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자격
성격의 결함일까
살아가며 불순물이 섞이듯 내면의 무언가 꼬인다.
다들 그렇게 어른이 된다.
너무 엉켜있어 풀고 싶은 엄두도 안 날 만큼.
어릴 적 나는 가끔 떼는 써도
크게 속 썩이는 일 없이 올곧게 컸다.
겁도 많았다.
혼나는 게 무서워 규칙도, 선생님 말씀도 잘 따랐다.
'왜 그래야 하지?'
애써 이 말을 뱉은 적은 없었다.
그들의 말은 곧 법이었다.
학창 시절 땐 눌러왔던 마음이
삐죽삐죽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왜 우리는 겨울에도 패딩을 입으면 안 돼? 학생이라서? 인권침해 아니야?'
'왜 저 선생님은 수능특강 답지만 읊어대는
거야? 그럴 거면 나 혼자 독서실 가지.‘
'왜 저 사람은 내 말은 들어볼 생각도 않고
자기 말만 하는 거야?'
시간이 흐름에 따라 품고 있던
질문의 크기도 나와 함께 자라났다.
세상은 이해되지 않는 것들 투성이었다.
어른들이 내 모든 의구심을 해소해 줄 의무는 없었지만 나 역시 납득되지 않는 일을 아무 의심 없이 수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애써 억눌린 불만을 토해봐도
돌아오는 건 닥치고 따르라는 반응이 대다수다.
어른들은 논리를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정당한 발언 같지만
분열을 만들고 싶지 않아 꾹 참았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어른에게 대들 용기도 없었다.
그런 강압적이고 권위적이던 어른들 사이로
기억에 남는 선생님 한 분이 계신다.
고등학교 2학년, 중간고사를 앞둔 시점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게시판을 보고 수군댔고
곧바로 내게 와 말했다.
"야... 수학 시험 범위 수정됐어.
2단원 중간 부분 제외라는데?"
"... 뭐?"
수학 과목 시험 범위가 수정됐단다.
한 놈만 팬다는 마인드로 그리 싫었던
수학을 붙잡고 사투를 벌였는데.
하필 오늘부로 제외됐다는 바로 그 부분을,
답지까지 딸딸 외워가며 말이다.
운도 지지리 없었다.
"미친 거 아니야?
무슨 그런 공지를 시험 며칠 전에 해?"
화가 났다. 다들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모두가 기피하던 까다로운 수학.
"... 아오."
등교하자마자 홀로 교무실을 찾아갔다.
억울한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
드르륵-
교무실 문을 열고 성큼성큼 다가가 말했다.
"선생님, 시험 범위 이렇게 갑자기 수정하시는 게
어딨어요. 미리 말씀을 해주셔야죠.
저 어제 야자 시간 내내 그 부분만 공부했다고요. 하..."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은
의자를 뒤로 젖히고 몸을 나로 향한 채 고쳐 앉았다.
약 2초의 짧은 침묵.
‘... 좀 버릇없었나.’
무섭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할 말은 해야겠다는 맘이 앞질렀을 뿐.
곧바로 표정을 살폈다.
‘인상을 찌푸릴까? 혼을 낼까? 아씨 괜히 말했나’
별의별 생각이 들던 찰나,
예상외로 내가 마주한 얼굴은 평상시
무뚝뚝한 얼굴이 아닌, 무척이나 난처한 얼굴이었다.
성적도 고만고만하던 애가
갑자기 찾아와 놀랬던 탓일까.
선생님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시험 범위가 나 한 명의 땡깡으로
다시 수정될 거란 기대는 일절 없었다.
그저 들어나 보자는 마음이었는데.
선생님은 예상외로 진땀을 빼가며 입을 열었다.
엄하고 깐깐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조막만한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며 진심으로 어쩔 줄 몰라하는 듯했다.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선생님 나름대로의 사정은있었다. 다만 그가 내뱉은 마지막 말만은 선명히 기억난다.
처음 보는 당황한 표정과
진심 어리게 뱉은 나직한 사과.
솔직히 놀랐다. 사과를 들을 생각은 없었다.
