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글쓰기와 이직준비를 병행하며
살다 보니 어느새 올해도 훌쩍 지나가있다.
잘 아프지 않은 체질임에도
몸이 무리를 했는지, 아니면 추워진 날씨 탓인지
불쑥 감기가 찾아왔다.
감기 기운이 느껴질 때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N 년 전, 학원에서 일을 할 때였다.
“선생님, 어디 아프세요?”
“그냥 좀 감기기운이 있네. 괜찮아, 얼른 책 펴.”
몸이 좋지 않았음에도
이를 애써 무시하며 일을 했다.
일을 팽개치고 당장 전기장판 속으로 기어들어가
맘 편히 잠이나 자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몽롱한 정신을 부여잡은 지 세 시간.
식은땀이 흐르고 얼굴에 핏기가 사라진 내 몰골을
본 원장 선생님이 급히 나를 병원으로 보냈다.
병원으로 들어서자마자 간호사가 열을 쟀다.
“헉, 선생님! 38.9도예요.”
열을 재준 간호사는 다소 놀란 얼굴로
동료 간호사에게 내 상태를 보고했고
바로 코로나 항원 검사까지 받아야 한다고 했다.
“으... 으...”
코를 쑤셔대는 불쾌함을 참으며
검사를 받았다.
다행히 코로나까진 아니었지만 수액을 맞으며
거의 반쯤 쓰러지다시피 아파본 기억 이후론
조그마한 감기 기운에도 미리 병원을 찾는다.
으슬으슬 오한이 들고
기분 나쁜 인후통이 목을 찔러올 때 드는 생각은,
‘쉬어야지’가 아닌
‘하... 할 게 많은데.
몸관리도 제대로 못하고 이게 뭐야.‘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자책감이 든다.
내 주변 사람이 아팠다면
당장 쉬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쳤을 테지만,
왠지 나에게만은 그 잣대가 엄격했다.
삼시 세끼를 꼬박 챙겨 먹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뜨끈한 방에서 자며 잘 지내고 있음에도
불청객처럼 찾아오는 감기에 왠지 억울했다.
병원에 가는 게 고역인 건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병원 가는 걸 싫어하는 이유는
지루한 대기시간, 특유의 병원 냄새, 소란스러움 등
많은 요소가 있지만
무엇보다 사방이 아픈 사람 천지라는 사실,
그걸 긴긴 대기시간 동안 지켜봐야 한다는 점.
한가한 병원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아플 땐 휴대폰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저 멍 때리며 앉아있다 보면
뭐 이렇게 떼로 아프나 싶을 정도로
언제나 병원은 병든 사람들로 붐빈다.
감기정도는 일상 속 흔한 질병이지만 그래도
왠지 아픈 사람이 이리 많다는 사실은 꽤 서글프다.
잔병치레라 해서 아프지 않은 건 아니니까.
누구나 약해질 때가 있다.
내겐 깁스를 밥 먹듯 하던 오랜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붙어 다녔던 그 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성인이 되고 나서도
잊을 만하면 깁스를 하고 나타났다.
두세 번 깁스를 한 뼈는 점점 더 약해지는지
남들이라면 대수롭지 않을 사소한 충격에도
그 애는 바로 깁스행이었다.
“야... 나 또 깁스했어... “
“어휴, 지겨워. 이리 줘.”
나는 매번 친구의 가방을 들어주었다.
한 번도 깁스를 해 본 적이 없어 그 불편함을
가늠할 순 없지만 매번 다쳐오는 친구가 안타까워
그 마음을 괜스레 툴툴대며 표현했다.
“넌 진짜 뼈가 무슨 종잇장으로 되어있냐?”
거센 타박에도
친구는 굴하지 않고 대답했다.
“ㅇㅇ 그런가 봐.”
이렇듯 매번 내게 신세를 졌던 친구지만
사실 내가 아플 때면
누구보다 걱정 어린 호들갑을 떨어주곤 한다.
멀리 살아 직접 챙겨주진 못해도
문자 속 소란스러운 글자 사이로
나지막이 적힌 마지막 한 줄에 꼭 위로를 받는다.
우정을 이어온 지 어느덧 13년이 넘은 지금,
장난스러운 말투 속 숨은
친구의 진심을 이제는 느낄 수 있다.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괜히 피식 웃음이 난다.
내가 남긴 다정함들이 뿌리내려 결국 어떤 형태든
다시 거두게 된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아플 땐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또 누군가의 케어도 받고 싶어진다.
아플 때 혼자인 게 얼마나 서러운지
겪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약해져 있을 땐
별 거 아닌 일에도 쉽게 흠집이 난다.
웃어넘길 만한 여유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소한 것에도
괜스레 마음이 말랑해지기도 한다.
힘들 때 허무맹랑한 ‘힘내’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아플 때 누군가 건네는 ‘아프지 마’라는 말은
한결 마음이 따뜻해진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둘 다 현재 상황이
딱히 바뀌는 게 없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그럼에도 왠지 그 말엔 애정이 깃든 것만 같다.
‘보고 싶어 ‘ , ’ 밥은 먹었어?‘, ’좀 더 자.‘
와 같은 말들이 ‘사랑해’의 다른 표현이라면
‘아프지 마’라는 말 역시
애정의 또 다른 형태로 내뱉어졌다.
“괜찮아요? 아프지 마요.”
“오늘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어.”
“먹고 싶은 거 말해봐. 그래야 빨리 낫지.”
몸이 편치 않은 내 곁으로
언제나 과분한 따스함들이 날아왔다.
언제나 그렇다.
대개 우리를 미소짓게 하는 건,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다.
나직하게 전한 진심 어린 걱정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눈빛들.
어쩌면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지도.
사소한 마음들이 모여 이룬 다정함은
한 사람을 일으키기에 언제나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