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산티아고를 걷기로 했다

세 번째 길, 은의 길 앞에서

by 올리브

2023년 늦가을, 처음으로 산티아고를 향해 걸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다짐했었다. 매년 나를 위해 이 길을 다시 찾겠다고.

첫 번째 길은 북쪽으로 이어진 프리미티보길(Camino Primitivo)이었다. 비를 맞고, 안개를 헤치며 걷던 그 길은〈길 위에 작은 쉼표, 산티아고〉라는 이름으로 책 속에 남았다.

두 번째 길은 대서양을 따라 걷는 포르투길(Camino Portugués)이었다. 푸른 바다가 곁에 있었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걷는 날들이 이어졌다. 길을 풍경으로 기억하며 조금 더 여유로운 2024년의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 길 앞에 서 있다.


2025년 2월 27일, 다시 가방을 메고 길 위에 섰다. 떠나온 지 꼬빡 하루 만에 도착한 세비야(Sevilla)의 아침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거리에는 파릇한 잎사귀 사이로 둥근 열매들이 매달려 있었다. 저 열매는 무엇일까 올려다보는 순간, 하나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오렌지였다. 이 도시는 그렇게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왔다.

이번에 걷는 길은 사람들에게 ‘은의 길’이라 불린다. 스페인어로는 Camino de la Plata. 이름만 들으면 은을 나르던 길 같지만, 길은 귀금속보다 훨씬 오래된 시간을 품고 있다. ‘플라타(Plata)’라는 말은 은을 뜻하지만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해석이 전해진다. 그중 하나는 아랍어 알 발라트(Al-Balat)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돌로 단단히 닦아 놓은 길, 로마 시대의 포장도로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이 길은 로마 제국의 주요 도로였다. 메리다(Mérida)에서 아스토르가(Astorga)까지 이어지며 병사와 상인, 소금과 올리브유, 금속과 곡물이 오갔다. 제국의 동맥이었던 길은 세월을 건너 순례자의 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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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 작은 쉼표, 산티아고』를 출간하고, 오늘도 걷고 있습니다. 파주 헤이리 마을에서 폐암 17년차 남편과 여전히 다정하게 하루를 아끼며, 작은 이야기를 모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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