감정이라는 건 모두 입체적이고 복합적이란 것을 새삼스레 다시 깨달았다.
우정이 즐거울 때만 유효한 것이 아닌, 때로는 서로의 무게를 나눠 들어야 할 때도 있듯이 연민과 같은 연약한 감정들도 우정 속으로 스며들 수 있다는 것 역시.
그래서 나는 모든 망설임 속에서도
결국 친구 곁에 머무르기를 택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그 곁을 지키는 일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서툰 방식일지라도, 나는 그 애와 함께하고 싶었다.
관계에선 얼마만큼이 지나침이고,
얼마만큼이 부족함인지 늘 가늠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어떤 관계도 정량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이 가는 만큼 주면 된다.
마음껏 좋아하고, 또 애틋해하면서.
서툰 위로든, 불완전한 감정이든 간에 때로는 그저
함께라는 사실 자체가 서로를 지탱해 주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그리고 추억들이 어쩌면
또 다른 형태의 사랑으로서 존재할지도 모르겠다.
2025년 현재, 지윤이와 난 열여덟의 그날처럼 깔깔대며 아무 실속 없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많은 게 변했지만, 우린 변치 않을 무언가를 지켜내고 있는 중이라 믿는다.
관계의 균형을 잡기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아마 괜찮을 것이다.
소중한 이들에게 적당함이란 그리 어울리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