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에 속아 세로토닌을 잃지 말자
"아, 이민 와서 프랑스 파리에 살고 싶다."
프랑스 파리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인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서울과는 달랐던 파리의 매력에 빠져 파리에 대한 동경심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귀국하는 비행기를 기다리는 외국 공항에서는 비슷한 이민 욕구를 드러내는 사람들을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각자의 관점에서 좋았던 여행지가 프랑스 파리의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뉴욕, 런던, 로마, 싱가포르, 샌프란시스코 등.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이들이 해외 도시에서 매력을 느낀 이유를 병렬식으로 나열할 수 있다. 낯선 장소가 주는 호기심, 이 장소에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기대가 되는 흥분감, 다람쥐 쳇바퀴 같은 반복된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 그리고 무엇보다 관광객의 입장으로 여행지에 와서 돈을 쓰기만 하기에 자연스럽게 내면의 불안감은 해소되어 해외 도시에 매력을 느낀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해당 도시로 이민을 와서 관광객의 입장에서 외노자(외국인 노동자)로 신분이 바뀌게 되어도 위 감정들이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필자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그 감정은 3개월 유지된다고 예상한다. 아무리 길어봐야 6개월. 신체 호르몬 중 도파민이 우리의 뇌를 지배하는 적절한 예시라고 생각한다.
도시민으로 살아가기에 서울만 한 도시가 없음을 느낀 필자의 경험이 있다. 지난주 싱가포르 여행에서 저녁 식사를 하던 때였다. 종업원이 필자에게 식사 자리를 안내한 뒤 물이 필요하냐는 질문을 했다. 당연히 그렇다고 했다. 얼마 뒤 그 종업원은 물 한 병과 물티슈를 건네주었고, 함께 가져온 조그마한 계산서를 필자의 테이블에 끼웠다. 계산서를 들여다보니, 물 한 병과 물티슈에 각각 비용이 청구되었다. 사실 식당에서 제공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에 비용이 청구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물 한병의 가격이라고 생각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높은 싱가포르의 물가에 두 번 놀랐다. 필자의 글쓰기 모임 채팅방에 이 일화를 언급했더니, 다른 해외 도시들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는 멤버들의 증언(?)이 쏟아졌다. 한국에서 물과 밑반찬 리필, 그리고 물티슈를 무료로 제공하는 식당 자영업자의 입장에서는 비용일 테니, 식당 손님의 입장에서는 참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물과 물티슈 무료 제공만으로 서울이 좋은 도시라고는 절대 쉽게 단정 지을 수 없지만, 우리의 실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사소한 부분에서 소중함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대학에서 도시공학을 전공했다. 자연스럽게 여러 선진국들의 도시를 비교하는 케이스 스터디를 하게 되는데, 한국의 서울은 어느 도시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만큼 모범 사례로 꼽히고 있다. 매 년 수 백명의 개발도상국 공무원들이 한국의 경제 발전 역사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서울시를 방문하고 있고, 필자의 학교 교수님들과 미팅을 갖고 있다. 학교에서 외국 공무원으로 추정되는 어르신들을 마주칠 때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마치 우리 한글의 우수성처럼.
진부하고 상투적인 표현을 글에 담는 것을 선호하진 않는다. 그러나 해당 표현들이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쓰이는 이유는 필자의 메시지를 포장할만한 그 만한 표현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는 대중적인 클리쉐가 있다. 최근에 해외여행을 다녀온 도파민에 속아 서울의 세로토닌을 잃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