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뭐죠?
나는 국문과에 재학 중이다. 우리 과는 국문과답게 매년 문집을 만드는데 당연히 그 안에 들어가는 작품들은 학생들의 작품이다. 1학년은 필수로 모두 제출해야 했는데, 안 그래도 제출하고 싶었던 나는 잘됐다 싶었다. 난생처음 내가 쓴 시를 남들에게 보여주다 보니 긴장되면서도 기대되기도 했다. 내가 쓴 시를 남들은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했던 것이다.(물론 나는 시라는 걸 전혀 모르고 막 쓴다.) 더군다나 교수님들이 심사해서 장학금도 준다!
하지만 내 시는 수상하지 못했다. 사실 당연한 일이다. 국문과에 온 만큼 글을 잘 쓰는 학생들은 많았고 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물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아쉬웠다. 그다음에 든 생각은 ‘내 시는 뭘 고쳐야 할까?’였다. 어떤 부분 부족하고 뭐가 문제인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수님, 방학 때 뵐 수 있을까요..?
내가 이 말을 했을 때 교수님의 표정이 아직도 기억난다. 당황한 표정이 역력하시면서도 내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얼마든지!‘라고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도 교수님을 찾아가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다만 찾아 뵐 이유가 있었기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내 시에 대해 조언을 얻으려고 한다는 이유는 사실 핑계에 가깝다.
대학시절부터 교수님들과 친하게 지내서 졸업하고도 찾아뵙는 친구를 본 적이 있는데 그게 부러웠고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시는 핑계였던 것 같다. 그렇게 찾아간 교수님의 연구실은 책으로 가득했고 책냄새에 기분이 좋아지는 곳이었다. 교수님과 독대하는 것이 긴장되었는데 덕분에 긴장이 좀 풀렸다.
교수님과는 꽤 오래 대화했던 것 같긴 한데 무슨 말을 했는지는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님이 해주시는 얘기에 리액션하기에 바빴던 것 같다. 그런데도 1년 넘게 지난 지금 기억나는 대화가 있다. 바로 교수님이 대학원 시절에 쓰신 시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 시는 교수님이 스스로 평가하시기에 겉 멋이 든 시란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너무 멋진 시였고 나는 생각지도 못하는 어휘와 발상으로 가득했다. 겉멋만 든 시라도 쓸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겧다. 하지만
겉멋도 멋 낼 줄 아는 사람이 내는 거다
나는 아직 멋내는 방법을 잘 모른다. 그냥 손 가는대로 생각나는대로 쓸 뿐이다.
그래서 교수님께서 추천해주신 현대시작법이라는 책을 사서 혼자 공부해봤는데 도움이 되는듯 하면서도 아직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이 시는 내가 1학년 때 정년퇴임하신 교수님을 생각하며 쓴 시다. 내가 쓴, ’ 시‘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 무언가 ‘지만 나에게 인문학이라는 것에 관심을 갖게 해 주신 교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소개해본다.
건화
인생은 어머니의 양수를 흠뻑 머금고 태어나 세상에 그 물기를 나누어 주는 것
주름을 미워하지 말아라 당신이 잘 나누며 살았다는 증거가 아닌가
잘 마른 꽃에게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듯이
잘 말라가는 인생을 누가 주름졌다 욕하겠는가
비록 바스러져 바람에 날릴지라도
말라가는 것을 아쉬워 말아라,
참으로 아름다운 인생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