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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클리스트 Jul 05. 2022

Mom`s Call

30살 청년을 언제든 3살짜리 아이로 무장해제시킬 수 있는

평일 낮 무더운 여름, 바깥 외출을 다녀온 뒤 땀을 너무 많이 흘려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때 전화벨이 울린 건 엄마의 전화였다.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대화 주제는 식사 문제였다. 새로 이사 온 곳의 음식점 인프라가 좋지 못하다 보니 자주 배달의 민족을 주문하기 일쑤였고, 그걸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는 엄마는 배달음식 대신 햇반을 추천해주셨다. 근처 반찬가게에서 먹고 싶은 반찬 몇 개 고르고, 편의점에서 햇반만 사다 먹으면 생각보다 정말 간편하다는 것이었다. 


무언가를 시작할 때 괜히 마음속에 부담이 생기고, 시간을 질질 끌면서
뜸을 들이게 되는 일들이 있어. 막상 해보고 나면, 별거 아니었는데 말이야.
엄마도 그렇게 뜸을 들이게 되는 일들이 있더라.




의외였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라왔던 엄마는 매사에 빨리빨리 해결해버리는 스타일에 가까웠다. 오히려 내가 항상 늑장 부려서 야단을 맞았고. 엄마도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그렇게 빨리빨리 해결해버릴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것이었다.  


샤워하고 남은 물기를 수건으로 마저 닦고 얼른 노트북 앞에 앉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노트북 앞에 앉지 않을 수 없었고 오늘 일은 꼭 브런치에 기록하고 싶었다. 앞으로 남은 인생 살면서 괜히 겁먹고 마음이 부담스러워 뜸 들일 일들이 많을 텐데, 그때마다 오늘 에피소드를 떠올려 그 악순환의 늪으로 빠지지 않기 위함이다. 나 자신, 3년 전보다 훨씬 성장했음을 느끼는 나날들이다.     


그리고, 받을까 망설였던 엄마의 전화는 받길 잘했다. 최근 엄마와 통화할 때면 불쑥불쑥 감정이 복받쳐올라 목구멍에 지렁이 한 마리가 기어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몽글몽글.


엄마의 전화 한 통은 30살 먹은 청년도 언제든 3살짜리 아이로 무장해제시켜버릴 수 있는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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