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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실 Sep 12. 2024

도화지 속 나의 세상

너에게 직접 듣고 싶어

"너에게 직접 듣고 싶어, 네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 그리고 덜 좋아하는 것들까지, 너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후! 드디어 학부모님 상담 끝!”

긴장반 떨림반으로 학부모님과의 상담을 마쳤다. 하지만 이제 시작이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2주가 안 되는 짧은 기간이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관찰하고 메모한 것들을 정리해야 한다.


-00 이는 돈가스랑 떡볶이를 좋아하는구나 야채는 별로 안 좋아하네!

-내가 봐도 00 이는 퍼즐을 좋아하고 잘했지!

-00 이가 만들기도 잘하고 그림 그리기도 좋아하는데 발표하는 걸 싫어하는구나 두 활동을 연결 지어 발표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야겠다.


벌써 머릿속으로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목표를 이룬 것 마냥 희죽거렸다. 그러다 또 옆에 쌓인 종이들을 보며 타닥타닥 바쁘게 타자를 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이들은 자신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와 학부모님 둘이서만 주고받은 자료들을 바라보며 우리 아이들은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호기심이 가득한 우리 반 한 친구가 질문을 했다.

“선생님 저는 색칠하는 거 좋아하는데 (옆 친구를 가리키며) 얘는 뭐 좋아해요?”

친구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못하자 나를 부른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친구에 대해 다 안다는 듯 답을 했다. “00 이는 동요 듣는 거 좋아해요”


글자를 모르거나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친구들도 스스로에 대해 표현해 볼 수는 없을까?

아이들도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덜 좋아하는 것들을 주고받으며 서로에 대해 알아갈 수는 없을까?

아이들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적힌 종이를 보며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꼭 글이 아니어도 되잖아 꼭 말로 할 필요는 없잖아!


떠오르는 생각이 손보다 빨라 행여 하나라도 놓칠까 수업 아이디어 노트에 두서없이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몰라 몰라 일단 써!” 이게 무슨 글씨인지 못 알아볼까 걱정도 되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아이들도 종이 가득 스스로에 대한 걸 채워보면 되지! 글과 말이 아니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그림이나 사진으로 표현하면 되지!


일명 ‘도화지 속 나의 세상


선생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 싫어하는 것 등을 그림이나 사진 자료로 준비해 두고,

아이들은 그림과 사진을 오리고 붙이며 자신에 대한 것들로 도화지를 채워보는 것이다.

(가위와 풀 사용이 어려운 친구를 위해 스티커 형태로 쉽게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는 자료도 준비해 두었다.)


흰 도화지가 아이들만의 색으로 물드는 모습에 내 마음도 무지개 빛으로 곱게 칠해졌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대할 때의 아이들의 리얼한 표정 변화를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다.

도화지 속 나의 세상

이제 나와 다른 친구의 세상을 이어볼 시간!

내가 만든 단 하나뿐인 세상을 소개해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발표를 하고 싶다던 친구는 자신감 가득 찬 표정으로 도화지를 들어 올린다. 행여라도 안 보이는 친구가 있을까 봐 이쪽저쪽 몸을 돌려가며 열띤 설명을 덧붙인다.


표현에 어려움이 있는 친구의 발표 순서! 혹시나 아이들의 질문과 시선이 그 친구가 아닌 나를 향하면 어쩌나 살짝 긴장이 되기도 했다. 도화지를 펼치자 아이들의 시선은 그 친구에게 집중되었고, 하나하나 관심을 가지며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말하지 않았지만 서로가 통하고 있음을 느꼈다.


나도 미소를 지으며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주었다.

"고마워, 너에게 직접 들었네, 네가 좋아하는 것들, 잘하는 것들, 그리고 덜 좋아하는 것들까지, 너에 대한 모든 것을 하나하나."


시간이 지나도 아이들은 서로에 대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고, 새롭게 알게 된 점들이 생기면 언제든지 '나' 도화지를 펼쳐 또다시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의 도화지에는 모두가 함께 했다는 기쁨과 뿌듯함도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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