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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도서관에서는 무슨 일이?

수많은 책들의 잠을 방해하는 이들

by 유목민

"밤이 되면 분위기가 바뀐다. 소리는 줄어들고, 생각의 아우성은 더 높아간다. 발터 베냐민이 헤겔을 인용해서 말했듯이 "어둑한 밤이 되어야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날개를 편다"지 않는가. 시간이 깨어 있는 상태와 잠든 상태의 중간쯤에 가까워지면, 나는 편안하게 세상을 다시 상상할 수 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도둑처럼 움직이게 되고, 내 움직임을 비밀스럽게 느껴진다. 어느덧 나는 유령 같은 존재로 변한다. 책들이 바야흐로 진정한 존재를 드러내고, 독자인 나는 희미하게 보이는 문자들의 신비로운 의식을 통해 어떤 책이나 어떤 페이지에 유혹을 받아 끌려들어 간다.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세종서적, p.21)


알베르토 망구엘의 '밤의 도서관'은 도서관에 대한 환상열차와도 같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책들과 나와의 만남. 하루키 소설에서도 종종 등장하는 도서관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신비한 존재다. 나는 늘 밤의 도서관을 꿈꾸곤 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이하 국립도서관)에서 첫 당직을 서던 밤을 잊을 수 없다. 내 꿈이 현실이 되는 날이었기에 설렘 가득한 발걸음으로 야간순찰에 나섰다. 그러나 순찰은 주로 사무실 공간만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자료실은 플래시로 쓱 한번 훑어버리면 끝이었다. 더구나 천만 장서가 잠자는 지하 보존서고는 순찰 대상이 아니었다. 와장창, 꿈은 깨져 버렸지만 야간 당직실에서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의식이 있다. 1층 서고자료신청대(지금은 공간 개선으로 열린마당으로 바뀌었다)에 비치된 사서추천도서들을 잔뜩 가져다가 보는 것이다. 도서관 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평소 읽고 싶었던 책들을 모조리 읽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일반 공공도서관과 달리 국립도서관은 관외대출을 해주지 않는다. 일반 이용자뿐 아니라 직원들도 업무용 외에는 쉽사리 책을 빌릴 수 없다. 납본도서관인 국립도서관의 사서추천도서는 양서로 명망이 높다. 종종 출판사들이 개정판을 낼 때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도서'라는 띠지를 두를 정도로 이른바 업계에서는 입증된 책이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책은 2~3주 안에 국립도서관으로 납본이 된다. 하루에도 몇백 권, 한 달이면 수천 권에 달하는 책 중에서 사서들이 직접 읽고 고른 책이라는 면에서 언론사 기자들도 인정하는 특별함이 있다. 납본은 국가 장서로 등록이 되기 위한 절차다. 한 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책만 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인류 문명이 멸망해도 도서관만 남아 있다면 다시 재건할 수 있다'는 말이 있을까.




"도서 목록으로 정리된 질서는 밤이면 관례에 불과하다. 그런 질서는 그림자 안에서 어떤 권위도 누리지 못한다. 이 도서관은 나만의 것이라 절대적인 도서 목록이 없지만, 저자 이름의 알파벳순에 따른 정리나 언어별 분류 등과 같은 최소한의 질서마저도 그 힘을 잃는다. 늦은 시간에는 일상의 제약이 무시되는 법! 따라서 밤이면 내 눈과 손은 일상적인 제약에서 벗어나, 깔끔한 선반에서 두서없이 움직이며 무질서를 회복한다. 어떤 책을 보다가 갑자기 다른 책을 떠올리며, 다른 문화와 다른 세계를 잇는 관련성을 찾아낸다. 낮에는 명확하지 않은 이유로 절반만 기억나던 구절이, 역시 절반만 기억나는 다른 구절에 의해 되살아난다. 아침의 도서관이 세상의 질서를 엄격하게 지키고 이를 또한 당연히 바라는 공간이라면, 밤의 도서관은 세상의 본질로 흥미진진한 혼란을 즐기는 듯하다." (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세종서적, p.22)


