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설픔이 무기가 될 때

사랑스러운 제정신병자들

by YUN
다음을 입력하세요.

성: 김
이름: 김경재

.......

김김경재 씨, 가입을 축하드립니다.


“아니 진짜 어디 좀 모자란 것 같다니까?"


친구가 자신의 대학 동기에 대해

울분을 토하며 말했다.


"그래서 걔 홈피 로그인 할 때마다 김김경재로 뜬다니까,

완전 어이없지. 이건 일부야. 걘 늘 그런 식이야.

같이 있으면 속 터져."


그리고 이내 덧붙였다.


"아, 난 진짜 멍청한 거 너무 싫어."


친구가 늘 입버릇처럼 달고 살던 말이었다.


그래서였을까.

그 친구 앞에선 부족한 모습을 보일까

사소한 실수도 괜스레 눈치가 보였다.


이상하게 누군가를 의식할수록,

잘해보려 애쓰면 애쓸수록 스텝이 꼬였다.



주변을 둘러보아도 별것 아닌 순간 속 민망하거나 웃픈 장면들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단순히 멍청함으로 치부되기엔 아까웠다. 종종 떠올릴 때마다 피식 웃음이 나는 추억이 되어 다시 내게 돌아왔기 때문이다.


아이돌 콘서트 표를 구하고 방구석에서 방방 뛰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졌던 사촌 언니
사진(인생네컷) 찍으러 가자했더니 정말 근처 사진관을 들어갔던 썸남
에어팟 연결이 끊어진 걸 모른 채 버스에서 자신의 플레이 리스트를 30분 내내 공유해 버린 어느 이름 모를 사람까지.


뻘하게 어이없지만

묘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사람들.


또 조금 바보 같기도 하지만

돌이켜보면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온다.


분명 멀쩡한데, 아픈 곳도 없는데

우린 왜 가끔 고장이 나는 걸까?


어쩌면 그 황당함과 어이없는 순간들에는

우리를 웃게 만드는 가장 인간적인 면모들이

숨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완벽함만으로는 결코 생길 수 없는 틈새가,

모두 저마다의 어리숙함이

오히려 우리의 거리를 좁혀주고 있는 걸 지도.






N 년 전, 합창제 대회에서 우리 팀 한 명이 무대 위에서대차게 삑사리가 났다.


보통 삑사리도 아니었다. 뻔뻔할 정도로 우렁찬 소리였다. 다들 웃음을 꾹 참고 노래를 부르는 게 느껴졌다.

희미하게 다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아아, 웃으면 안 되는데.'


공수 자세로 노래를 불렀던 터라 허벅지를 꼬집을 수도 없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생각을 하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한 번 무너진 분위기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우린 당연하게도 프로가 아니었고 결국 연습했던 실력의 반의 반도 보여주지 못한 채 무대를 내려와야 했다.


몇 달을 갈아 넣은 대회가 생각지도 못한 해프닝으로 막을 내렸다.


삑사리를 낸 친구는 무대 뒤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자신 때문에 분위기가 흐트러진 것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눈물이 무색할 만큼, 우린 입을 맞춰 말했다.


"혜진아, 덕분에 우리 평생 간직할 추억 하나 생겼다. 1등보다 이게 더 좋아."


물론 위로의 말이기도 했지만 결코 거짓은 아니었다, 우린 진심으로 그 애에게 고마워했다.

상금이야 쓰면 없어져 버리지만, 두고두고 웃음이 나는 이야기는 돈으로도 얻을 수 없기에.


그 사건 이후, 나는 문득 떠올리곤 한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짙게 남아 있는 순간들을.


나의 발연기로 대차게 실패한 깜짝몰래카메라
미숙한 일본어로 손짓 발짓을 써가며 소통해야만 했던 일본 여행
페이지 전환 효과를 잘못 넣어 세상 요란한 ppt와 함께한 전공 발표
간조절을 잘못해 온 가족에게 짜디짠 요리를 대접한 저녁 식사


이들은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더 자주, 더 크게 웃음을 자아냈다. 완벽함이 비껴간 자리에서 만들어진 장면이자, 실수와 어설픔이 빚어낸 순간이었다.




웃음의 총량은, 언제나 완벽하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떠올릴 때 더 많이 채워진다.


어리숙한 모습으로 불편했던 혹은 민망했던 기억들이,어쩌면 나와 타인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어 주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누군가 삑사리 친구의 실수를 타박했더라면?

내 부족한 연기실력과 외국어, 요리 실력을 비난했더라면? 나는 그것들을 결코 지금처럼 웃으며 떠올릴 수 없었을 것이다.


각박한 세상 속에서 인간다움을 지켜내기란 쉽지않다.그렇기에 더욱더 각자의 바보스러움을 품어주며 웃어넘길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그리 인정사정없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하는 내 바람이기도 하다.


오늘 또 평온한 당신의 삶에

돌을 던져오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겠다.

그 누군가는 친구가 될 수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도, 나 자신이 될 수도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괜한 엉뚱한 말을 해버리거나

계획에 없던 멍청 비용을 지출해야 할지도 모른다.


늘 그렇듯

누군가의 미숙한 모습을 품어주기란 쉽지 않고

특히나 우린 스스로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땐 더더욱.


그러나 그 모습들을 칠칠치 못하다거나, 멍청하다는 말로 주눅 들게 하면 우리가 놓치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사소한 일들로 하루의 감정, 유쾌하게 추억될 순간들을 영영 잃어버리고 싶진 않다.


그러기 위해선

종종 잊고 있는 사실을 자주 상기해야 한다.

모든 면에서 충만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으며 나 역시 부족한 사람이란 사실을 말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누군가의 빈틈을 날카롭게 꼬집기 보다

그 틈에 발을 들여 함께 넘어져 보는 것은 어떨까.


모자람에 대한 비난, 비판, 지적 대신

고장 난 흐름에 몸을 맡겨 그저 한바탕 웃어 보인다면

하루가 더욱 뜻깊게 추억될지도 모른다.


나는 사람들이 모두 적당히 미쳐있으면 좋겠다.


너무 딱딱한 기계가 아닌 말랑한 인간임을

틈틈이 증명하며 살아갔으면.


모든 바보 같은 순간에 웃어 보일 수 있는,

2% 부족한 누군가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봐주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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