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차 신상 에그 볼

by 유목민


에그 볼을 샀다. 의외로 '이게 뭐냐고?' 묻는 이가 많다. 말 그대로 '에그(계란) 볼(그릇)'이다. 이걸 어디에 쓰냐고? 삶은 계란을 먹을 때 필수품이다. 뜨거운 계란을 손으로 잡지 않아도 되고, 특히 나처럼 반숙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필수품이다.




하나의 물건은 또 다른 물건을 부른다.


지난 연말 직원 단합대회에서 재미로 선물교환을 했다. 코로나로 모임도, 식사도 자유롭지 않은 시기라 어딜 갈 수도 없어 인근 문화시설(같은 재단 소속) 방문으로 대체를 했는데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이벤트 차원였다. 각자 받고 싶거나 주고 싶은 선물을 골라 제비뽑기로 가져가는 방식이었다. 하필 짓궂은 직원이 재미를 위해 담았던 히피 가발을 내가 뽑았고 불쌍하다며 우리 서무가 대신 나에게 계란찜기를 챙겨줬다.

그렇게 나에게 온 계란찜기는 늘 시간 조절, 불 조절을 못해 반숙에 실패하는 나에게는 신박한 물건이었다. 신나게 아침마다 삶은 계란으로 식사를 대신했는데 그때 에그 볼이 간절했다. 작은 찻잔이나 술잔 등을 대신 써보기도 했는데 위로 올라갈수록 퍼지는 형태의 찻잔은 계란이 바로 설 수 없어 늘 삐딱해진다. 그러니 반숙 상태의 계란을 먹자면 흐르기 일쑤. 안 되겠다 싶어 구입하려고 검색을 해 보니 요 쪼그마한 게 얼마나 비싼지 가족 수대로 사려고 보니 만만치 않은 가격이라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계란 반숙 먹는 재미도 시들해져 계란찜기는 장식장 안으로 들어갔다.




다이어트는 평생 해야 한다.


바야흐로 봄이 아닌가. 코로나로 확찐자가 되었으니 다이어트의 계절이 돌아왔다. 고이 모셔뒀던 계란찜기를 사무실로 가져왔다. 다이어트에 단백질을 보충해줄 삶은 계란만큼 좋은 게 없다. 오이, 당근, 양배추 등과 함께 삶은 계란 2-3개, 커피 한 잔은 훌륭한 점심이 된다. 공복으로 출근해서 아침에도 계란 하나, 퇴근 전에도 계란 1-2개면 집에 가서 늦은 저녁을 먹을 필요도 없다. 이렇다 보니 다시 슬슬 에그 볼 생각이 간절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검색을 했는데 이게 웬일. 가까운 곳에 사는 사람이 웨지우드 에그 볼 2개에 25,000원을 올려놨다. 사실은 2,345원 낚시에 걸린 거지만. 퇴근길 전철역에서 받으면 좋겠다 싶어 "퇴근시간 ㅇㅇ 역에서 직거래 가능할까요?" 문자를 보냈더니 전화를 달란다. 그리곤 상의 끝에 시간 맞추기 어려우니 판매자가 직배송까지 해주게 된 것. 엉겁결에 그리도 그리던 에그 볼을 갖게 됐다. 물론 그 사람은 '에그 볼 5개를 가지고 있다'며 사진까지 보내줬지만 나는 집에서 한 개, 사무실에서 한 개면 충분하다며 기특하게도 이번엔 충동구매의 늪에 빠지지도 않았다. 뭐 우리 가족 중에 나처럼 삶은 계란을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솔직히 가격도 부담이니.. 오래간만에 꽤 똑똑한 소비를 한 셈.




MZ세대가 별 건가


무엇이든 공유를 좋아하는 나는 직원들에게 한바탕 자랑을 늘어놓았다. 에그 볼의 존재를 아는 이는 반 정도. 디자인까지 예쁘니 '분위기 있게 계란을 먹을 수 있게 됐다', '별걸 다 산다'는 차마 내뱉지 못하는 속마음까지... 그중에서도 우리 도서관 아이디어맨 인 예민이가 'N차 신상이네요? 중고몰을 잘 이용하시네요.' 한다.


지난번 짐벌도 그렇고, 직원들 사이 자체 당근도 그렇고, 중고 물건들을 잘 사는 편이다. 필요하긴 한데 선뜻 안 사지는 것들을 주로 산다. 가습기, 실내용 자전거, 욕실용 수납장, 보드까지 N차 신상을 즐긴다. 와플메이커도 알람을 켜놓고 오래 기다렸는데 좋은 물건이 나오기 무섭게 '판매 완료'가 뜨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새것으로 구입했다. 내게 오기까지 몇 명을 거쳤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고유의 기능이 아직 작동되고 있다면 오케이. 문제는 아직 판매 경험은 없다는 것. 한번 들인 물건들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저럴 때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 그렇게 처박혀 있는 각종 물건들이 산더미다. 커피머신만 해도 캡슐머신까지 화려한 변천사를 거쳤다. 오매불망 코로나 시대 필수품이라며 이웃동네까지 원정 가 사 온 실내용 자전거는 마스크 걸이로 사용하고 있다.


그러면 어떠랴. 소비라는 것도 결국 내가 행복해지는 비결이 아닐까. 그 순간 내가 행복했다면 되는 것이지. 더구나 각각의 물건들은 나름의 추억과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런 이유로 나는 외국영화를 볼 때마다 넓은 다락방과 창고가 있는 집들이 너무 부럽다. 거미줄과 먼지 가득한 다락방에서 자신은 물론 선대의 옛 추억을 발굴하는 재미가 얼마나 좋을까. 무료한 일상에, 때로는 그만 살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라도 그런 물건들이 주는 이야기에 빠지게 되면 또 한동안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




에그 볼이 내게 얼마나 값지게 쓰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다만 내가 그토록 갖고 싶었던 물건을 비로소 소유하게 됐다는 기쁨이면 그 소용을 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나는 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지 않은가. 모두 내게 와 준 에그 볼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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