그렇게 만난 수많은 책들이 내게는 내면을 치유하는 가장 큰 힘이 됐다. 낮 동안의 피로도, 더구나 집을 떠나 오로지 나만의 시간을 갖는 그 순간이 더없이 소중했다. 밤은 묘한 편안함과 신비감이 어우러져 내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게 한다. 때로 내가 꿈꾸는 세상에 가 있게 하고, 내가 만나고 싶었던 이에게로 안내하며, 싫었던 나의 모습조차 딱 맞는 책을 만나면 미래로 가는 길목에서 잠시 어쩔 수 없는 시련을 겪는 캐릭터처럼 느껴져 너그러운 마음을 갖게 한다. 밤이 주는 적막함, 그리고 수많은 이들의 삶과 지성이 모두 담긴 책들이 고요히 잠든 곳을 지키는 그 신성함이라니... 밤의 도서관을 지키는 일은 고요한 책과의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도서관에 들러 잠시 주차만 하고 볼 일을 보러 간 사람이 폐관 시간이 훨씬 넘은 시간에 돌아와 당당하게 차를 빼줄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때로는 술 취한 이의 횡성수설 전화를 받는 경우도 있다. 드문 일이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를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는다. 지역 도서관에 대한 불만을 국립도서관에 쏟아놓기도 한다. '도서관의 도서관'이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 아니냐며... 국립도서관을 이용하는 다양한 이용자들의 분실물이나 문의들이 유난히 많이 이어지는 밤이면 책 읽기를 포기해야 한다. 어떤 날은 한통의 전화도 걸려오지 않을 때도 있다. 운 좋은 날이다. 어디든 그렇듯이 당직자에게만 전해지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어느 층 어느 화장실에서...로 시작되는 이야기들이다. 만약을 위해 나 또한 비밀을 지켜야 한다. 특히 2층 장애인 화장실 이야기는 한동안 당직실에서 화장실 가는 일을 공포스럽게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당직실 안에 화장실이 없었다. 바로 앞 남자 화장실을 지나 맞은편 여자 화장실까지 10m 남짓한 컴컴한 복도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성인용 기저귀라도 챙겨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할 정도였다. 이런저런 변화를 거쳐 이제 밤의 도서관을 지키는 일은 전문 경비 인력 고유의 일이 되었다. 나 역시 국립도서관을 떠나왔으니 추억 속의 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밤의 도서관'을 떠올리면 첫날밤 당직의 설렘이 떠오른다.




"카네기는 자신의 돈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만들어가려는 노력'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바람이 실제로 무엇이었든 간에, 수많은 독서가에서 카네기 도서관들은 이기적인 욕심이나 헌신적인 희생의 증거만은 아니었다. 백만장자의 관대한 마음을 증명해주는 곳도 아니었다. 그곳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지식의 요람이었다. 글을 읽을 줄 아는 시민이라면 누구에게라도 '악마와 싸우는 데 필요한' 힘을 키우는 기본권이 허락된 곳이었다."(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세종서적, p.115)


코로나로 도서관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자료실 및 이용자용 데스크, 열람실 등 어디든 가림막이 설치돼 있다. 마스크까지 끼고 있으니 대화를 나누는 것도 쉽지 않다. 도서관 이용방법 등 이용자의 이런저런 질문에 답하는 것은 중요한 도서관의 정보서비스에 해당한다. 그러나 가림막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알아들을 수 없어 자꾸 가림막이 없는 가장자리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드라마에서 본 교도소 면회실처럼 마이크와 스피커를 설치해야 하나 싶을 정도로 도서관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이 어려워졌다. 도서관에 들어올 때도 어디든 그렇듯이 발열체크와 QR 체크인이 기본이다. 이제는 웬만하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체온계 앞에 선다. 건강에 대한 관심과 염려도 많아져서 손 소독제도 분사용으로 접촉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안심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든 항균 시트를 부착했는데 최근에는 '구리 바이러스 차단 항균 손잡이 커버'까지 등장했다. 수시로 소독약을 뿌리고 닦는 일이 미화원들의 일상이 되었다. 밤의 도서관도 예외는 아니다. 코로나로 이용시간이 짧아져 낮 동안의 소란함을 뒤로 한채 깊은 잠에 빠질 시간, 도서관은 다시 깨어난다. 코로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되어버린 일을 수행해야 할 시간이다. 뿌연 연무와 비릿한 냄새, 소음을 동반한다. 다름 아닌 방역작업이다.



