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를 내고 고딩딸과 제주에 다녀왔다. 일 년에 한 번 여름휴가 시즌이 아니고는 3박 4일의 긴 여행은 내게 호사다. 세월호 사건 이후 침체된 국내 경기 활성화 차원으로 대대적인 관광주간 권장으로 6년 전 다녀왔던 여행 이후 딸만 동행한 두 번째 둘만의 시간였다. 원격수업이라 노트북을 싸들고 갔지만 2배속으로 플레이만 시켰다. 아이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잠이 유난히 많은가 했는데 우울증 증세 중 하나라고 한다. 무기력증을 호소해 다니던 학원들도 잠시 쉬기로 했다.
"아이를 혼자 두지 마세요!!!"
상담 선생님은 아이가 자살충동을 자주 느끼고 실제로 시도도 해봤다고 전했다. 어렴풋한 염려를 확인한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딸애는 어릴 때부터 유난히 친구 문제로 부침이 많았다. 어린이집서도 쎈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더니 초등 6학년 때 독감으로 결석을 하던 시기에 결국 사달이 났다. 항상 다섯 녀석이 어울려 다녔는데 딸애가 빠진 틈에 하필 프로젝트팀을 구성하면서 딸애를 쏙 빼고 그즈음 어울리기 시작한 다른 아이를 넣은 것. 늘 패거리에는 쎈 아이가 있기 마련인데 그 아이가 의견을 내니 아무도 반대를 못했다고 한다. 가장 친했던 친구들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한 딸애는 남은 6학년 기간 내내 겉돌았고, 그 친구들과 같은 중학교에 배정되고 중학교 1학년 중반까지도 학교생활을 힘들어했다.
그러다 새 친구들이 생겼고 중학교 시절을 잘 마무리 하나 싶었는데 3학년 2학기에 또 일이 터졌다. 한창 밤낮으로 붙어 다니는 친구가 있었는데 또 다른 친한 친구가 손절을 선언하면서 그 친구까지도 빼앗아갔다. 먼저 손절한 친구도 우리 집에 자주 오가던 아이였는데 아이답지 않은 아줌마스러움을 풍겨 내가 이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아이 중 하나였다. 그런데 딸애의 외모 타령이 신물 난다며 손절을 선언했다.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딸의 외모는 꽤 괜찮은 편이다. 어릴 때부터 이쁘다 소리만 들어서인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여기가 이랬으면 좋겠다. 저기가 저랬으면 좋겠다"며 외모에 대한 관심만큼이나 불만도 커졌다. 나도 듣기 싫은 소리를 그 앤 오죽했을까 싶다가도 친구 사이에 손절이라니 내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그때부터였을까? 친구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졌다. 패거리들 중에서도 특히 친한 단짝 친구에 대한 집착이 컸던 딸애는 친구에 대한 기대감이나 절친 없이 중3 마지막 겨울방학 내내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상담 얘기가 처음 나온 건 그때였다. 아이가 먼저 상담을 받고 싶다 했다. 남자 선생님이어서 그랬는지 한번 다녀오더니 가지 않겠다 했다. 마땅히 좋은 상담기관을 찾지 못하고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고등학생이 됐고, 코로나로 지난 1년 학교도 몇 번 가지 못한 채 집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낮밤이 바뀌어 보통 오후 2,3시까지 잠을 잤다. 자도 너무 잔다 싶었지만 늦게 자서 그런가 했다. 그게 우울증 증세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미술학원 친구 몇몇을 만나는가 싶더니 남자 친구가 생긴 눈치다. 학교도 가지 못하니 친구를 사귈 기회도 없고, 몇몇 동네 친구들을 드문드문 만났다.
그러다 남자 친구가 생기면서 다른 세상을 만난 듯하다. 오로지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예쁘다. 예쁘다." 하니 좋기도 했겠지. 그러나 그 만남도 오래 가질 못했다. 다가온 것도, 이별통보도 남자애들이 먼저였다. 딸애 성격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었다. 양아치였던 첫 남자 친구는 양아치라서 좋다는 표시도 못하고, 좋아하지 않으려고 노력도 했단다. 막상 끝나고 나니 슬프더란다. 두 번째 남자 친구는 그나마 친구들만 양아치였단다. 그 차이는 모르겠다. 여자관계를 의심하는 딸애에게 지쳐 울면서 이별을 통보했단다. '이제는 너 스스로 지켜야 한다'라고 했단다. 딸애는 밥도 안 먹고 토할 정도로 울기만 하더니 장문의 편지까지 써서 다시 만날 것을 간절하게 요청했으나 2주간의 긴긴 고민 끝에 그 애도 가버렸다.
그 애 대답을 기다리면서 어이없는 일이 있었는데 만나서 대답을 듣고 오겠다는 아이가 12시가 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전화 연결도 안 됐다. 딸애 통금은 밤 10시다. 그날은 예외적으로 대답 듣고 오라고 허락하고, 11시가 넘어서는 그만 들어오라는 문자를 수없이 보냈었다. 불안한 마음에 아들과 함께 딸애를 찾아 나섰다. 카페도 끝난 시간이고, 놀이터라고 했으니 갈만한 곳은 한 군데밖에 없었다. 그리곤 내 눈을 의심했다. 소주병이 보였다. 게다가 바로 옆에 고등학생인지 모를 남자애들이 욕지거리를 하며 무리 지어 있었다. 나도 그 순간 무식한 엄마로 빙의했다. 딸애 머리채를 움켜쥐고 끌어냈다. 술냄새가 풍기는 딸애는 이미 눈이 풀려 있었다. 세상에 내가 살다 살다 이런 꼴을 보다니 억장이 무너져 내렸다. 정신을 잃고 딸애를 패기 시작했는데 아들이 말려 겨우 멈췄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TV 속에 나오던 흔한 그 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생각도 못했던 임신이었지만 딸이라는 말에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하는 짓도 남달랐다.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딸 덕분에 10년 너무게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밤마다 보드라운 살을 맞대고 자는 것도, 주말마다 아이와 도서관, 미술관을 다니는 것도 넘 좋았다. 연필을 쥐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애는 미술영재였다. 책을 유난히 좋아해 시장상을 받기도 했다. 아이가 크고 나면 함께 백화점을 다니며 같이 쇼핑도 하고, 수다를 떨어야지 하는 생각에 늘 친구처럼 좋았다.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다. 그래도 아이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여행 기간 내내 십 대 딸 연애상담을 해줬다. 꿈도, 희망도, 미래도 사라진 지금 딸에게 그 애는 우주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