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간의 설 연휴 마지막 날에
수도 배관이 동파되었다. 몇 시간째 단 한 방울의 물도 나오지 않고 있다. 조금 전 오후 2시경, 물줄기가 조금씩 약해지면서 졸졸 흐르기 시작했을 때 이상함을 감지하고 즉시 관리 사무실 쪽에 연락을 취했어야 했다. 그러나 시간을 두고 기다리면 다시 정상화되겠지 하는 막연하고도 안일한 태도가 화를 불렀다. 화요일 현재 시각 오후 9시.
우리 집이 마치 모델하우스가 된 것 같은 기분으로 비유하면 적당하겠다. 다행히 보일러와 전기는 나오고 있어 참 다행이다. 전기만 들어오고 있는 자취방 안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있다. 때마침 참신한 글쓰기 소재를 고민하던 중, 이렇게 자연스럽게 글감이 굴러들어 올 줄이야. 한편으론 감사하면서도 물이 안 나오는 불편한 상황이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니, 주변의 소소하고도 감사한 점들이 하나둘씩 생각이 난다.
물이 안 나오기 시작한 화요일이 다행히 연휴의 마지막날이라, 내일이면 해빙 업체가 정상 출근함에,
서울이라서 인프라 관리 업체의 빠른 조치가 가능함에,
며칠간 가득 쌓인 빨래를 다행히 어젯밤에 해두어 갈아입을 속옷이 있음에,
전기와 보일러는 고장 나지 않아 따뜻한 방 안에서 조용히 글을 쓸 수 있음에,
자가격리 중이 아니라서 공기가 답답할 때 자유롭게 외출할 수 있음에,
무엇보다도 몸에 부상당한 곳 없이 건강하게 숨 쉴 수 있음에,
참으로 감사한 일들 한 가득이다.
이런 일을 겪는 게 8년 차 자취 인생 처음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크게 당황할 일이 아니라서 그런 것인가, 아니면 내가 그만큼 담담하게 받아들일 만큼 성장한 덕분일까. 어찌 됐든 담담한 마음으로 해빙 업체의 작업 경과를 기다리고 있다. 집에서 물이 나오는 게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고, 그동안 사소하게 생각해서인지 그 상실감이 훨씬 크게 다가온다. 최근 학계에서도 가장 화두가 되고 있는 기후변화의 심각성까지도 인지하게 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소중한 경험을 하고 있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2박 3일간의 해빙 업체의 작업이 완료되면 여유로운 마음으로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시청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