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오지랖

by YUN


오지랖 좀 부리고 사시는지.

나는 많이 참고 산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친 택배 아저씨의 수북한 짐을 나눠 들고 싶다던지, 버스에서 카드를 뒤지는 사람의 버스비를 무심한 척 대신 찍어주고 싶다던지, 편의점 진상 손님에 쩔쩔매는 알바생을 감싸주고 싶다던지 뭐 그런.


사실 때때로 못 참고 저지르기도 한다.

이게 다 엄마 때문이다.


피해줄 바엔 손해 보는 게 차라리 나은, 착해 빠진 엄마를 닮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게 살면 불행한 것 같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엄마를 닮았고 누군가를 돕는 것이 꽤 즐거운 사람이 되어버렸다.


착한 게 만만한 거라는 둥 순진한 거라는 둥 별의별 잡다한 말이 따라붙는다. 철저한 갑을관계의 모습을 지켜보며 자란 탓이었을까, 그 말이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내 편견으론, 착하다고 평이 붙는 사람은 대개 약한 사람들이었다. 착한 사람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지킬 줄 몰랐다.


나의 감정, 나의 욕구, 나의 삶.


그 생명은 자신들을 존중해주지도 않는 타인의 비위를맞추다 끄끝내 숨을 다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 혹은 ‘상대가 나를 미워할까 두려워서’ 이런 이유로, 자기주장도 제대로 말 못 하고 타인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 건 연약한 행위라고. 누군가의 기분을 맞춰주려 아양을 떠는 건 없어 보이는 거라고.


그렇게 어릴 적 자격지심처럼 남아있던 불신과 저항감으로 인해 나도 모르게 신경을 곤두세웠고, 행여 쉬워 보일까, 부탁을 해올 때면 어차피 해주고 말 일도 처음엔 괜스레 튕겨보곤 했다.




그랬던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점차 먼저 손을 내밀 줄 아는 여유가 생긴 것이다.


‘나를 쉬운 사람이라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섣부른 경계는 잠시 접어두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벗어나 이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먼저 내 것을 내어준다.


긴긴 시간과 그 속에서 마주한

좋은 사람들이 내 경계를 허물어 줬다.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레 느낀 건

세상엔 생각보다 따듯한 사람이 많고 그들은 받은 호의를 절대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그런 선의와 배려가 깃든 사람이 되는 것 역시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바른 자세보단 삐딱한 자세가 더 편한 법이며 나도 모르는 사이 자세는 흐트러져 있기 마련이다. 다정함은 그토록 오랜 시간 마음을 쏟아야 하는 일이었다.



난 어릴 적 비를 맞고 가던 이름 모를 이웃에게 달려가 우산을 씌워주던 엄마를 바라보며 다정을 배웠다. 가장 여렸고 가장 약하다고 생각했던 사람을 통해 오래도록 단단해지는 법을 배웠다.

서로를 향한 관심이 곧, 부담이고 짐이라지만

역시 오지랖은 필요하다.


관심받고 싶진 않지만 사랑에는 목마른 존재들로 복닥한 세상 속, 내 일처럼 나서주는 주책맞은 선의와

예상치 못한 호의는 존재해야만 한다.

그것이 살아볼 만한 세상을 만들기에.




세상엔 굳이 안 해도 되지만, 그럼에도 굳이 하고 나면 기분 좋은 행위가 있지 않은가?

매일 아침 출근길 항상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같은 버스를 타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내게 꾸벅 인사를 한다. 그럼 얼떨결에 나도 같이 인사를 한다.


버스를 탈 때도, 내릴 때도 그분은 늘 기사님께 인사를 한다. 어느샌가 기사님도 함께 인사를 하고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며 너도 나도 감사인사를 따라 전한다.


나 역시 큰소리는 아니지만 조용히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말해 본다.


“감사합니다...!”


버스를 내리는 그 짧은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온기가 퍼져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순간이 왠지 그리도 좋다.

그래서 오늘도 굳이 굳이, 작은 친절을 부려본다.


팍팍한 일상에 그런 다정함은

아무리 넘쳐흘러도 과하지 않을 것만 같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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