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르트르 & 보부아르, 질투마저 이성으로 해부하려 했던 실존의 실험
"인간은 자유를 선고받았다."
이 문장은 단지 책갈피 속에 머무는 철학이 아니었다. 1929년 파리, 스물네 살의 장-폴 사르트르와 스물한 살의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인 '사랑'마저 실험대 위에 올렸다. 그들은 루브르 박물관 앞 벤치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기이하고도 오만한 2년짜리 연애 계약을 맺는다.
훗날 50년 넘게 이어질 이 지독한 계약의 핵심은 명료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필수적인 사랑(Amour Nécessaire)이다. 그러나 우연한 사랑(Amours Contingentes)도 허락한다. 단,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유한다."
이것은 부르주아적 도덕과 위선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역사의 이면을 파헤쳐 온 시선으로 이들의 행적을 복기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남녀의 치정극이 아니다. 기존의 체제와 관습을 거부하고, 스스로 신(神)이 되어 자신의 운명을 기획하려 했던 두 지식인의 처절한 투쟁기다.
명리학의 서늘한 칼날로 이들의 사주를 해부해 보자. 이들의 결합은 전형적인 '무관(無官)'과 '비견(比肩)'의 역동이다.
명리학에서 관(官)은 나를 다스리는 규칙, 국가, 그리고 전통적인 의미의 '결혼 제도(남편/아내의 역할)'를 뜻한다. 이 두 사람의 삶에는 이 '관성'이 철저히 거세되어 있었다. 관성이 없다는 것은 세속적인 평판이나 법적인 테두리에 영혼을 묶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결혼은 부르주아 사회가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기 위해 발명한 낡은 감옥에 불과했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를 '소유해야 할 재성(재물/아내)'으로 보지 않았다. 보부아르 역시 사르트르를 '섬겨야 할 관성(권력/남편)'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를 '비견(比肩)', 즉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나와 똑같은 또 다른 자아(Alter Ego)'로 인식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나르시시즘의 궁극적 확장이다. 사르트르는 보부아르라는 가장 예리한 비평가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완성했고, 보부아르는 사르트르를 통해 자신의 지적 우월성을 증명했다. 그들은 사랑이라는 이름표를 단 채, 실은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부하고 지적 주도권을 공동 소유하는 위대한 도반(道伴)의 길을 걸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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