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해탄에 가라앉은 사랑, 사의 찬미

윤심덕 & 김우진, 차가운 심연으로 투신한 1920년의 고독

by 덕원

바다는 검고 무거웠다. 1926년 8월 4일 새벽,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 덕수환(德壽丸)의 캄캄한 갑판 위. 순찰을 돌던 선원은 나란히 벗어둔 남녀의 구두 두 켤레를 발견했다. 구두의 주인은 이미 칠흑 같은 현해탄(玄海灘)의 심연 속으로 몸을 던진 후였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윤심덕, 그리고 천재 극작가 김우진. 서른 살 동갑내기 두 지식인의 동반 자살은 식민지 조선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전대미문의 스캔들이었다.


세상은 이들의 죽음을 두고 이룰 수 없는 불륜의 도피라며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역사의 부표를 걷어내고

그 아래 가라앉은 진실의 바닥을 짚어보면, 이것은 단순한 치정극이 아니다. 그것은 봉건의 잔재와 식민지의 폭력 속에서 질식해가던 두 근대적 자아가 선택한 가장 능동적인 절망이자, 지독한 실존적 항거였다.


1. 경계인(Marginal Man)의 비애, 근대적 자아와 봉건의 충돌


1920년대의 조선은 기형적인 시대였다. 서구의 근대 사상이 물밀듯이 쏟아져 들어왔으나,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가혹한 식민지이자 숨을 조이는 봉건제였다. 이 기막힌 시차(時差) 속에서 두 사람은 길을 잃은 '경계인'이었다.


김우진은 전라도 거부의 장남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니체와 마르크스, 서구의 근대 문학이 꿈틀거렸으나, 현실의 그는 가문의 재산을 지키고 조강지처를 건사하라는 아버지의 억압(가부장제)에 짓눌려 있었다. "이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의 희곡 속에 흐르는 처절한 번민은 곧 지식인의 숙명이었다.


윤심덕의 삶은 더욱 참혹했다. 그녀는 관비 유학생으로 도쿄 음악학교를 졸업한 최초의 소프라노라는 화려한 왕관을 썼지만, 그 왕관의 무게는 그녀의 목을 졸랐다. 무대 위의 찬사 뒤에는 굶주린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짐짝 같은 현실이 있었고, 대중은 그녀의 예술보다 그녀의 스캔들을 소비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화려한 '상품'으로 전락한 자아와 주체적인 삶을 갈망하는 내면의 극심한 괴리. 빅터 프랭클이 말한 '실존적 진공(Existential Vacuum)' 상태가 두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2. 수다목부(水多木浮)와 편인도식(偏印倒食)의 늪


이들의 비극적 궤적을 명리학의 서늘한 시선으로 파헤쳐 본다. 두 사람의 운명은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뿌리가 뽑혀버린 나무, 즉 '수다목부(水多木浮)'의 형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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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의 인문명리학입니다.. 저는 30년간 명리학계에 종사해온 베테랑으로서 명리학과 인문학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삶을 더욱 입체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을 진행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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