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콤플렉스가 내가 널 사랑하는 이유야

by YUN



누군가 내게 말했다.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크게 다르지 않아



당시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여름은 겨울이야"라는 말만큼이나 모순적이게 들렸다. 내 단점을 고치려 노력했던 행동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기도 하는 말이었다.


장점은 부각해 마땅하고

단점은 꼭꼭 숨겨 마땅한 것 아니었나.

이렇게나 명확히 다른데, 납득이 안 됐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내가 되묻자, 그가 말했다.


"예를 들어, '예민하다'는 건 어떻게 들려?"


"단점에 가깝죠. 주변 사람도 힘들고 본인도 피곤할 테니까."


"그렇게 볼 수도 있지. 하지만 예민하기에 누군가 놓치기 쉬운 미묘한 차이를 알아챌 수 있잖아? 또 예민함을섬세한 배려로 베풀며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도 있어. 남들보다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재빨리 대처할 수도있지.


그러니까 어떻게 보면



예민하다는 건 마냥 까탈스러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해주기도 하는 거야.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예민함 까다로움 기민함 민감함 섬세함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들이 각기 다른 단어로 느껴지지 않았다. 모두 한 끗 차이였다.


생각해 보면 내 주변에도 같은 상황, 같은 말을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나의 글을 만 명이 읽는다면 만 개의 감상평이 쏟아진다. 타인의 시선 앞에서 변치 않는 '진리' 따윈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걘 너무 둔해. 남 눈치도 안 보고."
"부모님이 어릴 때 이혼하셔서 별로 사랑받아본 기억이 없어."


실제로 주변에서 들은 말들이다.


첫 번째 친구는 눈치 없고 둔한 걸로 동창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지금까지 크게 뭔가를 걱정해 본 적이 있나 싶을 정도로 무던한 면이 있었지만 그렇기에 남들보다 조금 더 홀가분히 삶을 살아가는 듯했다.


너무 많은 생각과 걱정에 사로잡히지 않는 점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기에 남들이 하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주기도 했고, 가끔은 단순한 시선으로

생각지도 못한 해답을 내놓기도 했다.


갑작스레 부모님의 이혼 사실을 밝혔던 친구는

늘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도 많고 성격도 좋은 애였다.


생각지도 못한 사실을 툭 내뱉듯 말했지만

그 애가 지금까지 상처에 집어삼켜지지 않도록

얼마나 노력했을지를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 애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친절했고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나눠줬다.


비록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진 못했어도

그로 인해 사랑받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게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또래에 비해 성숙했던 친구는

누군가에게 더 큰 사랑을 줄 준비가 된 듯 보였다.


내 주변을 떠올리니 사람의 장점과 단점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그 말이 조금씩 이해가 됐다.


우리는 나와 타인을 너무 쉽게 단정 짓는다.


예민한 건 까다롭고 피곤한 것으로,

둔한 건 답답하고 생각 없는 것으로,

상처가 많은 건 복잡하고 연약한 것으로.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결국, 그 사람 자체가 아닌

그들을 구성하는 하나의 결에 불과했다.


누군가의 단점처럼 보였던 것들이, 어쩌면

그 사람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다.


결국 좋고 나쁨에 대해 나와 타인이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는 건 없었다.




그날 밤 내 단점에 대해 생각했다.


어릴 적 난 충동적이었다.

친화적인 성격으로 비교적 쉽게 관계를 시작했지만

한편으론 언제든 놓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갈라면 가, 아쉬울 거 없어.'


관계는 피곤했다. 욕심낼수록 나를 갉아먹었다.


소수의 사람들에겐 지극했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겐 마음을 다 준 척,

뒤돌아선 적당히 남겨두었다. 그 마음을 들켜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상처주기도 했다.


때론 마음을 줬던 이들의 마음이 나와 같지 않다고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도 너 그 정도는 아니었어.’ 라며 재빨리 선을 그었다. 물질적 손해는 참아도 감정적 손해는

견딜 수 없었다.


그런 스스로의 모습이 맘에 들지 않았다.


관계에 손해 보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보편성이 타당함을 뜻하지 않듯 흔한 감정이라 해서

그걸 당연하게 여길 이유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적용할 대상에

갈증을 느꼈던 이유도 어쩌면 이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외롭다는 감정을 애써 느끼지 않으려 했지만

외로운 날들도 분명 있었다.


버거운 날들에 연락할 사람 하나 없는,

아니 정확히는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내 모습이 답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들 다 이 정도는 힘들어. 유난 떨지 말자.‘


슬픔에 취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중요한 순간엔 혼자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혼자 삼키면 없는 일이 되는 거라 생각했다.




난 정작 중요한 순간에 소중한 이들에게 솔직하지 못했고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관계 역시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좋아하는 사람은 날 너무 쉽게 떠났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내가 너무 쉽게 대했다.


우습지만 이런 내가 스스로 인간관계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렇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관계에 목매는 건

약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라 생각했다.


그땐 몰랐다. 정말 나약한 사람은 관계에 기대하고 실망하는 그들이 아닌, 제대로 부딪히기도 전에 겁먹고 돌아서는 나였단 걸.


나는 예측불가능한 관계가 싫었고

약자가 되고 싶지 않았으며 그래서 어떤 관계든

내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행위가 상처받지 않기 위해,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무의식적인 움직임이란 걸시간이 지나고서 깨달았다.


지금껏 제대로 누군가를 사랑해 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그들을 사랑해 놓고도

애써 부정했던 걸 지도 모른다.


과거, 상대에게 의존했던 기억에서 벗어나려는,

일종의 방어기제이기도 했겠다.

그게 그 당시 내 자존감을 올리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오래도록 내 오만함과 부족함을

관계의 유연함이라 포장하며 시간을 보냈다.


내 단점은 스스로의 불완전함이자

그것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은 나약함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단점과 장점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단그의 말이 왠지 위로가 됐다. 이런 내 모습도 마냥 나쁜건 아니라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인간에겐 명(明)과 암(暗)이 존재한다.


무조건적으로 좋은 사람과 절대적으로 나쁜 사람은

없다. 내가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바라봐주면 그는

내게로 와 좋은 사람이 된다.


반대로 거슬리고 불편한 점만 바라보면

빛날 수 있는 그조차 내게는 별로인 사람이 된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관점의 차이일 뿐이다.


달빛이 밤에는 빛나지만 낮에는 희미하게 보이듯,

우리가 가진 기질과 특성은 결코 변하지 않음에도

그것들은 상황에 따라 그리고 해석에 따라

종종 다른 형상을 띄기도 한다.


따라서 내 안에 있는 단점이라 여겨온 것들도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소중한 특성일 수 있다는 걸,


그것들이 어디에, 어떻게, 누구에게 비춰지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레 받아들이고자 한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상대성과 양면성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하는 것이겠다.


사람에 있어서도, 관계에 있어서도,

삶의 무수한 선택 앞에서도.




결국, 어둠을 외면하지 않는 사람만이 빛을 알아본다.

그리고 어둠과 빛의 경계는 생각보다 훨씬 흐릿하다.


어쩌면 당신이 감추고 싶은 그 결점이 누군가에겐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우린 다 너무 복잡하고 다른 존재들이니까.


그러니 스스로의 단점이 미울 때

어둠의 이면에 있는 희미한 한 줄기

빛을 바라보는 사람이 되기를.

그 어둠 또한 나의 일부로 끌어안을 수 있길.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왠지 마음 한편이 답답하지만

이 불편함이 훗날 나를 좀 더 편하게 만들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분명 그 과정 속에 있다.



나도, 이 글을 읽는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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