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기대어 다정해진 계절
사람마다 마음이 조용히 쉬어가는 자리가 있다.
누군가는 바닷가 벤치에 앉아 잔잔한 파도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달래고, 누군가는 오래된 노래 한 곡에 숨을 고르듯 잠시 멈춰 선다. 그 자리는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의외로 소소하고, 익숙한 순간 속에 숨어 있다.
요즘 내 마음 쉬는 자리는 딸아이와 나란히 걷는 시간 속에 있다.
딸아이는 첫 직장을 그만두고, 세 달만 쉬고 싶다고 했다. 그동안 쉼 없이 달려왔던 시간 끝에 꺼낸 말이었다.
용기 있는 선택이 기특했고, 다 자란 새가 스스로 쉼을 찾는 걸 바라보듯 나는 기분 좋게 안아주었다.
재취업을 준비하기 전 배우고 싶었던 수영을 시작하자고 했다.
“정말 좋은 생각이네.”
나는 흔쾌히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는 함께 아침 수영을 다니기 시작했다. 딸은 초급반에서 발차기부터 배우기 시작했고, 나는 상급반에서 아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물속을 누볐다. 겨울 끝자락 이른 아침, 수영장을 오가며 몸을 깨우고 마음을 다잡는 시간이 참 좋았다.
시간 날 때면 동네를 함께 산책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봄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함께 바라보고, 파릇파릇한 새싹을 함께 느끼며 계절의 숨결을 따라 걸었다. 딸에게 잠시 멈춘 시간은 모녀가 서로 더 단단해지는 여백이었다.
딸이 집에 머무는 동안 남편의 표정도 한결 부드러워졌다.
말수가 적던 사람이 웃는 날이 많아졌고, 집 안 공기도 오랜만에 온기 말고도 또 다른 따스함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다정한 시간들이 쌓이던 3개월이 지나고, 딸은 면접을 보고 재취업에 성공했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참 고마운 일이었다. 목표한 대로 이루는 아이가 기특하기도 했고, 조금 더 쉬어도 되는데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6월 첫째 주, 선거와 현충일 덕분에 정신없이 흘러간 한 주를 보내고 맞은 휴무인 월요일이었다. 딸과 함께 대전으로 보금자리 계약을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모처럼 여행하듯 하루를 보낸다는 생각에 피곤함도 즐거움으로 바뀌었다.
서울역, 전철에서 기차로 갈아타는 복잡한 동선은 출근길 사람들로 분주했다. 딸은 앞장서 걸으며 몇 걸음마다 나를 돌아보는 눈빛을 보냈다. 헷갈리지 않도록 방향을 가리켜 주는 모습이 예전 내 모습과 겹쳤다.
예전엔 내가 그랬다. 작은 손을 꼭 잡고 세상이라는 낯선 길 위에 한 걸음 먼저 내디뎠다. 이제는 딸이 내 길을 먼저 살피고, 내 마음을 먼저 읽는다. 모든 변화가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집을 나서면 금세 배가 고파지는 사람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아는 아이는 웃으며 맥도널드로 발걸음을 향했다.
“엄마, 여기 앉아 있어. 내가 주문할게.”
익숙한 손길로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마치고, 내 입맛까지 살뜰히 챙겼다.
“커피도 마실래?”
툭 건네는 짧은 말에 살가운 마음이 담겨 있다. 나는 아무것도 챙기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었다. 그게 이상하게도 참 따뜻했다.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 딸은 먼저 창가 쪽 자리를 내게 권했다. 창밖으로 흐르는 풍경 너머 아이의 눈빛이 깊어 보였다. 어쩐지 어른스러운 표정이었다.
이제 아이도 생각이 많아지고, 마음이 복잡한 때가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 옆모습이 유난히 어른스러워 보였다. 아픈 아빠를 곁에서 지켜보며 꾹꾹 눌러 담아야 했던 마음들이 아이를 조금 일찍 어른이 되게 만든 건 아닐까.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이 한구석을 스치고 지나갔다.
‘언제 이렇게 컸을까.’
‘언제 이렇게 다정한 사람이 되었을까.’
이제는 아이 곁에서 가끔 기대어도 괜찮은 엄마로 변해가고 있었다. 아이의 걸음에 맞춰 걷는 길 위에서, 나의 마음이 조용히 쉬어갈 수 있는 자리에 닿는다.
딸이라는 이름으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너와 함께 걷는 지금 이 시간이,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자리일지도 모르겠다.
딸이 살뜰하게 아빠를 챙기며 사전투표하고 오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