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일기 1] 처음 딱 일주일은 행복했지..

루스끼 마인드 배우기, 다른 말로 하면 포기하는 법 배우기 :)

by HYOKIM

러시아에 도착하자마자 처음 일주일은 그야말로 딱 예상범위 안에서의 안전한 행복의 연속이었다.

이미 교환학생 1년 경험으로 기본적인 정보들 (유심이라거나 대중교통, 필수 어플리케이션 사용법 등)은 모두 알고 있으니 학기 시작 전까지는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되었던 것.

기숙사도 어쨌든 반나절만에 입사하게 되었고, 기숙사 근처 마트도 알아놓았다. 학교에서 학생증도 받았고 거기서 만난 같은 처지의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었다.

감히 이상적인 유학생활이리라 기대하며 8월이 지나고, 9월이 왔다.


9월은 학교에 적응하느라 정신없이 지나가나… 했지만

유학생들이라면 모두 치를 떨 비자 연장이 남아있었다는 것!


이때 깨달았다. 교환학생 시절이 정말 편하고 대우받았던 시간이었구나라는 것을…

러시아는 비자연장을 위해서 이민당국 소속 빌딩에서 건강검진을 받고, 지문 등록을 하고, 그린카드를 수령한 후 모든 증명서를 여권과 함께 비자 오피스에 제출해야 한다.

하지만 이 건강검진 단계가 아주.. 헬이다.

교환학생 때는 학교 내 담당 코디선생님의 동행하에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그때는 줄도 안 섰던 것으로 기억한다. (교환학생들만 선생님 권한으로 새치기했었다)

하지만 유학생은 그런 것 없다. 아침 7,8시에는 건강검진받는 건물 앞에 줄을 서야 그나마 9시에 입장해서 오전 중으로 건강검진을 끝낼 수 있다. 그것도 빠릿빠릿 운이 좋아야.

첫 학기를 갓 시작한 유학생은 그런 거 몰랐다.

느긋하게 11시쯤 도착해서 첫 번째 딸론(талон, 대기표), 두 번째 딸론, 세 번째 딸론,,, 대기표의 연속을 거치고 나서야 건강검진 검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모든 과정을 마쳤을 때는 이미 저녁 8시를 지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사실 건강검진 자체는 굉장히 빠르게 진행된다. 여섯일곱 개 정도의 진료실을 돌면서 의사의 확인 서명을 받고, 피검사, 소변검사만 하면 되었기에.

거의 90프로 정도는 무한대기 상태인 것이다.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가장 멍청한 짓이라고 한다면 ’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나..‘ 하며 넋두리하는 것이다.

여기 있는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한다. 하지만 한탄하고 불평한다고 해서 상황은 바뀌지 않기에 그냥 기다린다.

그것이 바로 내가 처음 깨달은 루스끼 마인드였다.

Держитесь ! - 버티라는 말이다.

이 루스끼 마인드는 유학생활 내내 나를 괴롭히고 현타 오게 하며 결국은 러시아를 애증으로 만들어버린 가장 큰 이유다.

같이 갔던 친구와 녹초가 되어서야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둘 다 동시에 했던 말이 기억난다.

“이 짓을 내년에 또 해야 된다고??!” “I’m SO traumatized!”


그렇게 서류를 모두 준비해서 학교 내 비자오피스에 제출하고 나면 1달간은 여권 없이 지내다 보면 어느새 비자연장 완료.


이 시련을 모두 겪고서야 내가 생각한 것이라 하면..

아, 나는 나밖에 없구나. 이 낯선 곳에서 불법체류자가 되지 않고 무사히 하루하루를 보내려면 나는 나를 믿어야 하는구나.
그 누구도 날 도와주지 않는구나.
또한
시간은 날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내가 바쁘게 학교-집 학교-집 하는 동안 시간은 가고 있고,
내가 꿈꾸던 유학생활을 하려면 내가 덜 자고 더 움직여야 하는 거였구나.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제야 비로소 진정한 유학생 라이프가 시작되는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멀리서 보아야 비로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