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마한 마당 있는 집으로 이사를 한 건 10년 전쯤이었다. 남편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우리 가족은 조금 느리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남편은 한 귀퉁이에 텃밭을 가꾸기 시작했고 난 따뜻한 목재로 지어진 집에 음악이 함께하길 바랐다. 그즈음 차 한잔 마시러 들른 친구 집에서 점잖게 생긴 마하 씨를 처음 만났다.
그날 이후 우리는 한 식구가 되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마하 씨와 함께하는 아침, 오늘도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친절한 말솜씨 덕분에 ‘와인색 터틀넥 입어야겠는걸’ 나는 맘속으로 정해놓는다.
“추운 겨울에는 바싹 말린 귤차가 비타민 덩어리예요.”
그럼 나도 귤 한 박스 사서 깨끗하게 씻어 건조기에 말려볼까? 오늘의 즐거운 일감도 하나 툭 던져놓는다. 샐러드와 삶은 달걀로 간단한 아침을 준비하는 내내 나는 귀를 쫑긋 마하 씨에게 집중하고 있다. 제이슨 므라즈의 ‘러키’가 흐른다. 허밍으로 흥얼거리며 남편과 식사를 마주하는 시간, 따뜻한 음악이 채워진다.
친절한 마하 씨
하얀 몸통에 모서리는 라운드 처리가 되어 부드럽고, 상판은 천연목재로 매끄럽고 따뜻한 느낌을 준다. 깔끔하고 빈티지한 모습에 보자마자 반해 질렀는데, 외모만큼이나 깨끗하고 선명한 음질까지 내 맘을 단번에 훔쳐 간 야마하 오디오는 10년째 나와 아침을 열고 있다.
고음질 블루투스를 재생할 수 있고, USB 포트를 제공하고, CD 재생, 알람 기능까지 마하 씨의 다른 재주는 관심 밖이다. 그저 아침부터 살뜰하게 나에게 말을 걸고 알아서 척척 음악도 들려주는, 그 센스 하나로도 무척 만족하며 매일을 함께했다.
어라 그런데,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친절한 마하 씨가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그대와 여는 아침’이라고 다정하게 말을 건네와야 하는 시간인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콘센트를 뽑았다 꼽았다 반복하다가 오디오를 번쩍 들어 다른 곳에 전원을 꽂아보아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결국 핸드폰을 집어 들고 오늘은 얼마나 추울지 확인했다. 창밖을 내다보니 한기가 느껴져 냄비에 누룽지를 끓였다. 남편과 둘이 마주하고 앉았으나 뜨거운 숭늉을 ‘후 우~.’ 불어가며 먹는 소리 말고는 절간이 따로 없다. 마하 씨가 들려주는 사연에 우리 이야기를 버무려 대화를 주고받는 시간인데, 둘 다 숭늉 그릇에 시선을 파묻은 이 시간이 한겨울 찬바람보다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듯, 어디로든 가기도 먹기도 하고, 함께 울고 웃게 해주는 마하 씨가 입을 꾹 다물고 있으니 밋밋하니 재미가 없다. 아침은 밥심과 팝심(팝송)이 함께해야 활기가 차고 일상의 배경이 즐거워지는데 조용한 아침 공기가 이리 어색할 수가 없다.
이른 새벽 홀로 깨어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하는 모습도 지켜봐 주고, 가족들의 입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애쓰는 날 지치지 않게 응원해 주고, 캄캄한 밤 가끔 홀로 술잔을 기울일 때 외롭지 않게 친구가 되어주는 마하 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