그저 이유를 듣고 싶었는데.
억울함이 바로 사그라들진 않았지만
감추지 못한 난처한 기색과 행동이
그의 진심을 내게로 조심스럽게 전달해주었다.
그리고 난 진심 어린 사과 앞에 더는 돌을 던질 수 없었다.
어릴 적 유독 싫어하던 말이 있다.
'쬐깐한 게 어디서 말대꾸야'
'네가 뭘 안다고, 가만히 있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뭔 말이 많아?’
보통 그 말은 무언가에 대한
정당한 응답을 요구할 때 되돌아왔다.
합리적인 논리가 없을 때, 나이 어린 상대를
찍어 누르기 최적화된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당시 어른들은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미안해'라는 말의 무게도
점점 무거워져 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살면서 어른에게 사과를 들어본 기억이
지금까지도 별로 없다.
어린아이 사탕 물리듯 하는 사과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아직까지도 그 기억이, 그 사과가
약간의 감동으로 남아있다.
그는 자신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어린 제자를 무턱대고 나무라지 않았다.
상황에 대한 변명이 아닌 설명,
그럼에도 속상한 상대의 기분을 살펴주는 배려,
그는 사과할 줄 아는 진짜 어른이었다.
상황이 해결된 건 아니었지만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나를 누그려뜨렸다.
고집불통이라고만 생각하던 그 선생님을 다시 보게 만든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면이 서지 못하고 가끔은 낯 뜨겁기도 하다.
특히 어른의 사과는 무겁다.
살아오며 누적된 경험치와 신념이
어느새 완고한 고집이 되어 나를 짓누르고 있기에.
너무 무거워 말로 꺼내놓기도 버거울 지경이다.
하지만 진짜 우리를 어리게 만드는 건
바로 그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잘못을 외면할 때, 우린 정말 잘못된 길을 걷게 된다.
내가 외면한 건 나의 잘못이 아닌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던 미래일지도 모른다.
당연하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건 완벽해진다는 뜻이 아니다.
어른도 고작 사람에 불과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부족한 점을 지적해 줄 사람 역시
점차 사라진다. 삐딱해진 자세를 풀기란 결코 쉽지않다. 올곧은 자세엔 많은 노력과 의식이 필요한 법이다.
이제 더는 나를 바로잡아줄 이는 없고
다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여유 따위 남아있지 않다.
그들은 이미 너무 지쳤다.
오직 나만이, 나를 바꿀 수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혼자가 될수록 더욱 더 그렇다.
그러니 어른이 된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뎌 온전한 고독을 즐기고
스스로를 매만지며 두려운 내일로
겸허히 나아가는 것 아닐까.
난 그럴 준비가 되어있나.
나는,
그리고 당신은.
어른이 될 자격이 있나.
우리는 충분히 외로웠나.
내가 봤던 삐뚤어진 어른들은 모두 외로워 보였다.
외로움이 점철된 긴긴 시간 속
아주 오래도록 곪아버린 듯했다.
또 한편으론
누구보다 인정과 사랑이 고파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왜인지
그들이 인정받고자 할수록,
아무도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들이 사랑받고자 할수록,
누구도 그들을 찾아주지 않았다.
그들은 본인도 모르게
더 외로운 길로 걸어 들어갔다.
내 안의 내가 강하면,
사람은 너무 오래 외롭다.
그러니 나의 부족함으로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면,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온갖 변명과 반박들을 걷어내고 상대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네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와 내 솔직함을 나눠보는 건.
자존심을, 쓸데없는 고집을 좀 내려둔다면
생각보다 상황은 훨씬 잘 풀릴 수도 있다.
상대의 불만이 사그라들어
날 선 언쟁이 아닌 성숙한 대화가 싹틀 수도 있겠다.
어쩌면
더 나은 감정들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은 어린 약자를 보호해 주는 사람만은 아니다.
상대가 누구든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우리를 더욱 어른다운 어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나 역시 내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 되어야겠다.
어린아이에게도
고개 숙여 사과할 줄 아는 그런 어른,
부끄러움이 뭔지 아는 진짜 어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