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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클리스트 Jul 16. 2022

배민 심리

배달의 민족을 주문하게 되는 심리에 관하여

토요일 주말 오후. 시간은 5시 15분을 가리킨다.

누워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는 30살 청년의 고민은 이제부터 시작된다.


'저녁 사러 나가기 귀찮은데, 배달의 민족 주문할까?'

'지금 주문하고 나면 30분 정도 걸리니까, 기다리는 동안 저녁에 할 일을 미리 시작할까'

'지금 저녁 후다닥 먹고 남은 시간 바짝 집중해서 할 일을 마저 끝내야겠어.'

'그래, 오늘 오후까지 열심히 했으니까 주문 기다리는 시간 동안 누워서 조금 쉬자.'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빠르게 자기 합리화를 마친다. 머릿속에 천사와 악마가 잠시 싸우지만, 이미 악마의 손을 들어주기로 마음은 굳어졌다. 이럴 때 보면 결정을 참 잘하는 타입이다.

 



음식이 문 앞으로 배달되었다. 배달 기사님이 문 앞에 음식을 놓고 엘리베이터 내려가는 타이밍에 맞춰서, 호다닥 문을 열고 능숙한 자세로 음식을 픽업한다. 밥 먹을 때 자주 시청하는 무한도전 채널을 틀어놓고, 어느새 밥상 세팅이 완료되었다. 그렇게 30~40분 정도 TV를 보며 밥을 먹다가 마지막으로 탄산음료를 원샷한다. 이렇게 저녁 한 끼가 빠르게 해결되었다.


아까 음식 기다리는 30분 동안, 해야 할 일을 미리 시작하겠다는 계획은 지켜졌을까? 전혀 아니다.

밥 사러 나가는 30분을 배민 주문하는 대신 해야 할 일에 미리 투자하겠다는 당초의 계획은 잊힌 지 오래다. 그 시간 동안 계속 스마트폰만 갖고 유튜브 시청했다. 


당초 계획이 무산된 것은 차치하고, 밥 먹고 난 저녁 시간은 계획대로 알차게 보냈을까? 물론 아니다.

혼자서 배민을 폭식한 뒤 늘어진 위를 감당하지 못해 침대에 누워버렸다. 그렇게 10분만 더, 10분만 더, 딱 7시 정각에 시작해야지, 7시 30분에 진짜 일어나야지, 하다가 어느새 시간은 8시를 가리킨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정상인이라면 취침하기 전 2~3시간 만이라도 할 일을 하다가 자야 하는데, 갑자기 이상한 완벽주의가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은 그냥 놀고,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할까...'


이 생각이 드는 순간 그날 하루는 Game Over

마음속에 찝찝함과 왠지 모를 편안함이 뒤섞인 채로 하루를 마감하게 된다.




이 상황을 직접 겪어본 20, 30대 청년이라면 알 것이다. 굉장한 악순환이라는 것을.

이 찝찝함은 다음 날 정오까지도 지속된다. 어제 폭식하지 않고 할 일을 했었다면, 지금쯤 더 많이 진도가 나갔을 텐데. 무한도전을 보며 즐거운 식사 시간을 가졌던 건 기억도 안 난다. 

    

이렇게 화장실 들어가기 전과 나온 후가 너무나도 다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놀라운 건, 그날 오후 5시쯤 어제와 똑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다. 이미 배달의 민족 배민 1에서 어제와 다른 음식 메뉴들을 살펴보고 있다. 엄지 손가락으로 휙휙 위아래 넘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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