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늦는 게 두려울 때
"나 임용고시 합격했어!"
친구가 내게 전화로 말했다.
갓 대학을 졸업한 나이에 처음 본 임용고시였다.
내 친구가 그 어렵다는 초수 합격을 해낸 것이다.
축하한다는 말로 짧은 통화를 마치고
내게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이유 모를 씁쓸함이었다.
대학을 막 졸업한 후 임용고시가 아닌
취준을 선택했던 나에게
친구의 합격은 마음의 부담을 더 짓눌렀다.
'진짜 한 번에 해낼 줄 몰랐는데.'
얄팍한 마음이 나도 몰래 고개를 들었다.
친구는 매번 입버릇처럼 말했다.
"야, 나는 진짜 한 번에 붙을 거야.
이걸 몇 년을 붙들고 있을 자신이 없다."
난 그런 친구에게 말했다.
"너무 그렇게 몰아붙이지 마.
요즘 임용 시험 기본 3년 잡고 한다더라. 여유를 가져."
지난 대화를 회상하고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실 난 친구의 부담을 덜어주기보단
현실을 직시하라는 주제넘은 충고가 하고 싶었다.
공부 좀 한다는 사촌 언니들이 적게는 3년,
많게는 4,5년씩 고생하며 임용을 준비하던 모습을
가까이에서 봐 왔었기에, 초수 합격은 말도 안 된다고 속으로 단정 지었다.
아니 사실, 내 옆에 누군가 몇 년씩 걸려 해낸 일을
그렇게 쉽게 한 번에 해내겠다는 마음이 언짢았던걸 지도.
그래서였을까.
부끄럽지만 난 친구의 성과에 온전히 박수를 보내지 못했다.
그 힘든 임용고시를 한 번에 턱하고 붙은 친구에게
온 마음으로 박수를 쳐도 부족할 판에
짝-... 짝-... 짝-...
김이 팍 샌 박수를 보내고 나서야 생각했다.
'아, 지금 나 되게 없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대학교 4학년이 되고 처음으로
성적 장학금을 받았던 때가 생각났다.
...
"야 이번 중간고사 1등 현진이 아니라는데?
뭐야 진짜 너야?"
과실로 들어오자마자 동기 남자애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동기들과 함께 둘러앉아 밥을 먹고 있던 나는 말했다.
"응, 왜?"
"너 교수님한테 맨날 친한 척하더니,
성적 조작한 거 아니냐ㅋㅋ"
평소에도 그리 좋아하던 친구는 아니었지만, 난데없이비아냥 거리는 말투에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물론 장난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대수롭지 않게 시작한 말이 잘못 퍼져나가면 어떤 뒷말이 나오는지, 어떻게 소문이 되는지 말의 무서움을 알기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나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는 교수님께도 피해를 주는 일이었다.
"야, 입조심해. 너 그 말 책임질 수 있어?"
점점 굳어가는 내 표정을 보았는지 친구는 그나마
남아있던 눈치를 급히 챙기며 말했다.
"아 왜 그래 미안 미안, 장난인 거 알지? 얼른 먹어."
짧은 대화는 친구의 사과 같지 않은 사과로 일단락 됐다.
친구의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한 나와
나의 성취를 까내리던 동기
난 직접적이지 않았을 뿐, 그 동기와 내재된 감정은 비슷했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신이 상대보다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에서 비롯된 반응이었다.
사람은 타인의 성취에 쉽게 질투를 느낀다.
좀 더 속된 말로 어딘가 배알이 꼴린다.
특히 가까운 타인의 성취일수록 불안과 비교심리는
가중된다.
너와 내 조건이 그리 달라 보이지도 않은데,
네 노력이 별반 그렇게 대단해 보이지도 않은데,
왜 우리 결과는 다른 거지?
섣부른 추측과 함께
보이는 모습만으로 쉽게 단정 짓는다.
'운이 좋았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보호할 명분을 찾는다.
애써 불편한 사실들은 결코 들춰보려 하지 않는다.
사실 난 앞서 언급했던 초수 합격 친구의 스케줄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지난 1년간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떤 싸움을 했는지.
친구는 새벽에 일어나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10시까지,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공부를 했다.
하루도 빠지는 법이 없었다.
애써 피해갔던 사실이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난 그렇게 살아본 적 없잖아.'
학교에서 아침, 점심, 저녁을 다 먹는 삶을 나는 알지 못한다. 주말이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내 안온한 일상을 던질 만큼 무언가에 무모히 덤벼본 적도 없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취업이란 현실에
대학교 4학년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바짝 공부해 본 기억이 전부다.
친구는 그리 머리가 좋지도, 한 번에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할 만큼 집중력이 좋지도 않았다.
그러나, 성실하게 꾸준했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뻔한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운이 전부다'라고 말하고 싶다.
똑같은 고난을 겪고 똑같이 똥밭을 굴러도
누구는 성공하고 누구는 허탕이다.
분명한 확률로 오직 예외만이 성공할 것이다.
인생은 결코 합리적이지 않으니까.
그럼 오늘 내겐 어떤 선택지가 있나.
인생 한방이라며 두 손 놓고 운을 기다릴 수도 있겠다.
어쩌면 타고나지 못함에 분해하며 세상을 저주할 수도.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유명한 궤도는
한 방송에서 이런 말을 했다.
"저한테 그런 말을 많이 하세요.
물이 들어오니까 이제야 네가 노를 젓는다고.
그런데 저는 물이 아예 없을 때도 계속해서 노를 젓고 있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니 자연스레 앞으로 나아가더라고요."
그는 꾸준히 대중 앞에서 과학 이야기를 해왔다.
몇 년 전, 궤도를 우연히 방송에서 처음 접했을 때
난 생각했다.
'되게 가벼운 얘기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네.'
당시엔 바로 다음 영상으로 넘어갔지만
그의 말이, '나'라는 이름 모를 이에게 닿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노를 저어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과학적으로 논리 정연하게 사람을 웃길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 사실을 인지하기까지,
대중에게 '궤도'라는 두 글자로 기억되기까지
그의 삶에선 14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는 말한다.
언젠가 이 물이 빠진 대도
저는 열심히 땅을 긁고 있을 겁니다.
성공하기 위해 운은 분명히 필요하다.
같은 노력의 총량을 들이부어도 기적적으로
소수만이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에 우리를 가둔다면
우리 인생은 끝없는 무기력에 갇히고 만다.
그러니 운이 오기까지 '존버'하는 게 아닌
운의 흐름이 내게 올 거라 믿으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일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내가 믿는 걸 믿고, 오늘 내 운의 통로를
1cm라도 파두었다고 말할 수 있게, 움직여야만 한다.
결국 내가 운의 통로를 파두고 있지 않으면
운은 내 쪽을 기웃거리지도 않을 테니.
누군가의 성공에 배가 아픈 날엔 기억하자.
그들이 거저 얻은 것은 없다고.
운이 어딘가에서 서성이다, 열심히 바닥에서
노를 젓고 있는 그들을 발견했을 뿐이라고.
나는 매일 퇴근 후 글을 쓴다.
조용한 사무실에 홀로 앉아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공부를 하고 강의를 듣는다. 그렇게 노력과 열정을 기꺼이 삶의 한 자락으로 작게나마 밀어 넣고 있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도
남을 이기기 위함도 아니다.
그냥 내 삶이 좋아서. 내가 더 잘 됐으면 해서.
그뿐이다.
그러니 물이 언제 들어오든, 끝내 들어오지 않든
나는 묵묵히 나의 노를 저을 것이다.
성공은 운이지만
운의 통로를 만드는 건 언제나 내 몫임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