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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일이일 May 03. 2023

6. 그렇게 아빠가 되었다.

근데 아직 미혼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던 2022년의 봄, 학교 동생들과 함께 벚꽃나무 밑을 걷고 있었는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아빠!!

처음에는 당연히 나를 부르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연하지. 난 자식은 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다.(물론 당시 나이 서른하나였기에 기혼일 수도 있는 나이지만) 그러니 어떻게 나를 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겠는가. 그런데 그 목소리가 익숙하기도 했고, 학교에서 누가 아빠를 찾는 건지 궁금했기에 뒤돌아봤다. 그런데 이게 웬일,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내 동기였다. 유독 사람을 편하게 해 주고 밝은 친구였는데, 덕분에 금방 친해질 수 있었던 친구였다. 그래도 아무리 친해졌어도 그렇지 아빠라니..


나를 부르는 것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고는 곧장 그 친구에게 걸어가서 따졌다.

“내가 왜 아빠야!”

“아빠는 이제 그냥 아빠야~”


사실 며칠 전에도 이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근데 오빠를 오빠라고 부르는 게 맞나? 뭐 아빠라고 해도 되는 나이 아닌가~?”


그래 내가 나이가 많긴 하지만, 스물한 살짜리 딸이 있을 나이는 아닌데. 근데 내가 싫어한다고 안 할 애도 아닌 거 같아서 그냥 놔뒀다. 그랬더니 계속 아빠라고 불렀다.

그런데 평소에도 조금 친하게 지냈던 친구가 아빠라고까지 부르니까 뭔가 챙겨줘야 할 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이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좋겠고, 수업을 잘 들었으면 좋겠고, 간식거리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어졌다. 무엇보다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이 친구도 처음에는 장난으로만 아빠라고 하던 게, 이제는 볼 때마다 ‘아빠!’하며 인사해 온다. 그러다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아빠라고 부를 때면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혹여나 열에 한 명이라도 나를 진짜 아빠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친구, 아니 이제는 딸이 되어버린 친구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고 싶지만 혹여나 삐질까 봐 전부 말하지는 못하고 칭찬만 몇 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열 살이나 차이나는 아저씨한테 친근하게 대해주고, 먼저 장난쳐줘서 학교 생활이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덕분에 다가가기 힘든 분위기를 풍길 때가 있는 나에게 다른 사람들도 먼저 다가올 수 있도록 하는 데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인스타 따위는 할 줄 모르는 아저씨에게 인스타 하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고, 가끔 아저씨 같은 모습을 보이면 고칠 수 있게 알려주기도 한다.(물론 말을 듣지는 않지만)

내 간식 가방을 털어가고, 멘탈도 약하고, 걸핏하면 울고, 힘든 얘기도 들어줘야 하고, 인관관계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 상담도 해줘야 하지만 그게 딱히 귀찮다기보다 응당 해줘야 하는 일로 여겨진다. 오빠도 아닌 것이, 아빠도 아닌 것이 ‘와빠‘정도 되나 보다.


쓰다 보니 칭찬보다 욕할 것이 더 많아지는 것 같아 이만 줄여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놀아줘서 고맙다. 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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