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1

다툼 일기

by 꼭두새벽

어쩌다 보니 애인과 냉전 중일 때에만 켜게 되는 글 창.

엊그제(3/6)는 새벽 4시에 출근해서 오후 9시가 다 되어 퇴근했다. 녹화가 있었다. 평소보다 말이 많던 연예인 패널들. 그중 생일을 맞이한 사람들을 위한 파티까지 준비했다. 새벽 출근 후 밤늦게까지(사실 9시면 그렇게 늦게는 아니지만) 근무하면 머리가 꼭 아프다. 타이레놀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몸이 너무 상할 것 같아 참았다. 그 대신 군것질을 많이 했다. 과자와 초콜릿. 밥도 많이 먹었다. 밥이라도 다 먹어야 버티지. 체중 관리 노노.


녹화가 본래는 3개였는데 녹화 전날 2개가 되어버렸다. 이런 경우가 너무 잦아서 무뎌지긴 했지만, 이것부터가 스트레스의 시작이긴 하다. 원인이 도대체 뭘까? 원인: 메인 PD의 집요함, 집요함에 걸맞는 예민함, 예민한 성격이 다 드러나는 배려 없는 말투, 그로 인해 마음 상하는 사람들, 이내 떠나버리는 사람들, 그 자리를 메우는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메인 PD의 집요함, 예민함... 그런 거다. 원인을 찾고 해결 방법을 마련하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완벽하게 적응해버렸다. 그래야 버틸 수 있다고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다음엔 이것에 대해 글을 써봐야겠다.)


새벽부터 달리고 노곤한 몸. 쉬고자 집으로 고고. 그러나 도착하자마자 경악했다. 오만가지 옷가지들이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원인: 애인은 아침에 차 키를 오랫동안 찾아 헤맸다. 어디에 두었는지 잊었고, 찾기 위해 온갖 옷들을 다 들쳤다. 그럴 이유가 있긴 했다. 블랙박스를 설치할 기사님이 주차장에 도착했고, 차를 열어주어야 했기 때문. 전날 청소도우미 앱을 통해 5만 원을 내고(내가 냄) 집을 말끔하게 해두었는데. 애써 개켜놓았던 옷들이 모조리 헝클어져 있었고, 버리려고 따로 빼놓은 옷들은 한데 섞여 그 구분이 무색해졌다.


우습게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난 그저 침대에 눕고 싶었을 뿐인데. 생각 없이 바로 자고 싶어서 여러 사람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이기적으로 퇴근한 건데. 정말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애인은 "그냥 침대 위 옷들을 바닥에 내려놓고 자라"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럴 힘이 없었던 것 같기도,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차 키 하나 찾자고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아도 되는 건가? 사과했으면 다야? (오전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총 두 차례 사과했으나, 전혀 와닿지 않았음.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애인이 사과할 당시 집이 어떤 꼴인지 이미지화 되지 않았음. 그땐 괜찮다고 했지만 집을 보고나선 전혀 괜찮지 않았음) 찾았으면 또 몰라, 결국 찾지도 못해 블랙박스 기사님은 허탕 쳤는데. 놀랍게도 나는 3분 만에 차 키를 찾았다. 그가 전날 입었을 것으로 예측되는 연두색 파타고니아 재킷 주머니를 만져 보았다.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결과적으로 나는 나가서 잤다. 집에서 못 자겠다고 전화로 말했을 때 그도 화가 나 있었다. 그는 "그래 나가서 자든지 말든지 맘대로 해" 라곤 끊어버렸다. 안마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샤워했다. 곧장 집을 나섰다. 그 이후에 지금까지 서로 연락 않는 중이다. 애인과 언젠가 헤어지는 날이 온다(?)면, 아마 이런 순간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배려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웠고 몸은 무거워졌다. 어제는 친구 집, 오늘은 본가로 간다. 친구에겐 구구절절 이야기했지만 엄마에겐 그냥 몸이 힘들어서...라고 했다. 엄마가 헛다리를 짚어가며 나를 걱정하고 있다. 그냥 모텔에서 잘 걸 그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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