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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가족

반려견 두부를 통해 도그 테라피(Dog Therapy)를 만나다

by 유목민


내가 이럴 줄 몰랐다. 강아지를 안고 다니는 강남의 유한마담이 되다니... 아기도 아닌데 포대기에 안고 다니는 그동안 꼴사납게 여겼던 할 일 없어 보였던 치들에 내가 합류하게 되다니...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며, 모임 내내 강아지 얘기를 하던 사람들을 얼마나 한심하게 여겼던가. 그런데 지금 내가 그러고 있다. 그리고 가족이라 말하고 있다. 3.5kg짜리 털 뭉치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밤마다 그 생명체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행복한 잠에 빠져 든다.


두부가 우리 집에 온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정말 오랜 시간 고민했다. 강아지는 모름지기 집 밖에서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 확실했다. 집을 지키는 문지기 정도로 여기며 시간이 지나면 가족의 건강을 위해 자신의 몸까지 온전히 바치는(온전히 하나가 되는) 초여름 의식까지 그 의무를 다하는 존재라고만 여겼었다. 내 고향마을에서는 여름은 말할 것도 없고 사계절 내내 잔칫날 국거리는 늘 보신탕이 최고로 손꼽힌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어서 초여름부터 더위가 끝날 때까지 두세 마리는 기본이었다. 결혼 초기 부모님이 고향에 계실 때에는 개를 잡는 날이면 늘 다리 한두 짝은 택배로 보내주시니 냉동실에 두고 여름 보양식으로 챙겨 먹곤 했다. 집 된장만 있으면 뚝딱 끓여내는 보신탕 덕분에 대단한 요리 솜씨를 지닌 줄 주변에서 착각할 정도였다. 오죽하면 아들이 일곱 살쯤 됐을 때로 기억되는데 우리 집 현관문을 열기만 해도 앞집 개가 하도 짖어대니 "확 잡아먹을까 보다" 말하는 통에 식겁한 앞이 있다. 둘째 출산을 앞두고도 부서에서 당연한 듯 보신탕 집을 회식 장소로 정했었다. 그간 보신탕은 우리 집 대표 건강지킴이였던 셈이다.


이번 여름부터는 보신탕과는 영영 이별을 해야 할 모양이다.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먹어왔던 터라 거부감이 없던 아이들은 물론이고 '늦게 배운 도둑질에 밤새는 줄 모른다'라고 결혼 후 보신탕 맛에 푹 빠졌던 남편조차 두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 역시 꺼림칙하기는 마찬가지. 10년 넘게 같이 살아왔던 친정 부모님이 3년 새 돌아가시고 나니 더더욱 보신탕은 거리가 멀어졌다. 고향을 떠나고도 더위가 시작될 즈음이나 식구들의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다 싶으면 단골 정육점에 부탁해 개고기를 공수해오던 친정엄마가 안 계시니 자연스럽게 보신탕과의 인연도 이제는 끝이다. 더더군다나 요즘 사회 분위기 탓에 보신탕 집을 찾기도 쉽지 않다. 물론 집에서 먹는 보신탕 맛을 내는 음식점도 없다. 오죽하면 은퇴 후 우리 집 근처로 이사를 오신 친정엄마와 진심 반 농담 반으로 '보신탕 집을 내볼까?' 소리도 했었다. 이제 모두 시절 좋은 옛이야기가 된 셈이지만...


300g도 안 되던 꼬꼬마가 3.5kg에 달하는 9개월 성견이 되었다. 많은 고민 끝에 데려왔지만 이제는 엄연한 가족이다. 30년 가까이했던 직장생활도 접고, 지난해 11월 친정엄마가 하늘나라에 가신 후 두부가 없었다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딸램의 우울증 때문에 내린 결단이었으나 정작 최대 수혜자는 나였던 셈. 물론 딸램은 물론이고 가족 모두에게 두부는 이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외출하고 돌아오거나, 아침에 눈을 뜨면 식구마다 가장 먼저 두부를 찾는다. 가족끼리 가장 많이 나누는 대화도 두부 이야기다. 아니 정확히는 두부 덕분에 가족 간 대화가 많아진 거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이제는 많이 좋아졌지만 애초의 목적이 그러했던 '두부 주인'인 딸램이 감정조절로 어려울 때도 윤활유 역할을 톡톡히 한다. 딸램이 다른 사람은 다 밀어내도 두부만큼은 함부로 밀어내지 못하는 덕분이다. 딸램의 눈물을 핥아주는 것도 두부다. 집안의 이상한 기류를 느끼는지 슬금슬금 행동이 조심스러워지면서도 아예 멀찌감치 도망치는 일은 없다. 여전히 곁을 지켜주니 고마운 존재다. 아무리 화가 나고 우울해도 조그만 털 뭉치의 애절한 눈빛을 밀어낼 도리가 없다.


우리 삶을 바꾼 작지만 큰 존재. 지금 이 순간도 내 곁을 지키는 소중한 존재로 인해 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미국 인디애나주 먼로카운티의 작은 마을 앨리츠빌 공공도서관에서는 매달 첫째 주 토요일 개에게 책을 읽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개에게 책을 읽어주면 다른 사람 앞에서 책을 읽을 때의 두려움이 사라지고, 읽기 훈련과 함께 자존감을 키우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일할 때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싶었다. 막상 해보려니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안되어 있어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자니 늘 그렇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아 포기했었다. 도그 테라피(Dog Therapy)는 펫 테라피(Pet Therapy)의 일종으로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영국, 호주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이미 많이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병원, 양로원, 요양원, 학교, 도서관, 호스피스 및 재난 지역에서 훈련된 개들(Therapy Dogs)이 사람들에게 편안함과 애정을 주는 방법으로 치료를 위해 활용되고 있다. 외국처럼 전문적인 훈련기관이나 인증 시스템 마련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반려 인구 1000만 시대, 반려인들을 위한 공약까지 등장하는 세상이고 보면 우리에게도 멀지 않은 미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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