예산이 빠듯한 지역의 공공도서관에서는 매일 방역업체를 활용한 소독은 사실상 어렵다. 휴관일과 주말을 제외한 평일 저녁 늘상 소독을 하다 보니 시설 인력으로만 감당이 안 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 상황에서 특정 직원들에게만 짐을 지울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매달, 전 직원이 조를 짜서 투입된다. 3인 1조 시스템. 조를 짤 때도 구글 시트를 이용해 자신이 원하는 요일과 날짜에 지원하기 위해 미리 오픈을 공지하고, 정시에 단톡방에 올리는 방식이다. 마감까지 30초도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시트가 채워진다. 맨 앞에서 남자 직원이 소독기를 들고 분사하면, 중간에서 전깃줄을 끌고 다니며 동선이 꼬이지 않도록 보조한다. 가정에서도 요즘은 무선 청소기를 대부분 쓰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나마 동주민센터에서 대여해준 유선 소독기를 사용하고 있다. 서가 사이사이, 책상과 의자 구석구석, 사람의 손길과 발길이 닿은 곳이면 어디든 분사형 스프레이로 소독제를 뿌려댄다. 가끔은 책들이 얼마나 숨이 막힐까. 조심을 하더라도 책까지 소독약이 뿌려질 텐데 그만큼 책의 수명도 줄겠다 싶다. 낮에는 책 소독기 안에서 뺑뺑이를 돌고, 서가에서도 매일 밤 소독약에 노출되니 책들이 얼마나 버텨낼까 염려된다. 나머지 한 사람은 열쇠를 갖고 다니며 실마다 열었다, 잠갔다, 불을 켰다, 껐다를 반복하며 빠른 시간 안에 진행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90년대생이 대부분인 직원들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칼퇴를 보장하려면 어쩔 수 없다. 구청에서는 단축 운영을 이유로 보조인력의 채용을 계속 늦추고 있다. 그러나 발열체크 인력 상시 배치와 비대면 서비스로 전환한 프로그램들은 기획부터 운영의 모든 과정 과정마다 품이 훨씬 더 많이 든다. 지역의 공공도서관 주 이용층이 50대 이상이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울린 햄버거집 키오스크'가 도서관에서는 일상이다. 가입부터 이용까지 모든 것이 디지털화된 도서관에서 어르신들은 갈 바를 몰라 헤맨다. 도서관에 오기만 하면 들을 수 있었던 문화강좌도 온라인 화상회의 앱을 이용하니 매주 똑같은 설명을 되풀이해야 한다. 그나마 수강을 이어가는 어르신들은 대단하다. 결국 중도 포기하는 수강생도 있다.




"밤의 도서관에 앉아 책을 넘길 때면, 나는 살갗의 죽은 층이 조금씩 끊임없이 벗겨져 그 먼지가 전등 불빛에 산란하는 걸 물 끄러니 지켜본다. 또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는 날 도서관이 나와 함께 산산이 무너져서, 죽은 후에도 내가 책과 함께 있는 모습을 곧잘 상상해보곤 한다."(알베르토 망구엘, 밤의 도서관, 세종서적, p.45)


코로나 시대에도 여전히 각각의 사연을 담은 책들은 날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새롭게 만난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힘을 주고, 지식을 채워준다. 비록 밤의 도서관에서 누리던 평화의 시간은 절대적으로 줄었지만 재앙을 초래한 사람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뿌려대는 소독약으로 예전보다 오래된 책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향기는 사라졌지만 책이 갖고 있는 물성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길에 의해 닳아지고, 낱장이 떨어지고, 표지가 뜯겨나가도 어느 한순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한 최후를 맞게 되겠지. 나 역시 책처럼 누군가를 위로하고, 성장하도록 돕는 도서관의 일원이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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